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가깝고도 먼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
[공연리뷰]가깝고도 먼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6.0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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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안무가 페르난도 멜로 “얇은 판자, 장벽과 이를 극복하는 인간적 관계 표현”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부터 가슴까지라는 말이 있다. 실제 거리는 두 뼘 남짓으로 가깝지만, 머리와 가슴이 하나로 이어지는 데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온라인으로 상연된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는 나무판자를 오브제로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가까운 거리와 먼 거리를 표현한다. 너비와 길이가 같은 나무판자는 초마다 모양과 감정을 달리 나타낸다. 

어두운 방 안, 판자로 짜인 침대 모양의 단상 위에 몸을 웅크린 채 겹쳐 누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함께 포개져 서로를 끌어안다가 이내 흩어진다.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 공연 모습(사진=국립현대무용단)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 공연 모습(사진=국립현대무용단)

겹쳐 놓인 판자는 사람이 떠나자 그 쓰임을 다 한다. 어느새 판자는 사람을 위에서 품는 침대보다는, 안에서 품는 관처럼 보인다. 삶과 죽음은 몇 개의 판자로 그사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에 죽음을 두고 살아간다. 이를 증명하듯 모여 있다 흩어진 사람들은 관 주위를 돌며 저마다 다른 깊이로 관 가까이에 몸을 기댄다. 그중 가장 관과 가까이 닿아있던 사람이 잠시 후 관 위에 눕는다. 

작품 속 주인공은 판자 하나를 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고 엇갈리는 감정의 파동을 경험하기도 하고, 두텁게 겹쳐진 여러 겹의 판자를 뚫고 나온 손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좌절하며 피폐해지는 모습도 보인다.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 공연 모습(사진=국립현대무용단)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 공연 모습(사진=국립현대무용단)

얇은 판자 여러 개를 자신의 주요 안무 소재로 사용하는 페르난도 멜로는 판자로 상징되는 장벽들과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적인 관계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안무적 구성을 통해 신체적 및 정신적 장벽들 간의 교섭, 가까운 거리를 넓은 공간의 확장으로 바꿀 수 있는 장벽들의 힘 그리고 ‘연결’에 대한 인류의 궁극적인 필요를 추상적인 방법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그의 목표는 관객의 뇌세포를 작동 시켜 다양한 작품에 대한 해석을 얻어 내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경계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관객들만의 재해석을 받아 소통하고 싶어 한다. 여러 관객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어놓길 바란다. 안무가로서 주제와 생각을 관객과 소통한다는 것. 작품 스타일보다 소통이 궁극적 목적이다.

기울어진 판자의 무게를 기꺼이 견뎌내며 사랑하다가도 내 무게를 상대의 어깨에 쏟아내면서 절망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인물의 모습은, 작품의 메시지와 판자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민을 유의미하게 만든다.

한편 지난 8일부터 시작된 국립현대무용단의 온라인 상영회 ‘댄시 온 에어’는 6월에도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오는 6월 26일~27일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공연이 취소된 신작 ‘비욘드 블랙’이 온라인을 통해 처음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