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 서예가 “사유의 상실 시대 속 ‘서예 부흥’ 교육 중요…정책적 강제성 필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 서예가 “사유의 상실 시대 속 ‘서예 부흥’ 교육 중요…정책적 강제성 필요”
  • 인터뷰·정리/이은영 발행인·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6.1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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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의 문화’ 사라지니 인문학 쇠퇴…‘손의 쇠퇴’올까 두려워
한국 서예사 시작 ‘빛살무늬’부터, ‘획의 미’로 바꿔야

“오늘날 문자 환경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꿨다. 디지털화 될수록 손가락 기능은 떨어진다. 이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큰일이다”

오늘날 사회의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선, 과거를 살피면 답을 얻을 수 있다.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됐고,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든 고유의 문화가 오래기간 이어져 전통 문화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경제적 가치를 최대 가치로 여기며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성찰ㆍ담론 형성 같은 인문학적 판단의 기준을 약화시키고 있다. 교육은 취업과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한 실용 지식 습득에 중점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대학의 인문학ㆍ예술관련 학과는 경쟁력 없는 학과로 여겨져, 폐과가 늘고 있다. 이중 ‘서예 학과’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수순이다.

‘서예 학과’ 폐과에 자성론을 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얻는 힘을 믿어온 이가 있다. 근원(近園) 김양동 대구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다. 그는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문자 환경의 변화 과정에서 간과하는 부분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국내 ‘서예 학과’ 창설에 앞장선 그지만 시대 변화와 요구에 대응하지 못해 학과가 사라졌다는 따끔한 지적을 던진다. 그러면서 오랜 수련으로 익힌 사유의 완성물인 ‘서예’를 눈에 보이는 경제적ㆍ수치적 혹은 미적 결과물로만 판단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서예계’에 잿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부터 서예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서예진흥법’이 시행되면서 ‘서예 부흥’을 꾀하고 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설립 최초로 단독 서예전이 마련돼, 담론 형성의 장이 만들어졌다.

▲김양동 교수가 인터뷰 하는 모습

김양동 교수는 철농 이기우(鐵農 李基雨, 1921-1993) 선생에게 서예와 전각을 사사하고, 30여 간 교직에 몸담으며 서예ㆍ전각가로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전통 문화 계승이 인간성 회복의 기초라고 여기며, 국내 최초로 원광대학교에 서예과를 창설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중고교국어교사ㆍ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예과 전임강사ㆍ북경대학교 서법연구원 초빙교수를 지냈다.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오랫동안 후학을 양성해 왔으며 현재는 동대학교 석좌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고대문화의 원형 탐구에 관심이 많던 그는, 지난 2015년 『한국 고대문화 상징과 해석』(지식 산업사)을 출간하며 문자의 원형을 신석기시대 토기 표면에 새겨진 ‘무늬’에서 찾았다. 빗살무늬가 아닌 사방을 비추는 ‘빛살’에 기초한 학문적 이론을 세웠다. 2013년에는 성철 스님 열반 20주기를 맞아 스님의 법어로 서화 전시회를 개최하며, ‘종교적 선미(禪味)와 도덕적 교육효과’의 의미를 전했다. 김 교수는 서예·전각을 통한 전통문화 계승 및 서예 발전 모색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미술 부문)을 수상했다.

김 교수는 서예에 있어 ‘법고창신(法鼓昌新)’을 강조한다.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지만 근본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디지털 발전에서 시작된 ‘손의 쇠퇴’를 강력하게 경계한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교육 현장에서 글쓰기 훈련을 강조하며 “문자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모국 문자의 사랑이 애국심까지 이어진다”라고 설명한다. 고도의 기술 발전이 이뤄져도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은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사유’와 ‘감성’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런 면에서 ‘서예’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되찾는 훈련법 중 하나다.

▲김 교수는 서예·전각을 통한 전통문화 계승 및 서예 발전 모색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미술 부문)을 수상했다

시서화(詩書畵)와 문사철(文史哲), 인문학적 총체적 소양이 요구되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다.‘붓의 융창’을 통한 서예 부흥에 힘쓰면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으로 서예 발전에 고언을 아끼지 않는 김양동 교수를 본지 사무실에서 만나, 서예계의 미래 전망에 대해 고견을 구했다.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미술(서예)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이름이 큰 상을 받아서 그 상에 걸맞는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빈약한 수상자를 뽑아 누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너무 겸손하다.(웃음)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서예전 도록에 '한국 근현대 서예의 흐름'논고도 쓰고 자문 역할도 한 것으로 안다. 전시에 대한 평가를 해 달라

국현 측에서 근대ㆍ현대 서예의 흐름에 대해 써달라는 요청이 왔다. 근대 쪽을 쓰다 보니 분량이 넘쳐, 현대 쪽은 중요 사건을 10년 단위로 짚었다. 원고 분량이 한정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해 아쉽다. 전시 기간 중에 세미나도 마련돼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서예와 글씨 분야 또 서예의 예술적 제고가 활발하게 있어야 한다. 또한 정책적으로 예술가 스스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논의가 필요하다.

