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 살아있는 역사 같은 노인이 있었다.
오래된 나무처럼 허리는 굽고 속은 텅텅 비었지만,
생활 속의 지혜나 마을에서 일어 난 수많은 사연을 알고 있었다.
동네구석구석은 물론 내 동무였던 깨순이네 집
수저가 몇 개 있는지 까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또한 마을입구에는 500년 넘는 팽나무가 버티고 있었는데,
여름이면 그 아래 평상으로 마을어르신들이 모여들었다.
쌈지담배를 비벼 넣은 곰방대를 물고 온종일 먼 산만 바라보다
초저녁달이 저수지를 건너 젖은 얼굴을 내밀면 집으로 돌아가신다.
집채만 한 짊을 지고 버스 타러 가는 박씨할매 사진을 보며
내 어릴 적 기억을 색깔과 향기로 만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익명의 존재들에게
생기를 불어주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때 문득 잊었던 목소리 하나가 나를 깨운다.
“깨순아 밥 먹게 엉릉들어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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