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란 시인, "시를 읽자, 먹자, 가슴에 꽃피우자"
김후란 시인, "시를 읽자, 먹자, 가슴에 꽃피우자"
  • 김준현 기자
  • 승인 2009.11.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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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령(詩齡) 반백년 맞아 “누군가에게 기쁨주고 애송하게 만드는 시를 쓰고 싶다”

꿈 많던 여중생 문학소녀가 성장해 신문기자가 되고 시인이 되어 50년 동안 시를 써 왔다. 1968년에 첫 시집 <장도와 장미>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할 때까지 현대문학상을 받은 여성 문인은 박경리 소설가와 김후란 시인 둘뿐이었다. 김후란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한국문학관협회 회장, 생명의 숲 국민운동 이사장, 문학의 집·서울 이사장 등의 소임을 맡아 문단 안팎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팔방미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내 시작 활동도 활발히 해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중후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추천 시인 신석초에 의해 ‘점액성의 지성(知性)’으로 불린 그의 데뷔 시는 이후 미와 미소, 사랑과 평화, 생명과 구원 등의 미학을 구축해 왔다. 문단 이외의 활발한 활동은 대체로 그의 철학과 관련된 단체들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왠지 사치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세태가 돼버린 요즘, 문학의 집·서울 이사장으로 문인들의 활동의 장, 문인들과 시민들의 만남의 장을 마련해 헌신하고 있는 그를 문학의 집·서울로 찾아가 만났다.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서울’

문학의 집·서울 이사장으로 언제부터 재임해 왔는지?

2001년 10월 26일 개관했지만 나는 창설자로서 준비 과정이 1년쯤 걸렸다. 그동안 문인들이 갈 곳이 없었다. 행사를 하려면 옛날에는 찻집에서 하고 근자에는 호텔에서 했는데, 사실 문인들에겐 경제적으로 좀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문학의 집·서울을 만들고 보니깐 모든 문인들이 좋아해서 참 보람 느낀다.

남산에 둘러싸인 이곳의 경치가 참으로 좋다. 자연 속이라 그런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는데, 이곳 정식 명칭이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서울’ 맞는가.

처음 문학의 집·서울을 창립할 때 내가 지은 이름이다. 당시에 생명의 숲 국민운동 대표의 한 사람으로 있었고,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연을 존중하고 생명성을 소중히 한다는 마음인데, 문학도 역시 인간을 존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일이기 때문에 문학과 자연이 결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거기에서 아름다운 삶의 길을 기대할 수 있었다.

여기서 문학 관련 행사나 프로그램이 열리는가?

중점적으로 하는 게, 작품 쓰느라 서재에 들어앉아 있는 문인들을 밖으로 모셔서 시민들과 가까이 대할 수 있는 수요문학특강이다. 지금 100여 회째 하고 있는데, 문인들이 아주 좋아하고 시민들도 너무 좋아한다. 자신의 문학세계뿐만 아니라 자기 문학의 뿌리가 된 사적인 얘기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외에도 작고 문인 재조명 행사가 있다. 원래 우리는 선비 나라로 시를 사랑한 나라이지만 작년에 신문학, 현대문학 100년 잔치를 할 정도로 역사가 길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나 보고 저서를 통해서만 보던 작고 문인들도 수없이 많다. 그분들이 그대로 묻혀 있게 하면 안 되겠다 해서, 그분들에게 다시 빛을 드리기 위해서 작고 문인 문학 재조명 행사에 역점을 두고 있다.

우리가 강당도 있고 정원도 넓고 아름답기 때문에 문학강좌나 작고 문인 문학 재조명 행사뿐만 아니라 청소년문학축제도 여기서 한다. 가족 백일장도 하고, 국제 심포지엄도 하고. 다 무료기 때문에 시민들이 부담이 없고 해서 정말 이 행사를 기다리는 분들이 많다.

그 행사들 일정이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고 우리 소식지에도 다 예고가 나가기 때문에, 거기 맞춰서 행사에 참가한다.

문학의 집·서울 업무를 보랴, 시작 활동도 하랴 바쁠 텐데, 생명의 숲 국민운동 이사장직도 맡고 있지 않은가? 생명의 숲은 어떤 활동을 펼치는 단체인가?

생명의 숲 운동은 참 중요한 시민운동이다. 내가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으로 있을 때 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1998년에 막 발족을 했고 나한테 공동대표의 한 사람으로 활동해 달래서 참여하게 됐다. 문인들이 다 같이 산에 가서 나무 가지치기도 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숲운동에 참여를 했다.

세계에서 삼사십 년 만에 민둥산을 이렇게 우거진 숲으로 만든 유래가 없다. 이제는 오히려 외국에서 와서 배워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나무 숲이 너무 우거져서, 그냥 놔두면 안 되고 가꿔야 되지 않느냐 하는 소리가 나올 때쯤 해서 아이엠에프(IMF)가 터졌다. 많은 실직자들이 생겼고, 시민단체와 산림청이 손잡고 같이 그분들에게 일거리를 창출해주느라고 숲으로 데리고 가서 가지치기하고 나무 가꾸는 일을 했다. 좋은 일로,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또 하나! 우리 학교들이 운동장, 맨땅이다. 그걸 숲으로 만드는, 학교 숲 만들기 운동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하고 협력해서 학교 숲 만들기를 하고 있는데, 그러자면 학교 담부터 헐어야 한다. 나무를 심어서 담을 만들어야 숲이 되고, 그러면 인근 시민들이 와서 숲을 즐기게 된다.

