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숙 칼럼]상상력과 통찰력을 자극하는 현대무용과 현대무용축제 모다페(MODAFE 2020)
[남정숙 칼럼]상상력과 통찰력을 자극하는 현대무용과 현대무용축제 모다페(MODAFE 2020)
  • 남정숙 문화기획자, 본지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20.05.2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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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숙 문화기획자, 본지 편집기획위원
▲ 남정숙 문화기획자, 본지 편집기획위원

5월 24일. 오랜만에 공연을 보니 코끝이 찡했다. 

아직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아 ‘거리두기 객석제’와 ‘객석에서 마스크 쓰기’를 기꺼이 감수한 관객들과 함께 현대무용축제 모다페의 창작작품들을 만났다. 

첫 번째 작품

무대 위에 네 사람이 있다. 

흐린 불빛 사이로 작은 여자 1.이 나비날개처럼 두 팔을 펴서 나를 것처럼 펄럭이다가 날아오르지 못하고 벌레처럼 그로데스크하게 꿈틀거리고 있다.

숨죽이고 있던 작은 여자 2.가 의심 많은 고양이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작은 여자 1.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게 다가가면서 냄새를 맡고 몸을 건드려보다가 작은 여자 1.과 작은 여자 2.는 몸을 충돌한다. 둘은 바닥에서 몸을 충돌하고 부딪히다가 서로 한 몸이 되어 춤을 춘다. 작은 여자들은 바닥에서 수평적으로 움직인다. 

▲2020 모다페(MODAFE 2020) 공연 모습
▲2020 모다페(MODAFE 2020) 공연 모습

뒤에 있던 키가 큰 남자와 키가 큰 여자는 샴쌍둥이처럼 머리만 맞대어 서로 의지하고 있지만 몸은 서로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키가 큰 남자와 여자는 수직적으로 움직이다. 

네 사람이 서로의 몸을 탐색하고 부딪히는 동안 기계음이 음악에 섞여 들린다. 

쌍둥이 같이 똑같이 춤추던 작은 여자 1.이 갑자기 작은 여자 2.와 함께 춤추는 대신에 불꽃놀이에 정신이 팔리자 작은 여자 2.는 몸을 바닥에 구르며 괴로워한다. 키가 큰 여자도 키가 큰 남자를 떠나자 키가 큰 남자는 괴로워하면서 독무를 춘다. 

▲2020 모다페(MODAFE 2020) 공연 모습
▲2020 모다페(MODAFE 2020) 공연 모습

홀로 길을 떠난 키가 큰 여자와 작은 여자 2.는 평온하게 정적인 상태에서 수평적인 춤을 추고, 불꽃놀이에 정신이 팔렸던 작은 여자 1.은 불꽃놀이를 멈추고 키가 큰 남자 등에 업혀서 떨어지지 않는다. 키가 큰 남자는 작은 여자 1.을 업고 수 십 차례 무대를 뛰어다니지만 작은 여자 1.은 키가 큰 남자 등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키가 큰 남자는 지쳐서 쓰러진다. 

이제 네 사람은 각각 구르고 뛰고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고 뛰는 것처럼 독립적인 춤을 춘다. 

▲2020 모다페(MODAFE 2020) 공연 모습
▲2020 모다페(MODAFE 2020) 공연 모습

도도무브 댄스시어터(DODOMOOV DANCE THEATER)의 ‘수평적곡선 : 숨 쉬는 몸’은 이준욱 안무, 안지혜, 김동석, 박정은, 도효연이 출연하는 작품으로 네 사람을 통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로 탐색하고, 결합하고, 엇갈리고, 충돌을 반복하면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굴곡진 삶을 보여준다. 안무가 이준욱은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고, 충돌하고, 결합하고, 분리하면서 생긴 몸의 기억들이 각자의 머리 속에 기억으로 남아서 각자의 몸짓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로데스크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용가는 무용가들의 몸의 충돌이 무용으로, 철학가는 철학가대로의 몸의 충돌이 철학가에게 남아서 표현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각자가 다른 환경과 경험으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충돌하는 시간의 완급을 통해 무용수들이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지만 관객들 눈에는 무용수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이 쳐져 있어서 그물을 통과하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서로 선과 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몸의 충돌로 다른 경험을 하지만 결국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안무가 이준욱은 서로 화해하거나 화합하는 사람들을 그리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탐색하고 부딪히면서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동적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준다. 마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것처럼

두 번째 작품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좌측에 쓰레기더미와 비슷한 비닐 산이 놓여져 있는 것이 보인다. 비닐 산에서 투명비닐 봉투를 쓴 한 사람이 나타나서 춤을 춘다. 비닐봉투를 쓰고 춤을 추는 사람은 덥고 답답해 보인다.

그 사람은 비닐 안에서 답답한 춤을 추다가 비닐을 벗는다. 비닐을 벗으면 자유롭고 편하게 춤을 출 줄 알았지만 비닐을 벗은 사람은 에너지를 잃은 사람처럼 벗어 놓은 비닐 옆에 쓰러진다. 

비닐 산에서 다시 투명비닐 봉투를 쓴 또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나서 춤을 춘다. 이 사람도 투명비닐을 쓰고 춤을 추다가 비닐을 벗자 역시 에너지를 잃은 사람처럼 비닐 옆에 쓰러진다. 

