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극장 25주년 기념 특별포럼②]재건축 방향성과 새로운 포지셔닝
[정동극장 25주년 기념 특별포럼②]재건축 방향성과 새로운 포지셔닝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7.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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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극장 현황 파악 및 정동극장 공간현황 분석
새로운 정동극장의 방향성 확립과 구현 위한 노력의 형태

[①편에 이어서]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21

<정동극장 25년의 역사와 공공극장의 역할>에 대해 토론했던 첫 번째 세션에 이어 두 번째 세션은 <정동극장의 미래>를 주제로 오성호 메타기획컨설팅 본부장이 ‘정동극장 재건축 방향성과 타당성’을, 김종헌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가 ‘정동극장에 대한 수요와 기대’를 발제했다. 

오성호 본부장 “소규모 콘텐츠가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넥스트 스테이지 필요”

먼저 마이크를 잡은 오성호 메타기획컨설팅 본부장은 지난 4월부터 정동극장과 함께 재건축의 방향성 및 타당성을 고민했다고 밝히며,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진행한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여 발표했다. 그리고 첫 번째로 25년이라는 세월을 가진 정동극장의 역사와 지금까지 진행해온 것들을 살펴봤다고 말했다. 

▲정동극장 25주년 특별포럼 오성호 본부장 발제모습(사진=정동극장)
▲정동극장 25주년 특별포럼 오성호 본부장 발제 모습(사진=정동극장)

그는 “정동극장은 새로 만들어지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조직적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라며 “여태껏 축적해온 것들을 발판삼아 발전 가능성을 알아보는 과정이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공연장을 단순히 관객만 상대하는 공간으로 봐선 안 된다”라며 “문체부 산하의 공공극장인 정동극장이, 공연 산업이라는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했다”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제작 과정 및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파악이 뒷받침됐다.

우리나라 공연장은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소극장과 예술의전당 이후에 전 지자체로 뻗어왔던 큰 문예회관들이 있고, 대부분 대극장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극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소규모 공연들이 대극장으로 유입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러한 연유로 현재 지자체에서 진행되는 공연들은 대극장 규모의 작품인 경우가 많고 국립창극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등 국립 예술 단체의 공연 또한 대형 극장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도 극장 활용을 위한 자체 제작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공연을 유통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대관 프로그램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대규모 공연을 수용하지 못하는 공연장은 사실상 쓸모없는 공연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오성호 본부장은 “기초적인 아이디어와 창작을 위한 지원은 우리 공공재에 꽤 많이 있고, 작은 공연장을 위주로 많이 양성되고 있다”라며 “그러나 새로운 시도들이 좀 더 규모 있는 공연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소극장에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작은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정동극장에서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연구 과정에서 이 부분은 ‘2차 제작단계’라 지칭했다. 

모든 공연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그 아이디어가 공연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여러 제작 지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관객 앞에 시현해 낼 수 있을 정도의 규모에 그친다. 소극장에서 중·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기는 것은 단순한 제작비용 예산의 문제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공연하는 예술인들이 공간을 메울 수 있는 역량을 체계적으로 밟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동극장 재건축 기본설계 검토 대안 (사진=오성호 본부장 발제 자료)
▲정동극장 재건축 기본설계 검토 대안 (사진=오성호 본부장 발제 자료)

공연의 규모가 커질수록 많은 인원과 제작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모험과 도전을 할 수 없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과정의 중간 단계가 부재한 상황이다. 정동극장의 새로운 미션과 비전은, 중요하지만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소규모 콘텐츠를 제작하고 발전시키는 넥스트 스테이지 역할을 이들이 자처하고 나섰다.

우리는 소극장, 중극장, 대극장을 주로 객석 규모로 나눈다. 300석 미만은 소극장, 300석부터 700~800석까지는 중극장, 그 이상은 대극장이라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 대해 오성호 본부장은 “공연 생태계에서는 객석의 규모보다는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기능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중극장이라 하면, 무대 사이즈가 대극장만큼 크지는 않지만, 대극장의 기능들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무대 연출에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라며 “대극장으로 규모를 확장하기 이전에 많은 것들을 시현해 볼 수 있는 중극장 무대가 많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중극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극장 이전의 스텝으로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은 아직 모자라다는 것이 조사를 통해 내린 그의 판단이다.

