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자들을 조명하는 시선, 『아흘람 시블리』 국·영문판 동시 출간
숨은 자들을 조명하는 시선, 『아흘람 시블리』 국·영문판 동시 출간
  • 유해강 대학생 인턴기자
  • 승인 2020.07.0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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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아흘람 시블리(Ahlam Shibli)가 20년간 작업한 17개 시리즈 가운데 135점 선별해 수록

 

1947년 발발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국경 분쟁을 겪으며 자란 사진가 아흘람 시블리의 작품집이 출간되었다. 아흘람 시블리는 난민의 삶을 겪으며 이를 작품으로 승화한 작가로, 중동과 동아시아, 유럽 등에서 다양한 전시에 참여했다. 

아흘람 시블리 | 열화당 사진문고 | 정가 17,000원(국문판), 19,000원(영문판)
아흘람 시블리 | 열화당 사진문고 | 정가 17,000원(국문판), 19,000원(영문판)

 

『아흘람 시블리』를 통해 눈여겨 볼 주제 하나는 바로 ‘집’이다. 시블리의 ‘집’은 단순한 거주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근원적인 장소 떠나야만 했던 이들이 머무는 공간을 통틀어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렇기에 ‘집’은 임시 거주지, 국가를 횡단해 개인의 몸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한편으로 시블리의 작업 방식은 영화의 몽타주 기법과 유사하다. 한 장의 사진이 지닌 힘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장의 사진을 나열하는 것으로 서사를 떠올리게끔 유도하는 방식이다. 가령, 「도큐멘타 14」는, 이산이라는 공통 경험 하에 나치의 패배 후 쫓겨난 독일인들과 지중해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의 사진을 한 데 모은 것이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는 실험도 이루어졌다. 시블리는 분쟁 전의 마을을 묘사하는 편지와 그 이후의 사진을 함께 배치했다. 관객은 보다 생생히 장소, 시간, 사건에 대해 떠올림으로써 작품의 완성에 관여할 수 있다. 예술의 사회 참여적 성격이 강조된다. 시블리는 이를 산투 모포켕과 데이비드 골드블라트로부터 받은 영향이라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시블리는 숨겨진 것과 숨은 자의 편이며, 그들과 함께 숨은 채로 산다.”


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시블리가 ‘숨어 사는 자’들에게 주목함을 지적했다. 시블리는 이스라엘 군인과 정착민들이 보인 혼란, 그들이 억압을 위해 사용한 그물망과 창살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재사용하는 것을 포착했다. 결국 그들은 모두 분쟁이 지나가기를 움츠리고 기다리는 ‘숨은 자’들임을 예민하게 파악한 것이다. 

아우르자면 『아흘람 시블리』는 과거와 현재,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여 숨어있는 이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시블리만의 시선과 열정을 담은 작품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아흘람 시블리』는 편집자와 작가가 한국과 팔레스타인을 오가며 긴 여정을 함께한 끝에 국·영문판 동시 출간되었다. 한편 국내외 대표 사진가들을 두루 소개하는 열화당 사진문고는 스웨덴 사진가 『라르스 툰비에르크(Lars Tunbjörk)』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유해강 대학생 인턴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