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군적부 민가에서 발견, "조선시대 수군 연구 중요 자료"
충청 군적부 민가에서 발견, "조선시대 수군 연구 중요 자료"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6.05 1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흥진 소속 60여 명 군역 의무자 정보 담겨, 16세기 이후 수군편성 체계 실질적 확인

19세기에 작성된 수군 군적부(軍籍簿)가 지역 주민의 신고로 최초 발견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 고문서를 확인했다. 발견된 수군 군적부는 고가(古家)의 벽지로 사용된 상태였다.

안흥진 소속 60여 명의 군역 의무자를 전투 군인인 수군과 보조적 역할을 하는 보인으로 나눠 이름ㆍ주소ㆍ출생연도ㆍ나이ㆍ신장을 부친의 이름과 함께 적혀있다.

수군 군적부는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수군의 출신지는 모두 당진현(唐津縣)으로, 당시의 당진 현감 직인과 수결(手決)이 확인됐다.

문서를 통해 수군(水軍) 1인에 보인(保人) 1인으로 편성된 체제로 16세기 이후 수군편성 체계를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국가에서 관리하던 문서가 수군 주둔지역의 민가에서 발견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가에서 발견한 수군 水軍군적부 軍籍簿중 일부(사진=문화재청)

군적부의 용도 대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작성 형식이나 시기로 미루어 수군의 징발보다는 18~19세기 일반적인 군역 부과 방식인 군포를 거두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안흥량 일대에 주둔했던 수군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왜구의 침입을 막고, 유사시에는 한양을 지원하기 위한 후원군 역할을 했다”라며 “수군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험조처(물살이 빠르고 항해가 어려운 바다)인 안흥량 일대를 통행하는 조운선의 사고 방지와 통제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토된 한시 漢詩중 일부(사진=문화재청)

군적부가 발견된 태안 신진도 고가의 상량문에는 ‘도광(道光) 23년’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어 건축연대가 1843년으로 추측된다.  또한 판독이 가능한 한시 3편도 발견됐다. 시는 당시 조선 수군이거나 학식을 갖춘 당대인이 바닷가를 배경으로 수군진촌의 풍경과 일상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충청 수군 군적부는 현재까지 서산 평신진 수군 군적부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어, 조선 시대 수군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물로 평가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