무대 뒤에서 비닐을 쓰지 않은 자연적인 사람이 나타나서 자유롭게 춤을 춘다. 앞에 비닐을 쓰고 춤을 추던 사람과는 달리 자유롭고 편안하게 춤을 춘다. 관객들도 호흡이 편안해 진다. 자연인이 비닐인을 구해주려고 하지만 비닐인들은 비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마침내 비닐인들은 비닐과 한 몸이 되도록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가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비닐을 안고 쓰러진다. 

자연인은 비닐 산에 가까이 가서 그 많은 비닐을 치우자 놀랍게도 비닐 산 밑에 사람이 묻혀있었다. 자연인은 비닐 산에 묻혀 움직이지 못하고, 자연인이 구한 사람은 간신히 몸을 꿈틀대며 일어선다. 

정유진 Common Dance Project의 ‘나비의 혀’는 안무가 정유진을 비롯해서 정희정, 김정은, 이진선, 방미경, 이유선 등이 출연한다. 나는 무용수들이 쓰고 있는 투명비닐이 현대사회의 권위, 권력, 돈, 허울, 쓰레기 등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유진은 나비의 혀로 비유했다고 한다. 즉 나비의 혀처럼 말이라는 것이 날개 짓을 하며 떠돌아다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널리 퍼지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등 말의 중요성과 진실성에 대해 표현했다고 한다. 하긴, 말이나 권력이나 쓰기 나름이니까

세 번째 작품

양승관의 ‘칭클챙클’은 피터 쉐퍼의 대표작 ‘에쿠우스’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에쿠우스를 현대무용으로 보니 반갑다. 에쿠우스의 서사와 정열은 그대로 느껴지면서 현대무용으로 표현하니 더 유려하고 시각적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칭클챙클에는 알란의 집착과 광기의 원인이 된 부모 등 가정환경은 제외하고 의사 ‘다이사트’의 독백을 통해 ‘알런’의 분노와 광기, 욕망에 대한 호기심과 ‘알런’의 원초적인 열정과 사회적 편견과 억압 등에 대한 경계를 첨예하고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의사 ‘다이사트’의 독백은 음악과 함께 배경이 되어 서사를 이끌고, 7명의 무용수들은 ‘알런’과 말이 되어 바닷가를 달리는 말처럼 자유롭게 혹은 집단 반발하는 소년들처럼 군무를 춘다. 

안무가 양승관은 천 하나로 억압하는 사회와 말을 타고 달리는 자유로움과 의사 ‘다이사트와 알런’에게 가하는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그림자로 표현하는 등 마치 연극 연출가처럼 아름답고 다채로운 미장센을 연출했다. 

격렬한 움직임이 많은 칭클챙클에는 양승관, 심재호, 정상효, 노승우, 장라윤, 정예림, 안유진이 출연했다. 

모다페(Modafe)는 올해로 39회가 된 현대무용축제로 봄에는 모다페, 가을에는 시댄스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국제적인 현대무용축제이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서 국제적인 무용단들의 방문은 없었지만 반대로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우리나라 무용수들도 해외에 나가지 않은 덕분에 한국을 대표하는 안무가들과 현대무용가들을 모다페에서 볼 수 있어서 애호가 입장에서는 행운이었다. 

모다페의 구성은 이경은, 김설진, 정영두, 안애순 등 유명 안무가들이 참가하는 ‘모다페 초이스 #1’과 대구시립무용단의 공연인 ‘모다페 초이스 #2’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본 3편은 ‘The New Wave’로 신진 안무가들의 작품들이다. 현대무용을 어렵다고 생각하시겠지만 3편 모두 어렵지 않고 즉각적으로 와 닿는 쉽고 재미있는 작품들이었다. 

발레와 전통무용도 좋지만 모든 현대무용은 실험극처럼 우리의 상상력과 통찰력을 자극한다. 현대무용이 좋은 것은 별도의 서사나 설명이 없더라도 무용가들의 몸짓과 근육과 표정만으로도 집약된 수많은 내용과 철학과 가치, 진정성 등을 몸을 통해 즉각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은 음악대로, 전통예술은 전통예술대로, 현대무용은 현대무용대로 예술 장르별로 차별화된 효용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트로트와 K-POP만 경험한다면 현대무용이 ‘몸으로 전달되는 언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동시에 상상력과 통찰력을 얻게 될 소중한 기회를 차단당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다양한 기초예술을 경험하게 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다양한 방식의 소통이 가능할 것이며, 상상력과 통찰력이 풍부한 유능한 4차 산업인재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무대가 그리웠을 현대무용가들이 오히려 관객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축제를 취소하지 않고 강행했다고 한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무대를 지키기 위해 참여한 민간 무용단체와 지방 무용단체들도 현대무용 민간단체와 지방 예술단체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지 짐작이 가지만 씩씩하고 비장미가 느껴질 정도로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도 놀랍고 고맙다. 

모다페는 5월 14일부터 5월 2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펼쳐진다. 이제 폐막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올해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어벤져스급 국제 안무가와 현대무용가들이 참가하는 좋은 기회는 놓치지 말고 찾아서 보시라고 권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