그는 “객석 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550~620석 확보를 예상하며, 제작을 도와줄 수 있는 중극장 규모는 갖추었으면 한다”라며 “더불어 다양한 작품을 공연할 수 있는 무대와 이를 돕는 기술 등 제반 환경 또한 필요하다”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콘텐츠가 지속해서 만들어져야 전해지는 형태 또한 다양해질 수 있으나, 현재는 콘텐츠의 부재가 심각한 상황이다. 다양한 콘텐츠가 생성되는 환경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오성호 본부장은 이를 공연장이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간사랑’ 이미지(사진=김수근문화재단)
▲‘공간사랑’ 이미지(사진=김수근문화재단)

발제를 마무리하며 오성호 본부장은 ‘공간사랑’을 언급했다. ‘공간’ 사옥 지하 1층에 자리했던 공간사랑은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기획적 안목을 토대로 실험적 방식으로 극장에 올림으로써 새로운 유형의 공연예술 작품을 만들어낸 기획 제작극장이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지향점으로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채우는 공익성 기반 공연장을 추구하며 연간 101개의 작품, 490회 공연을 진행했다. 

공간사랑은 기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의 활동들을 접목시키거나 전통으로 남아있던 예술 분야를 현대극장에 맞게 무대화하는 등 새롭고 실험적인 기획 제작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 공간에서 김덕수 사물놀이, 공옥진의 창무극 등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으며 재즈, 실험극, 인형극, 실내악 등 비주류 공연과 현대무용, 연극, 전통예술, 클래식, 영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 페스티벌 및 교육 프로그램이 전개됐다. 

공간사랑은 단순히 공연 관람을 위한 소극장을 넘어 당시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예술가와 기획자의 일상적 만남 속에서 다양하고 실험적인 창/제작 활동에 기여했다. 그는 “공간사랑의 물리적 공간보다는 기여했던 기능적 측면에서 바라봤다. 이곳은 1970년대 공연 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어준 기획 공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라며 “정동극장이 기획 중심의 공연장으로 변하는 과정 안에서, 눈여겨봐야 할 사례라고 생각한다”라며 추구하는 정동극장의 공간적 역할에 대한 방향성을 내비쳤다.

김종헌 교수 “민간예술단체와 상생하는 인핸스먼트 제작에 적극 참여 권장”

김종헌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정동극장에 대한 수요와 기대’라는 주제로, 공연시장의 현주소 짚어보고 이후 추진 세부 아이디어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정동극장은 왜 변화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정동극장 25주년 특별포럼 김종헌 교수 발제 모습
▲정동극장 25주년 특별포럼 김종헌 교수 발제 모습

김종헌 교수는 정동극장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결단이라 표현했다. 전통공연을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오던 정동극장을 그 외의 장르를 다루는 예술인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공연장’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전통 상설공연이 폐지되면서 점차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공연 장르를 제작하는 공연장에는 그만큼 다양한 공연 관계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것이다. 정동극장의 모든 이슈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일’이 되는 것이다. 

또한 “정동극장을 향한 세간의 날선 비판 중 하나는 ‘매출 규모 대비 인적자원이 비대하다’라는 평가였다”라며 “규모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이러한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정동극장이 장차 ‘트라이아웃 플랫폼’ 역할을 해줄 것이라 점쳤다. 현재 국내에는 인큐베이팅부터 트라이아웃까지 수없이 많은 프로그램들이 존재하지만, 쇼케이스 수준의 낭독공연 또는 창작자 양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정식 공연에 비해 매우 적은 예산과 짧은 준비 기간이 투자되는 약식 수준의 공연이 대다수이다. 소재의 발전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김종헌 교수는 기존의 지원프로그램 및 주최사와 경쟁 구도를 이루기보다는 차별화된 시스템으로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어 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정동극장은 구체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의 시장 생존 가능성 즉, 작품성과 흥행성을 확인하기 위한 정식 공연 형태를 통해 판단의 기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라며 “백신 임상실험 과정이 공연에도 적용된다면 1상, 2상, 3상 중 정동극장 트라이아웃은 3상 단계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판단했다.

