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Beyond 20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Beyond 20
  • 윤영채 /밀레니엄 키즈
  • 승인 2020.05.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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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키보드를 정말 오랜만에 눌러본다. 2020년이 된 지 어느덧 5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는 여러 변화가 생겼다.

나는 두 번째 입시에 실패했고 삼수생이 되었다. 전과 달라진 것은 이제는 학원도 과외도, 그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 이미 대학생이 된 친구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끊임없이 무너졌던 작년과는 달리, 지금은 내 삶의 속도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이기에.

나를 3년 넘게 괴롭히고 있는 그 지긋지긋했던 섭식장애와도 지금은 결별의 단계에 왔다. 그동안 살이 찐다는 것은 나를 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살이 찔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먹고 싶은 것들을 참고 또 참았다가 그 욕구가 폭발하면 몰래 숨어서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그대로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내 몸과 정신은 처참히 망가졌고, 혹시라도 암에 걸리진 않을까 치아가 모두 망가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늘 불안 속에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새로운 2020년이다. 봄이다. 나는 더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두려움의 허상에 쫓기고 싶지 않다. 남들이 다 꿈을 향해 달려갈 때, 여전히 거울과 체중계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기로 했다.

이 결심을 할 때쯤, 엄마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종각의 한 카페를 인수했다. 단골손님과 가게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잘 아는 내가, 엄마에게 월급을 받고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주인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등을 돌려 나가버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위로해야 했다. 코로나로 발길이 끊긴 상가에서 우두커니 앉아 매출이 10만 원도 넘지 않는 나날을 희망으로 견뎌야 했다. 어떨 때는 한껏 예민해져 서로의 탓을 하며 엄마랑 다투기도 했다. 그 사이,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 방식이 참 서툴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을 숨긴 채 가슴 아프고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여러 번 글을 쓰려 해봤지만, 무엇 때문인지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가는 것이 어렵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이 글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어떤 주제를 잡아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일상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을 그저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야 하나 뭐 이런 생각도 했지만, 올해 들어 첫 글이니만큼 글을 쓰지 못했던 지난날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

‘삶이란 참 힘들어, 언제 죽어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아.’를 가슴에 안고 살았던 내가 ‘조금 있다가 맛있는 케이크 먹어야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혼란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다음날 눈을 뜨는 것이 버거웠던 스무 살의 영채에서 당연한 듯이 눈을 뜨고 빈속에 고슬고슬한 쌀밥을 먹고서 하루를 시작하는 스물한 살의 영채가 되기까지. 나는 혼란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서 버텨냈다.

그 혼란의 정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쓰고 싶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며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분명한 사실은, 지난 고통스러웠던 나날 가운데 나에게 위로가 되어줬던 것은 글이다. 글을 쓰다 보면 항상 울컥해져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걸 모았더라면 아마도 1.8ℓ들이 페트병 하나는 족히 되지 않았을까. 따라서 나에게 글은 곧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했고 그 변화에는 언제나 혼돈이 뒤따랐다. 정신이 없어서 눈물조차 흘릴 겨를이 없었던 나에게 글은 더더욱 쓰기 어려웠던 것 같다. 감정의 파도가 잔잔해지고 따뜻한 2020년의 봄, 이제 햇살을 즐길 여유가 생겼다. 타닥타닥, 종로 카페의 한 가운데에서 글을 적어본다.

[편집자 주]이번 호부터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필자 윤영채 씨는 밀레니엄 세대로, 영화학도를 꿈꾸며 부단히 노력해 나가고 있는 '삼수생' 청년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청춘들의 좌절과 극복과정을 윤영채 씨의 '톡톡 튀는' 인문학적 글쓰기를 통해 담담히 내 보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