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인문학 알고리즘 톺아보기] 호흡 바라보기: 타자의 관점에서 관조하는 삶
[청년, 인문학 알고리즘 톺아보기] 호흡 바라보기: 타자의 관점에서 관조하는 삶
  • 윤지수 미술(문화)비평가/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 승인 2020.06.10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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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수(1992년 생)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를 나와 동양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특히, 동시대 문화 현상과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미술, 과학, 역사를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관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윤지수(1992년 생)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를 나와 '미술이론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특히, 동시대 문화 현상과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미술, 과학, 역사를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관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온·오프라인에서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명상 인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비근한 예로 필자도 자주 찾곤 하는 유튜브 몇몇 명상 채널마다 100명이 훌쩍 넘는 실시간 접속자 수는 이를 잘 말해준다. 이들은 이곳에서 명상으로 소통하며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는 시간을 공유한다. 삶에서 겪는 문제들을 털어놓고 상담을 받을 수도 있고 책과 경전을 통해 선인들의 지혜를 접하며, 공부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명상을 하고, 이를 통해 관계 맺기를 하려는 것일까?

필자는 그 답을 호흡에서 찾고자 한다. 호흡이란 내가 지금 존재함을 입증하는 생리적 활동이다. 과거의 그것을 소급 할 수도 미래의 것을 미리 할 수도 없는 호흡은, 현재 내가 존재함에 집중하게 한다. 또한, 호흡은 언어의 창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말을 하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호흡이 필요하듯, 호흡은 내가 나와 만나고 명상을 통한 상상 속의 누군가와 교합하기 위한 통로가 되며, 이에 집중하다 보면 좀 먼발치에서 나를 보게 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성당에서의 묵상을 명상과 같은 활동으로 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나와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이것은 불교에서 '업(業)' 혹은 '카르마(karma)'로 작용하며, 죽은 후에도 후손에게 대물림된다고 믿는다. 필자는 이 모든 갈등이 호흡이라고 하는 행위를 무가치하고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라 여긴다. 이와 관련된 가장 쉬운 예를 소설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는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생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말한다. 톨스토이의 대작 『안나 카레니나』를 오마주한 책답게 인생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주고 시사해준다. 여기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토마시와 테레자의 만남과 인연을 맺게 된 경위에 주목했다. 이 둘은 '6', '베토벤의 음악', '노란색 벤치', '소설 안나 카레니나'라는 우연이 겹쳐 인연이 된다. 그리고 테레자는 이 우연의 요소들을 운명이라 여긴다.

그러나 제3자의 입장에서 이 둘을 바라보는 독자들은 테레자와 토마시의 인연이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기원했음을 알게 된다. 육체를 천박한 것으로 여겼던 어머니는 알몸으로 돌아다니거나 사람들 앞에서 방귀를 서슴없이 뀌는 행동을 일삼는다. 이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테레자는 남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으며 그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시라는 인물이 그녀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정중한 말투, 책을 읽는 고상함까지 그는 그녀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토마시는 테레자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육체의 세계로 그녀를 내몬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토마시를 찾아가지만, 또다시 어머니의 세계로 회귀하고 만다.

테레자와 어머니, 그리고 테레자와 토마시의 관계는 불교의 연기법(緣起法)과 정확히 일치한다. 필자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김성구의 책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를 슬쩍 인용하고자 한다. 이를 대입하면, 인생에서 마주한 인연을 끊으면, 그 인연이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유사한 형태로 재등장하게 되며, 이는 마치 우리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 또한 테레자의 것과 같다. 소설 속에서 테레자가 자신의 심리적 문제에 침식되어 불안, 걱정, 초조해하듯 우리도 매 순간 심리적 갈등에 시달린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의 형태로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며, 우리가 타인을 비롯해 이 세상과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여 삶에서 인연을 통해 나타난 문제에 잠식당하기도 한다. 독자의 위치에서 테레자의 삶을 바라보면 그녀의 괴로운 이유가 보이듯, 우리를 괴롭히는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타자의 관점에서 삶을 읽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호흡을 바라보는 행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의 관계가 분명해지고 안정되면 나와 타인이 연결된 이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 모두가 결국 하나의 존재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대에 실시간으로 접하는 수많은 정보는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더 많이 공감하게 될 수 있다. 현대인들이 명상으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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