국현에서 서예를 전시로 다뤄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에서 전시가 최초로 열렸다는 것은, 글씨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인식이 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있을 때는 예술 분야 성과를 모아 점검이나 재조명이 이뤄졌다. 서양화ㆍ동양화ㆍ조각에 대한 조망뿐 아니라 공예도 국전의 한 분야를 차지했는데, 서예는 이제야 최초로 미술관 전시가 열린 것이다.

국현 서예 전시는 캘리그래피를 서예의 한 분야로 보는 관점이다. 글씨의 흐름을 과거 전통 서예부터 현대 캘리그래피로 정해,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로 준비한 것 같다. 글씨 조형 변화와 흐름을 보여준다는 것인데 전시 작품의 안배가 아쉽다. 전시는 과거의 조명뿐 아니라 새로운 비전과 담론 형성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번 서예 전시를 통해 어떤 방향이 제시되고 정책 수립에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양동, 한민족문화의 시원-태양과 신조,210X149cm

오늘날 서예는 예술적 존엄성이 많이 무너졌다. 재인식이 요구되는 시대다. 디지털로 와서 손으로 쓰는 문자 기술이 쇠퇴되지 않았나?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 때도 일부 언급했지만, ‘뇌 기능 쇠퇴’와 병행하는 것이 ‘손의 쇠퇴’다. 뇌와 손이 가지고 있는 원시성이 점점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원시적 기능은 미개한 기능이 아니고 하늘로부터 받은 천부적인 재주와 기능을 의미한다. 모든 문화의 원천인데 원천이 약화되고 있다.

이번 국현 전시에 캘리그래피의 비중이 높은 것에 비판을 했다. 캘리그래피의 예술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현재는 ‘먹의 반란 시대’다. 요즘 문화는 ‘새로운 충격’ 혹은 놀라운 부분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전통 서예는 이 부분이 조금 부족하다. 캘리그래피는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패턴이 양식으로 나온다. 나쁘다고만은 할 수는 없다. 현대 문화의 반영 아닌가? 그 부분이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시일이 지난 이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캘리그래피 분야는 특별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분야라는 느낌이 든다. 서예는 ‘서법(書法)’을 수년간 연마를 해야 한다.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캘리그래피의 장점일 수도 있고 동시에 단점일 수도 있다. 장점은 기존에 없던 양식이 튀어나오는 부분이다. 완성도는 차치하더라도 새롭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단점은 새로운 것이 자칫 천박하다는 개념으로 떨어질 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새로우면서도 고귀해야 하는데 유희적 요소가 많다. 유희적인 것이 고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장난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즉흥적ㆍ도발적 부분이 강조되는 것이 캘리그래피고, 그래야 특징이 발산되지만 전통적 요소를 떠나 ‘지필묵연(紙筆墨硯)’이 아닌 것까지 사용한다. 예를 들면 빗자루ㆍ젓가락ㆍ칼 등으로 할 수 있다.

새로운 재료 확장의 성공 여부는 두고 봐야겠지만 나와 같이 전통 서예를 하면서도 새로운 서예를 추구하는 사람 눈에도 생경하고 엉뚱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부분은 캘리그래피에 대한 나의 개인적 소견이다. 디지털화로 아날로그와 뇌 기능의 쇠퇴를 가져왔다지만, 디지털로 서예를 하는 시대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느냐에 문제다. 아직까지 기계는 기계고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김양동, 閑遊, 60X35cm, 2008

