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솔예가 보인다. 혼예가 답이다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솔예가 보인다. 혼예가 답이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0.06.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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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혼밥’, 지금 우리에겐 이미 익숙하다. 이 말을 일상에서 쓰기 시작한 언제부터 일까? 10년도 되지 않았다. ‘1인용 식탁’이란 단편을 떠올린다. 윤고은의 소설이 출판된 게 2010년이다. ‘혼밥혼술’. 지금은 사전에까지 올라와 있다. “요즘 1인 가정이 늘어나면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행위를 뜻한다.” 이젠 ‘혼캠’ 또는 ‘솔캠’이란 단어(개념)도 익숙해지는 중이다. 혼자서 즐기는 캠핑이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를 잡았고, ‘솔캠 텐트’와 같은 1인용 캠핑기구가 잘 팔린단다.

‘혼예’ 또는 ‘솔예’, 10년쯤 지난 2030년엔,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하나의 트랜드가 될 것 같다. 될 수밖에 없고, 돼야 한다. 우리네 일상이 점차 ‘비대면’으로 가고 있다. 싫든 좋든, 그렇다. 혼자 있어야 하고, 혼자서 처리해야 할 시간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비대면’이라 말은, 이미 우리에게 일상적 삶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전염병의 확산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고, 그로 인해 공연이 취소된 사례는 이미 오래전부터다. 1902년에도 그랬다.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서, 칭경(稱慶)을 축하하는 공연을 성대히 열려고 했다. 새로 지은 원각사 (현, 광화문 새문안교회 자리)에서의 공연을 결국 콜레라의 확산으로 무산되었다. 이 공연을 준비했던 무희(舞姬)와 판소리를 하는 광대(廣大)와 재인(才人)은 협률사를 조직해서 다른 형태의 민간공연을 활성화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1902년의 콜레라와 2020년의 코로나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흥행(공연)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공연자들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공연예술은 거의 극장이란 공간을 통해서 생산하고 소비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제 이 익숙한 방식에서, 서서히 결별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음악가와 무용가에게, 소설가의 생산방식이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일인 작업이자, ‘비대면’의 소통이다. 소설 쓰듯, 공연하는 것은 불가할까?

일인예술(一人藝術), 코로나시대의 답이다. 혼예의 시대, 솔예의 시대가 시작됐다. 개인을 중심으로 예술적 창작활동, 개인을 중심으로 한 공연의 생산과 유통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문화부와 문화예술위원회는 앞으로 ‘일인예술가’를 지원하는데 더욱 힘을 써야 한다. 지금까지의 예술적 지원방식이 ‘단체 중심’의 지원과 ‘극장 중심’의 지원이었다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선 하루빨리 여기에서 벗어날수록 좋다. 코로나의 확산의 위험이 적은 상황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개인과 소수가 참여를 해야 한다. 공연의 소통 또한 최소 1미터는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슬기롭게 예술생활은 무엇일까? 매우 흥미롭게도, 그 방식을 한국의 전통음악과 그 전통음악의 소통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산조(散調와 풍류(風流)가 훌륭한 예가 된다. 산조는 본질적으로 일인예술이다. 고수(鼓手)가 등장을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2미터 이상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산조는 사실 고수가 없어도 되는 음악이다. 산조의 기악연주자가 쉴 때, 고수가 채워주는 방식이 아니지 않는가!

영산회상으로 대표되는 풍류를 생각해보자. ‘따로 또 같이’의 연주방식이다.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할 수도 있으나, 본질적으로 개별악기가 혼자서 연주해도 전혀 어색하거나 무리가 없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인격수양과도 연결되는 풍류는 혼자서 사색하듯 즐기다가, 언젠가 벗을 만나면 합주(合奏)를 하면서 같은 것인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음악을 통해서 화합(和合)을 지향한다. 관계(關係)의 화두(話頭)가 풍류의 본질이다.

산조와 풍류, 이 음악이야말로 일찍부터 ‘혼예’이고 ‘솔예“였다. 영산회상의 합주음악에 익숙했던 율객(律客)들이 점차 객체화(개인화)되면서, 훌륭한 독주형태가 정착했다. 대금의 청성곡(淸聲曲)과 피리의 염영춘(艶陽春)은, 개별악기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연주가의 기량의 최대치를 지향한다. 대금의 전설적 명인 김계선은, 이왕직아악부와 같은 집단에서 일찍이 벗어나 솔로활동을 했기에 ’청성자진한잎‘(청성곡)과 ’관산융마‘와 같은 대금과 단소의 명연주로 각광받을 수 있다. 

국악의 요즘은 어떤가? 요즘의 공연예술은 어떠한가? 너무도 ‘집단적 창작’에 의존한다. 다소 거친 이분법일 수 있으나, 대략 1970년대 중반부터,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대형화는 가속화되었다. 세종문화회관의 개관(1978년)과 함께 동양 최대의 극장을 내세웠다. 서울올림픽(1988년)과 한일월드컵(2002년)은 그런 상황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그 때는 콜레라도 없었고, 코로나도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

이 땅의 공연사의 흐름을 보면,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솔로’(개인) 중심의 무대가 참 많았다. 무용으로 볼 때, 최승희 조택원이 그렇지 않은가? 국립무용단의 단장으로 대형화된 무용극의 틀을 확립한 송범도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송범의 초기 작품은 거의 솔로이며, 그 안에서 개인의 사고(思考)와 예술적 역량(力量)의 최고치를 뽑아내기에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공연의 맥락 속에서 듀오는  관객에게 ‘힐링’을 안겨주는 휴식과도 작품인 경우가 많았다.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으나, 그 안에서도 솔로의 비중이 높았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의 해이기도 한데 1950년대 한국전쟁기에 ‘생명’과도 연관되는 송범의 솔로 작품은, 오히려 요즘의 우리에게 더욱더 설득력이 있다. 대형화된 무용극 도미부인(1984)보다 생령의 신음(1959)이 요즘 우리에게 더 와 닿는다. 돌이켜보면 ‘명무전’의 작품은 모두 독무이고, 한국현대춤작가12인전(1987)만 하더라도, 초창기 혼예’와 ‘솔예’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이 많았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던가? 코로나시대의 예술계에서, 우리가 매우 치중해야 할 것은 ‘개인예술’이다. 무대는 극장이란 공간에 한정할 수 없으며, 일상의 공간이 곧 무대가 될 수 있다. 과거 극장공간에서의 시간적 제약이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예술적 치열함을 보여줘야 한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대한민국의 문화관련 기관에선 이렇게 ‘일인예술’, 혼예와 솔예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크게 힘을 써야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코로나시대의 현명하게 대처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예술적 생존기(生存記). 비대면의 상황이 더욱 늘어지는 추세에, 예술에 있어서 ‘솔로 활동’은 필연이자 당위! 또한 지금까지의 공연처럼 결과중심을 지양하고, 과정에 대한 가치를 더욱 인정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기의 이 땅에서, 과거 최승희 조택원 김계선 송범 같은 인물이 등장해 주길 기대한다. 불청객 코로나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게 해주었다. 이젠 정말로 ‘크고, 많고, 높고, 넓은 곳에서 ’작고, 적고, 낮고, 좁은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솔예‘가 보인다 ’혼예‘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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