또 하나는, 농촌은 숲이 좋은데 도시는 너무 삭막하다. 그래서 숲속의 도시를 만들자, 이걸 지금 모토로 운동을 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뚝섬에 35만평 서울숲을 만들었다. 그게 생명의 숲운동이 서울시와 협력해서 같이한 것인데, 5년 동안 우리가 다 가서 나무 심는 걸 도왔다. 기업체들도 봉사를 와서 구역별로 맡아서 도와주었다. 대도시에 가족공원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노을공원, 하늘공원, 북서울꿈의 숲도 그렇고, 앞으로 남은 일은 더 신경쓰면서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문학의 집 서울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특별한, 참 뜻깊은 행사를 열었다고 들었다. 좋은 시들을 가곡으로 불러보는, 그런 행사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지금 8, 9년째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좋은 가곡들이 수없이 많지만 새로운 곡을 만들어 보급하면 좋겠다 하는 취지로, 시인들과 작곡가들과 성악가들, 다 정상급들이 모여서 같이 활동을 하게 됐다. 지난 10월 5일날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우리 시, 우리 노래>… 이 제목 좋지 않은가? 내 가슴에서 나온 제목이다. (웃음)

등단 50주년을 맞은 김후란 시인

선생님께서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았는데, 너무 빨리 지나간 거 같지 않은가. 소감이 어떤가?

세월이 무섭다. 문단 등단하는 게 50년 전에는 현대문학지에 추천받는 걸 가장 중요시 했는데, 거기서 추천받은 지 올해로 꼭 50년 됐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금년 봄에 <따뜻한 가족>이라는 시집을 냈다. 시 전집, 시 선집도 있고 수필집도 여럿 있는데, 10번째 시집을 냈으니 작품을 열심히 써왔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다.

‘따뜻한 가족’이라는 제목에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근자에 와서 우리 인생에 가족만큼 소중한 게 없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사회 구성체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정이 행복해져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야 우리 사회도 행복하다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나무와 동물, 식물, 꽃 다 소중하지만 그중에도 인간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가족끼리의 얽힘은 굉장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범대학을 나와서 교사가 꿈이었을 텐데, 시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는가?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육자가 되고 싶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경향신문에서 대학생 문예작품 모집을 했는데 거기에 시가 아니라 단편소설이 당선됐다. 그래서 소설가가 될 뻔했는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진학해 다니다가 한국일보 기자가 됐다.

한국일보 문화부에 들어가니까 ‘바라춤’의 시인인 신석초 선생이 계셨다. 내가 여기저기 청탁이 와서 글을 쓰는 걸 보더니 “시를 쓸 생각이 있느냐?” 묻길래 “시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가져 와 보라” 해서 ‘오늘을 위한 노래’라는 시 딱 한 편을 골라서 갖다드렸다. 다른 사람은 노트 한 권을 드리고, 또 찾아다니고 해야 하는데. 그런데 보더니 “아, 좋은데” 하더니 접어서 넣었고, 며칠 있다가 ‘金後蘭’(김후란. 나중에 后蘭으로 바꾸었음)이라고 이름을, 필명을 지어서 주었다.

본명이 김형덕인데, 시인으로서 너무 이름이 무겁다, 그러니까 우리 조선조 시대의 허난설헌 같은 시인, 그분의 뒤를 이어가는 시인이 되라는 뜻으로 지어주었다.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왔는데,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시를 열심히 써야겠다는 건 기본이다. 많이 쓰는 게 좋은 게 아니고 단 한 편이라도, 10편이면 더 좋지만,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애송하게 만드는 그런 좋은 시를 가지고 있고 싶다. 물론 그동안 쓴 많은 시 가운데도 사랑받는 시들이 있지만,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집중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다.

시를 읽자, 먹자, 가슴에 꽃피우자

우리 주변에 보면 시인이 되고 싶다,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시는 그리움의 소산이다”라는 말을 한다. 뭔가 목마른 게 있을 때 시를 읽고 쓰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시를 읽자, 시를 먹자, 시를 가슴에 꽃 피우자”는 말이다.

무엇보다 시를 많이 읽어야 한다. 그것은 시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시적인 씨앗이 가슴속에 뿌리를 내려서 시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문학이 문학을 낳는다”는 말을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창작이 나오는 게 아니라 많은 독서량이 있을 때 그게 밑거름이 돼서 자기도 모르게 시적인, 소설적인 영감이 떠올랐을 때 작품을 쓰는 것이다. 독서량과 여행과 사람과의 관계 등등, 그 모든 것이 영양분이 되는 것이다.

인터뷰 김준현 기자 jhk@sctoday.co.kr
사진 양문석 기자 msy@sctoday.co.kr

김후란 시인

서울 출생
1959~60년 <현대문학>지 등단
<한국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등에서 문화부 기자,
<부산일보> 논설위원 등 역임
시집 장도와 장미, 어떤 파도, 눈의 나라 시민이 되어, 사람 사는 세상에, 둘이서 하나이 되어, 오늘을 위한 노래, 서울의 새벽, 우수의 바람, 시인의 가슴에 심은 나무는, 따뜻한 가족(2009), 서사시집 세종대왕 외 다수의 수필집이 있음
월탄문학상, 한국문학상, 펜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재 <생명의 숲 국민운동> 이사장, <문학의 집·서울> 이사장, 한국문학관협회 회장,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공동대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