어느 선까지 치고 들어오느냐는 인위적 조정이 필요하다. 교육에서 쓰기 훈련ㆍ펜 습작 훈련과 모필 훈련이 필요하다. 요즘 학생들 펜글씨를 잘 못 쓴다. 오랫동안 컴퓨터로만 글을 써서 손이 퇴화돼 간다. 기존 세대는 글쓰기를 하다 수십 년간 컴퓨터를 하며 일부 퇴화된 것이지만, 요즘 초등학교들은 어린 학생 때부터 컴퓨터 자판을 먼저 접한다. 숙련이 안 된 기능은 몸과 뇌의 기억이 필요한데, 훈련이 되지 않고 쌓이지 않으면 행동으로 드러날 수 없다. 누구나 붓글씨를 시도하고 싶어 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십 년 훈련한 서예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앞서 정책적 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글씨 쓰기가 디지털화 되면서 어디까지가 ‘서예’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교육에 반영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현재 교육은 글씨 쓰기 교육이 배제돼 있다. 요즘 어린이들은 글씨에 대한 고민이나 문자에 대한 사유가 없다. 한글에 대한 생각 혹은 한글 자형의 미적 추구와 같은 것이 학생들에게 훈련되지 못한 것이다. 모국 문자에 대한 사랑, 나아가서 애국심까지 없어지는 방향이 아니겠나? 문화의 맹목이 되는 것이다. 말로만 아름답다고 해서는 안 된다. 직접 글씨를 쓰면서 체험적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체득해야 한다. 정치ㆍ돈 잘 버는 것 등만 잘하고, 그런 쪽으로만 아이들을 바라보게 한다면 세상이 너무 건조하다. 문화예술의 존재 가치도 없어질 것이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처음 생겼을 때 기대가 컸다. 서예박물관을 세운다는 발상은 일본에서도 부러워했었다. 설립 이후 정부 당국에서 방기해 놓고,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운영됐다. 명색만 박물관이지 그 안에 콘텐츠가 없다. 박물관 운영은 예산이 필요한데 예산 책정도 적다. 자체 재정 모으기를 위해 대관이나 임대료를 받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체적으로 하는 기획전이나 돈을 많이 쓰며 진행해야 하는 힘 있는 전시를 만들지 못한다.

다른 분야와 균형을 맞춰 운영해야 한다. 스승인 철농 선생은 선생에게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물려받았나

선생님은 나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그 정신을 물려받아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60년대 초 정한숙 선생의 『전황당인보기』라는 단편소설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 ‘전각’이라는 용어를 처음 알았다. 교편생활을 하며 철농 선생께 배우러 찾아가 문하생이 됐다. 철농 선생께 입문했기에 서예와 전각을 동시에 배울 수 있었다. 두 가지를 배운 것은 내게 예술적 영역 확대의 기회였고 행운이다.

전각을 통해 문자 조형을 익힐 수 있었다. 작은 공간에 문자 조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전각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전각은 글씨를 전서체(篆書體)로 한다. 전서는 서예 중에 가장 오래된 자형이다 보니 자연히 문자학에 관심을 갖고 기초를 익힐 수 있었다.

▲김양동, 학의 꿈, 42X37cm

한국서예사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봐야 하나

보통 414년에 세운 광개토태왕릉 훈적비(勳績碑)부터 한국서예사의 시작점으로 두는 경우가 많은데, 연대가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중국 서예의 시작을 살펴 문헌을 보니 7000여 년 전, 황하 중 유역의 신석기 문화인 앙소 문화 속 도기에 나타난 도편에 있는 획들부터 시작하더라. 도편(陶片)에 있는 획(劃)은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자 의미 있는 기호라는 것이다. 문자인 동시에 획의 시작을 서예의 출발로 보고 있더라. 거기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한국 도기의 획을 찾아보니 소위 머리 빗질을 하는 ‘빗의 살’ 같은 무늬가 있는 신석기시대 토기를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라고 하더라. 도기 속에 각 획은 당시 시대의 상징적 의미를 담은 사유를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천손족(天孫族)인 우리민족이 태양을 사유의 원형으로 삼은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빗살’이 아닌 ‘빛살’이란 걸 주장했다. 한국 문화의 시원이 나타나는 문양 해석부터 바르게 해야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바르게 설명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교수신문에 2013년 6월부터 연재했었고 2015년도에 책이 발간됐다. 우리문화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젊은 연구자들이 더 활발한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

서예과를 대학에 처음 설립하는데 기여한 주인공이다. 그 때가 대한민국의 서예 열풍이 분 시기였다. 그러나 현재는 서예가 쇠퇴기를 맞고 있다

어렵사리 대학에 서예과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학을 취직 기관으로 여기다 보니 취업률에 따라 학과 점수가 매겨진다. 학과의 학문력과 예술적 성취도 등은 점수로 매기지 않는다. 총체적 영역에서 교육을 봐야 하는데 취업 여부에 중점을 둬, 학과 가치를 판단해 예술학과가 거의 사라졌다.

▲김양동 교수가 작품 활동하는 모습

서예과 창설에 힘을 보탠 한 사람으로서 오늘날에 서예과가 사라진 것에 대해 뼈아프게 자성하고 있다. 교육이 시대에 맞는 변화를 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 학과 커리큘럼을 시대 변화에 맞춰 캘리그래피ㆍ컴퓨터 디자인 제작기법 등을 가르치고 서예에 대한 새로운 시각 교육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폐과된 가장 큰 이유는 학생의 수요가 없다 보니 그렇다. 글씨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서예나 전통적인 것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지 않았나 싶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 쫓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얻는 힘을 발견 못한 결과다.

