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문화 잇기] 사회적 돌봄이 멈춘 사이…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박희진의 문화 잇기] 사회적 돌봄이 멈춘 사이…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 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1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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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코로나 19를 버텨내고 있는 모두의 안위(安危)를 물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적 돌봄이 멈춘 사이 가정 안에 돌봄을 받아야 할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어 온 국민이 분노에 들끓고 있다. 

오늘의 이 컬럼은 참으로 비통하고 참담하고 쓰라리고 미안한 글의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가 멈춘 자리에는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고 욕설과 협박에 시달리다 피부와 내장이 닿을 정도로 굶주리다 죽어가는 우리 아이들이 있었다. 

세 살 난 아들이 침대 위를 어지른다는 이유로 반려견의 목줄을 아들 목에 채워 질식해 숨지게 한 사건-, 아홉 살 아이가 게임기를 고장 내놓고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사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갔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중학교 등교 개학이 지연되면서 아무도 없는 집에 3개월 간 방치돼 음식물을 거의 먹지 못해 스스로 번개탄을 피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중학생 아이의 사건-

쇠막대기와 빨래 건조대로 때리고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가락을 지져 지문이 없어지도록 화상을 입히고 욕조 물에 머리를 담가 숨을 못 쉬게 하는 등 부모의 학대 속에서 탈출해 주민에게 발견된 아이도 있었다. 이 아이는 빌라 4층 베란다에 이틀 동안 목이 쇠사슬에 묶인 체 난간에 자물쇠로 고정돼 있었는데 발코니 난간을 통해 옆집으로 넘어가 도망칠 수 있었다.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일들, 글로 한 줄 한 줄 써내려 가는 내내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이런 끔찍한 일들이 우리 아이들이 일상에서 부모의 손에 죽어가고 있는 사건들이다. 2019년 정부는 ‘아동이 안전한 나라’ 실현을 위해 조직을 개편했다. 우리 어른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아이들에게 안전하지 않는 나라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 적극적인 대책 하나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뒤늦은 후회 속에 죽어간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온 국민은 뒤늦게 그 대책을 논하고 있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 달라는 청원이 잇따르고 훈육을 빌미로 잔혹하게 아이를 죽게 한 범죄자들을 엄벌에 처하게 하려는 법 계정이 한 창이다.

‘정상 가족’ 범위 안에 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돌봄이 멈춘 사이 가족 공동체 안 돌봄 노동자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여성의 일자리 유지가 어렵게 되었고 육아로 인한 우울증에 고통받는 사례도 많아졌다. 이러한 가족 공동체 속에 아이들은 방임되고 방임은 학대로 이어져 잔인한 죽음으로 이어진 것이기에 어른들은 더 이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어른들이 뒤늦게 내놓은 대책들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가정보육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는 외부인에 의한 ‘감시’가 어렵게 되면서 학대에 위험이 더욱 커지고 학대의 수위도 높어진 것으로 보인다. 2017년 37명의 아이들이 학대로 사망했고 2018년에는 28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 아이들의 죽음 앞에 코로나 방역으로 바쁘다는 보건복지부, 권한과 예산이 없다는 여성가족부의 개념 없는 어른들의 대책 없는 처사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아이들을 학대하는 가해자는 77%가 부모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고, 이러한 가해 부모들의 다수가 소득이 없거나 무직인 경우가 많다. 과연 이들 부모가 정상적인 육아가 가능했을지 궁금하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줄 때는 세대 하나하나 소득을 검토하고 세대별 경제력을 확인하여 지원금의 신청 여부를 기준하고 지원금을 교부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돈 나갈 때는 지자체별로 그 기준을 명확히 하고 철저히 조사하며 검토하고 몇 차계 확인하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연약한 아이들이 학대받아 죽어 나갈 때는 경제적-정서적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양육 자격에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의 자격을 감히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리 많은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학대받아 죽어가고 있는 이 사회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가정에 개입해 부모의 양육을 돕고 육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려는 노력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소셜미디어에 등장하는 코로나19 육아탬을 보고있자니 참 웃픈(웃기고 슬픈)현실이다. 가족 안에서 아이의 육아를 돕는 소소한 방법과 방식이 다양하게 공유되면서 아동과 청소년에게 가족이 유일한 믿음의 동반자이자 절대적인 안전망임을 대변하고 있다. 이 고단하면서도 단란한 모습이 코로나 시대 위기의 가정을 이끌고 있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나라, 우리의 정부는 과연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