[핫 이슈]‘넓은’ 오페라극장 속 ‘좁은’ 오페라페스티벌의 자리
[핫 이슈]‘넓은’ 오페라극장 속 ‘좁은’ 오페라페스티벌의 자리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5.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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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대 뒤 열악한 환경…갈수록 밀리는 ‘오페라’의 우선순위
코로나19 시대,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매년 5월 예술의전당에서 약 30일간 진행되어 왔던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상반기(6월)와 하반기(8‧9월) 분산 개최를 결정했다. 

국내 유일의 민간오페라단 축제인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83회 공연, 누적 관객 25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대표 오페라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0년간 7억~8억 규모의 지원 예산을 통해 독립된 사무국을 운영하며 국내 오페라계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젊은 성악가의 공연 기회를 창출하는 등 공연 외적인 발전에도 기여한 바 있다. 또한 다소 높은 가격이라는 진입 장벽으로 오페라를 접하기 어려웠던 국민들에게 축제 기간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제공하는 등 오페라 향유 기회 확대에도 이바지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행사 일정 변동과 별개로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축제 진행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해마다 예산이 부족했던 탓에 이전에 지원받던 7억 원보다 더 많은 금액을 신청했으나, 오히려 3분의 1이 축소된 4억 5천만 원으로 예산이 결정된 것이다.

▲제10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사랑의 묘약’ 공연 모습 (사진=예술의전당)
▲제10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사랑의 묘약’ 공연 모습 (사진=예술의전당)

발단은 예산 집행 방식의 변화다. 기획재정부의 요구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속적으로 집행해오던 오페라페스티벌의 예산을 올해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업공모에 포함하고, 심사위원들이 지원액을 결정토록 했다.

오페라는 출연 성악가는 물론 오케스트라‧합창단‧무용단과 작가‧연출가‧지휘자 등의 디렉터들, 무대 디자인‧의상 디자인‧조명 디자인‧분장 디자인 등 디자인팀, 기획‧홍보‧마케팅‧진행팀 등 스태프진 까지 수백 명의 인원과 제작비가 동원되는 초대형 공연 예술 작품이다. 심의위원은 누구보다도 이 문제에 밝아야 한다. 

하지만 오페라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심사위원의 부재로, 다른 페스티벌에 비해 많은 지원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는 예산 삭감으로 이어졌다.

이에 현장에 몸담은 예술인들은 지난달 23일 예술의전당 앞에 모여 ‘문화예술 예산 삭감 반대’를 요구하는 1인 릴레이 시위를 진행했다.

오페라페스티벌은 30일간 예술의전당에서 6팀~10팀의 국립·민간 오페라단이 각각 오페라를 제작해 옴니버스 공연을 선보이는 축제다. 하나의 단체에서 오페라를 제작할 경우 제작비, 주연 성악가, 오페라 합창단원, 오케스트라, 의상비, 조명·음향·무대 비용 등으로 최소 2억~4억 원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그런데 해당 축제의 올해 예산은 기존 7억 원에서 3분의 1가량 줄어든 4억 5천만 원이다. 이미 턱없이 부족한 지원예산에서 그마저도 줄어 결국 오페라 한 팀 제작비로 오페라페스티벌 6팀~10팀이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사업 시기를 불과 한 달여 남겨놓은 시점에서 2억 7천만 원이라는 예산 삭감을 통보받은 페스티벌 관계자들은 시위 현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 것과 더불어,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회원들과 국내 오페라인들의 의견을 모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재심을 촉구하는 항의서를 제출했다.

개막까지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예산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공연 포기를 선언하는 단체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지난 20일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 단체 서울오페라앙상블은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리골레토’ 공연 포기 의사를 밝혔다. 

▲오페라 ‘리골레토’ 공연 모습(사진=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오페라 ‘리골레토’ 공연 모습(사진=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서울오페라앙상블은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19라는 펜데믹 속에서도 제11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참가작품인 ‘리골레토’ 공연 추진을 위해 노력했으나 ‘보조금 삭감’이라는 엄혹한 현실 앞에서 작품 완성도를 높인 정상적인 공연이 어렵다고 판단해 공연 포기를 결정했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들은 “민간오페라단으로서 공연을 속행하는 것은 공연의 퀄리티를 담보하지 못할뿐더러, 국민을 위해 펼쳐지는 오페라 페스티벌의 건전한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내린 부득이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결정에 앞서 본지와 진행했던 전화 인터뷰에서 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감독은 “오페라페스티벌은 보조금 삭감과 더불어 어려운 시국으로 인한 기업 후원의 불투명, 유료 관객 수 감소라는 난제 속에 있다”라며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등에 문제 해결 동참을 호소했으나 책임 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라며 유감을 표했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오페라페스티벌 참여 예술인들은 문화체육관광부나 예술의전당의 소극적 대응을 야속하다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체부와 예술의전당은 방관적으로 보이는 현재의 대응이 최선이라며 페스티벌 측의 이해를 바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전처럼 단체나 기관에 강제적인 지시를 내릴 수 없고, 다만 선의를 권고할 뿐이다. 이미 확정된 재원에서 벗어난 새로운 확보를 위해서는 기획재정부 예산 심의를 통한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문체부는 대부분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계에서는 “문체부가 기획재정부로 예산 집행권이 넘어가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에 앞서 넘기기 전 예산 조정에 좀 더 세심했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순수예술분야의 예산은 다시 재검토 해야 할 것“을 주문한다.

예술의전당은 더욱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국공립이 아닌 별도의 재단법인으로 국고보조금이 25%에 불과하다며 자신들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볼멘 소리를 내고있다. 

예술의전당 측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공연이 취소되면서 받았던 대관료는 도로 반납했고, 극장 내 임대주들에게는 임대료를 50%가량 삭감해주고 있다”라며 “현재 페스티벌 측에 부대시설 및 연습실 사용료를 따로 받지 않는 방식으로 후원하는 것 외에 추가적인 지원은 어려울 것 같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체질 오페라 ‘남몰래 흘리는 눈물’ 공연 모습(사진=코리아아르츠그룹)
▲체질 오페라 ‘남몰래 흘리는 눈물’ 공연 모습(사진=코리아아르츠그룹)

이소영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처음 축제를 만들 때 취지를 떠올리며 역행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 민간 오페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며, 그나마 숨통을 틔워준 것이 해당 페스티벌이었다. 오페라 인구의 저변 확대와 민간 오페라단을 육성을 목표로 했던 초기와 달리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서울오페라앙상블의 공연 포기에 대해 “페스티벌 창립부터 함께해온 단체이기에 더욱 안타까움이 크지만, 예산 삭감과 더불어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유료 관객 수를 장담할 수 없는 현재, 저조한 티켓 판매로 인한 손해는 오롯이 참여단체의 부담으로 연결된다. 조직위원회가 나서 한문위에 참여단체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측은 단체가 하나 빠지게 되면서 생기는 프로그램 변동에 대해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할 방침이다. 오페라 공연 특성상 준비 기간이 길기 때문에 여러 여건상 오페라 합창단이나 성악가들이 참여하는 기획 공연이 구성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제11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6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을 시작으로 8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9월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된다.

성과가 눈에 빠르게 보이는 대중문화산업과 달리, 은근한 지속성의 산물을 낳는 순수예술은 지원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이번 예산 삭감은 정부가 순수예술을 대하는 민낯을 국민들에게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문화의 기초가 되는 순수예술이 단단해야만 파생되는 산물 또한 건강할 수 있다. 오페라페스티벌을 비롯한 공연예술 행사와 축제는 순수예술계와 관계자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통로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