더불어 공공극장과 민간예술 단체 각각의 가치 실현을 존중하며, 장점이 충분히 반영되는 인핸스먼트 제작 방식 모델을 제안했다. 국내 인핸스먼트 제작의 많은 경우 민간이 주도하고 공공은 재원만 지원하는 소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교수는 서로의 가치관과 자산을 적극 활용한다면 좋은 결과를 창출해낼 수 있다고 말하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 <적벽>을 들었다. 극장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보다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작품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비영리 극장과 상업 프로덕션의 공동제작 시스템인 인핸스먼트 딜(Enhancement Deal)의 성공 사례는 국내외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뉴욕의 퍼블릭 시어터는 <해밀턴(Hamilton)>, <렌트(Rent)>, <펀홈(Fun Home)> 등이 이에 해당하고, 국내 사례로는 안산문화재단과 아이엠컬쳐가 만든 <전설의 리틀 농구단>, 여주시와 HJ컬쳐가 제작한 <세종, 1446> 등이 있다. 김종헌 교수는 인핸스먼트 방식을 소개하며 “너무 재정적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말고, 가급적 초기에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이를 공공극장이 할 수 있는 의무이자 권리라고 말하며, 동시대 시장 생태계의 번영과 풍요에 기여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공익이라고 표현했다. 

▲정동극장 25주년 특별포럼 현장스케치(사진=정동극장)
▲정동극장 25주년 특별포럼 현장스케치(사진=정동극장)

각 세션 발제 후에는 발제자와 초청 패널이 함께 토론 시간을 가졌다. 토론자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바라봤던 정동을 이야기하고, 운영 방향에 대해 제언했다.

정호붕 교수 “전통예술의 현재화는 그 자체가 하나의 방향”

지난 2017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적벽>을 이끌어온 정호붕 교수는 제작 과정과 그 과정에서 도출된 내용을 전달했다. 대학 공연에서 시작된 <적벽>은 정동극장 극장장의 초청으로 ‘창작ing’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4년 동안 공연하게 됐다. 

정호붕 교수는 “<적벽>은 전통예술을 현대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융합시켜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품이며, 스태프들의 20년 전통예술 제작 노하우가 투입됐다”라며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전통예술을 현대화시키고자 하는 세대의 연결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탈춤 부흥과 사물놀이의 출연을 1세대 움직임으로 본다면, 2세대는 뜻을 같이한 이들이 훈련과 교육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기존 전통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환경을 제공했다”라며 “<적벽>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3세대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지금 공연 예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판소리 뮤지컬 ‘적벽’ 공연 모습(사진=정동극장)
▲판소리 뮤지컬 ‘적벽’ 공연 모습(사진=정동극장)

전통 소리의 요소들이 지닌 신선한 매력과 가치를 새삼 인정하고 요구하는 시기이다. 기존 문화의 중심 이동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에 두터운 예술적 미학이 잠재되어 있는 ‘전통 예술의 현재화’는 그 자체가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규원 본부장 “코로나 시대, 공공이 나서서 극장 문 열어줘야”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본부장은 “사람 나이 25살이면 모든 걸 다 배우고 취업할 시기인데, 경기가 좋지 않아 취업을 못 하고 있다”라며 현 시국을 빗대어 표현했다. 그는 모든 극장은 공공성을 가지며, 국가와 정부가 아끼고 보존해야 할 공공재라고 말했다. 더불어 민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김규원 본부장은 “코로나 시대에 공공극장이 꼭 해야 하는 일, 그것은 객석 점유율이 낮아도 극장을 여는 것”이라며 “그 과정이 고되고 힘들겠지만, 민간에 비해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공공이 극장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동극장이 외부 공간을 활용하여 바깥과 연계할 수 있는 좋은 위치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야외공간에 대한 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그 가치를 활용할 수 있는 공연장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도심의 공연장이라는 공간 전략이 필요하며, 야외와 실내 그리고 문화적인 가로(街路)가 시너지를 누릴 수 있는 정동만의 공간 전략 구상이 요구된다.

정동극장의 변화가 ‘바른 움직임’(정동·正動)이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극장의 새 사명(mission)에 대한 구성원 전체 인식 공유 및 주도적 노력들이 모인다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