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관객이 함께 나눠먹는 삶의 식사, 연극 ‘궁극의 맛’
배우와 관객이 함께 나눠먹는 삶의 식사, 연극 ‘궁극의 맛’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6.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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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 '고쿠도메시' 원작, 여자 교도소 재소자들의 이야기로 각색

온라인에서 ‘밥에 미쳐있는 한국인’이라며 도는 밈(meme)이 있다. ‘밥 먹었어?’라는 흔한 인사말을 시작으로 ‘밥 한번 먹자’, ‘겸상도 안 할 것’, ‘제 밥그릇도 못 챙긴다’,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느냐’, ‘밥맛 떨어져’, ‘밥심으로 산다’ 등 밥에 관한 상황별 표현이 이렇게나 많으니, 한국인에게 밥을 빼면 대화 진행이 안 된다는 것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연극 <궁극의 맛>은 밥으로 전하는 인사처럼, 음식에 담긴 일상의 안녕함에 관해 이야기한다. 

▲연극 ‘궁극의 맛’ 프레스콜 장면시연 모습
▲연극 ‘궁극의 맛’ 프레스콜 장면시연 모습

작품의 원작은 남자 교도소 이야기를 다룬 일본 만화 '고쿠도메시'다. 교도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각자 출소하면 다시 먹고 싶은 음식의 맛, 혹은 살면서 먹었던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맛을 이야기하고 우승자를 가린다. 

황정은, 진주, 최보영 작가가 다시 써낸 <궁극의 맛>은 원작에서 ‘재소자, 음식, 죄’ 등 3개의 키워드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온전히 창작했다. 

우선 배경이 여자 교도소로 바뀌었고, 자연스럽게 여성들과 연관된 맛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맛은 여성 재소자들이 살아온 삶, 그리고 기억과 연결된다. 

▲연극 ‘궁극의 맛’ 프레스콜 장면시연 모습
▲연극 ‘궁극의 맛’ 프레스콜 장면시연 모습

크건 작건 사회에서 죄를 저지르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이 참회와 교화의 공간인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은 음식에 대한 단순한 경험이 아닌 기억을 꺼내 보인다. 그리고 각자가 기억하는 궁극의 맛을 저마다의 음식으로 표현한다. 

배우 강애심, 이수미, 이주영, 이봉련, 김신혜, 신윤지, 송광일 등이 출연해 작품 속 재소자들의 맛과 삶을 공유한다.

▲연극 ‘궁극의 맛’ 무대 모습(사진=두산아트센터)
▲연극 ‘궁극의 맛’ 무대 모습(사진=두산아트센터)

삼각형 형태의 테이블이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테이블은 무대이자 객석이다. 배우들은 관객들 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객석 사이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대사를 이어가기도 한다. 

공연을 앞두고 두산아트센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신유청 연출은 “배우 주변에 관객이 있고 관객 앞에 테이블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처음엔 네모난 테이블을 생각했으나 너무 평범하게 보여, 불안정함과 날카로움이 표현되는 지금의 삼각형 형태를 선택하게 됐다”라고 독특한 무대에 대해 설명했다.

맛에 대한 기억은 재소자들을 삶의 궤적에서 이탈하게 만들었던 죄를 저지르던 순간과 과정으로 이어진다. 피해자가 생겨나게 만든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에는 언제나 주의가 필요하다. 가해자 중심의 서사를 만듦으로써 가해자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공감이나 이해, 그리고 미화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변명이나 정당화를 피하며, 그저 그들이 저하고 느끼며 기억하는 맛을 따라가며 그 맛이 어떻게 죄로 이어지는지를 주시했다고 덧붙였다.

최보영 작가는 “재소자에 대해 다루지만 그들을 미화하는 것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라며 “죄는 멀리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사람 한 명 한 명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설계했다”라고 밝혔다.

▲연극 ‘궁극의 맛’ 프레스콜 장면시연 모습
▲연극 ‘궁극의 맛’ 프레스콜 장면시연 모습

<궁극의 맛>은 ‘무의 시간’, ‘자정의 요리’, ‘선지해장국’ ‘파스타파리안’, ‘왕족발’, ‘펑펑이 떡이 펑펑’, ‘체’ 등 7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극이다. 

소고기뭇국, 문어가 들어간 라면, 선지해장국, 파스타, 왕족발, 펑펑이 떡 등 국적도 사연도 다양한 음식은 재소자들의 사연을 담아낸다. 음식에 담긴 인생의 맛을 이야기하던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재밌게도 구토의 흔적이다.

마지막 에피소드 ‘체’를 쓴 황정은 작가는 “‘궁극의 맛’은 음식을 완전히 다 소화한 상태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소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리고 서로 다른 궁극의 맛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만났을 때의 산물은 구토라는 결론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배우와 관객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여러 음식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두산아트센터 기획 프로그램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의 연극 <궁극의 맛>은 오는 20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