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깨순아 밥먹게 엉릉들어와야!
[정영신의 장터이야기]깨순아 밥먹게 엉릉들어와야!
  • 정영신 기자
  • 승인 2020.06.1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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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의 장터이야기
1989 전북순창장 ⓒ정영신
1989 전북순창장 ⓒ정영신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 살아있는 역사 같은 노인이 있었다.

오래된 나무처럼 허리는 굽고 속은 텅텅 비었지만,

생활 속의 지혜나 마을에서 일어 난 수많은 사연을 알고 있었다.

동네구석구석은 물론 내 동무였던 깨순이네 집

수저가 몇 개 있는지 까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1990 전북순창장 ⓒ정영신
1990 전북순창장 ⓒ정영신

또한 마을입구에는 500년 넘는 팽나무가 버티고 있었는데,

여름이면 그 아래 평상으로 마을어르신들이 모여들었다.

쌈지담배를 비벼 넣은 곰방대를 물고 온종일 먼 산만 바라보다

초저녁달이 저수지를 건너 젖은 얼굴을 내밀면 집으로 돌아가신다.

1992 전북순창장 ⓒ정영신
1992 전북순창장 ⓒ정영신

집채만 한 짊을 지고 버스 타러 가는 박씨할매 사진을 보며

내 어릴 적 기억을 색깔과 향기로 만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1988 전북순창장 ⓒ정영신
1988 전북순창장 ⓒ정영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익명의 존재들에게

생기를 불어주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때 문득 잊었던 목소리 하나가 나를 깨운다.

깨순아 밥 먹게 엉릉들어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