서예는 단순히 글씨의 미학만을 쫓는 분야가 아니다. 수천 년간 한 분야가 지속돼 온 데는 이유가 있다. 예술 가운데 서예는 인문학적인 성격이 가장 짙은 분야다. 내용과 형식ㆍ소재와 정신이 인문학의 종합이다. 문자 예술로서 정신과 방법 면에서 전통적 고유성과 역사적 계승성이 강하다.

문자 기호라는 단순한 소재와 제한된 표현 도구인 지필묵연(紙筆墨硯)만을 가지고 인간의 사유와 감성을 표현해내는 행위를 수천 년간 변함없이 지속해 왔다. 서예는 다른 예술에 비해 변함없는 양식을 추구하며 동양예술의 정수인 절제와 여백의 미학을 담고 있다. 정신과 철학이 내재된 예술이기에 수련을 통해 인간의 사유를 다스려 인간을 철학적으로 만들며, 동양적인 도와 선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이 부분이 서예의 존재 가치이자 본질인 것이다. 서양은 기계를 이용해 효과를 얻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붓과 먹에 중점을 둬, 효과를 극대화한 점이 동양과 서양이 가장 대비되는 점이다. 서예는 동양적 사유의 방법을 담는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국가정책으로 실행하고 있지만 개인간에도 스스로 물리적 거리를 두는 추세다. 이렇게 개인의 활동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서예나 인문학이 부흥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쇠퇴는 지속되고, 부흥은 힘들 것이다. 살아가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책적으로 강제성을 동원하지 않으면 어렵다. 초등학생 때부터 쓰기 훈련을 교과과정에 포함시키는 등 강제 훈련이 없다면 점점 쇠퇴될 것이다.

서예의 본고장인 중국은 1966-1976년 문화대혁명 기간 서예를 버렸다. 이후 수 십 년 간 반성해 오늘날 서예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중국은 중국적인 정신과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열 가지를 선정, ‘중국 10대 국수(國粹)’를 정했고 그 가운데 서법(書法)을 중국 문화 정수(精粹) 첫째에 두었다. 우리나라 대학에 서예과가 생길 당시만 해도 중국에는 서예과가 없었다. 독립된 서예과로서는 일본이 제일 빨랐고, 우리나라가 두 번째였다. 중국은 국책이 발표되자 전국 2000개 대학교 가운데 172개 대학이 서예전공학과를 개설했다. 10여 년만의 일이다.

우리는 쇠퇴하고 중국은 부흥한 것이다. 중국은 정책적으로 서예 중흥을 위해 서예를 중심에 두고, 전통 중국 정신문화의 회복과 고양 등 여러 가지로 종합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 대학에 서예과가 생겼는데 이를 가르칠 교수가 없었다. 실기나 실질적으로 서예를 가르칠능력자는 많지만 석사나 박사 학위를 갖춘 서예인이 없었던 것이다. 속성으로 이런 부분을 갖추려다 보니 지금 한 개 남은 경기대의 석ㆍ박사 과정에 수십 명이 몰려와 있다. 이들에게 단순히 졸업장만 줄 것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로 활용해야 한다. 중국 유학생들에게 서예뿐 아니라 문화 탐방도 시켜야 한다. 한국 문화를 현장에서 체험하고 배우고 다름을 알고 이해하는 방식. 그것이야말로 참 공부라 생각한다.

▲김양동, 반분자, 74X44cm

앞으로 ‘붓의 문화융성’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지금 연구하는 분야의 논제가 몇 가지 더 있다. 그 부분을 집필 중인데 한 권의 책으로 묶기에는 분량이 부족하고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빛살무늬’ 작업을 중심으로 한 대작도 하고 싶다.‘빛살무늬’ 작가이자 이론을 처음 제시한 사람으로서 이론에 바탕을 둔 작품을 많이 남기고 싶다.

그동안 분열되었던 서예 3~4개 단체가 하나로 묶어졌고, 지난해에는 ‘서예진흥법’이 국회에서 어렵게 통과됐다. 내가 대학에 서예과 창설을 주장할 당시 군사문화인 ‘교련’과목을 빼고 한국성을 찾을 수 있는 서예를 교과목으로 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도적 차원으로 진흥책이 만들어 졌으니 그에 걸맞는 커리큘럼과 교육과정 변경 등 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해야한다. 정책적 지원을 강화한 제도적 바탕 위에, 국가 지도자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서예에 관심을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