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박시종의 ‘오색팔중(五色八重)’-한국무동인회 창단공연
[이근수의 무용평론]박시종의 ‘오색팔중(五色八重)’-한국무동인회 창단공연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7.1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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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과 표현의 형식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논어에선 이를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 하고 회계학에서는 이 개념을 ‘표현의 충실성’이라 설명하면서 신뢰성의 기본요소로 삼는다. 2017년 창단한 한국무동인회(韓國舞同人會)의 창단공연 ‘오색팔중’(五色八重)‘을 남산국악당(크라운해태홀)에서 보았다(7.4).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엔 100명만이 입장했다. 좌우 옆자리가 비워지고 기침소리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한 객석은 코로나가 가져다 준 제약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편안하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관객을 위한 선물이기도 했다.

공연은 10분 내외의 6개 춤으로 구성된다. 김지성을 비롯한 일곱명이 춤춘 김수악류 진주교방굿거리춤으로 문을 연다. 무용수들은 붉은 속치마가 비치는 남색치마에 빨강 옷고름이 길게 늘어진 노랑색 저고리를 입었다. 무대 앞줄에 놓여있던 소고를 집어 들고 세 무리로 나누어진 무용수들이 느리고 빠른 굿거리장단을 넘나들며 흥겨움과 고즈넉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두 번째 춤인 ‘합(合)’은 작은 북(버꾸)과 장고를 나눠 든 남녀(박정한, 이세이)가 차례로 등장한 후 음양의 대비와 겹침을 통해서 생기를 일으키고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준 춤이었다. 

세 번째 ‘화조(花鳥)’는 부채춤과 학춤의 만남이다. 꽃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인 의상으로 치장한 여인(남기연)이 똑같이 화려한 부채를 두 손에 나눠들고 학으로 분한 전건호와 한데 어우러지며 자연과 인공의 미를 조화시킨다. 네 번째 춤은 태평무다. 한성준의 원무가 한영숙과 강선영으로 나누어 전승되고 한영숙 류 태평무의 전통을 박재희가 이어받았다. 단아하고 절제된 춤사위에 의상 역시 화려하지 않은 한영숙 류 춤의 특징을 잘 살려주었다. 남색 치마, 붉은 색 안 치마, 붉은 옷고름이 달린 미색 저고리와 당의를 입은 다섯 명 무용수들(송효산, 김혜연, 정선아, 김태희, 이세이)의 우아한 자태가 고급스러운 전통춤의 멋을 한결 드러내준다.

박정선이 홀로 출연한 ‘월하(月下)’는 가장 시적인 춤이다. 달빛 아래 옅게 깔린 안개를 배경으로 소복(素服)의 여인이 등장한다. 달빛을 타고 내려온 선녀를 연상케 한다. 제27호 승무이수자면서 동아무용콩쿠르(은상)와 서울무용제(연기상), KBS국악대경연(장원) 등 각종 경연대회를 휩쓴 그녀의 매혹적인 춤 연기가 박시종의 섬세한 안무를 타고 한국춤의 서정성을 극대화한다. 

박시종의 2019년 작품인 ‘춤 아리랑’이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한국무동인회 무용가들이 모두 출연한다. 여섯에서 일곱, 아홉 명으로 늘어난 여인들은 모두 흰 치마와 검정저고리, 빨강 옷고름을 달았다. 두 명의 남성무용수는 검정색 두루마기에 갓 쓴 차림이다. 무대가 좁을 듯도 한데 오히려 무대엔 여백이 있다. 

각각의 무용수가 연출하는 살풀이춤엔 개인의 희로애락이 담겼고 그 마음들이 하나로 용해되면서 강강수월래와 같은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진다. ‘아∙리∙랑’ 세 글자가 토막토막 느리게 연결되고 정겨운 선율이 나지막이 흐르는 ‘춤 아리랑’은 살풀이와 강강수월래가 한 무대에서 융합된 박시종 판 창작무의 전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섯 편의 춤들은 모두 시정(詩情)이 넘치고 무대는 단순하지만 신비롭다. 무용수들의 표정이 살아 있고 자태는 단아하지만 춤사위에 탄력을 느낄 수 있는 60분이었다.    

한국무동인회 창단공연의 제목은 ‘오색팔중(五色八重)’이다. ‘오색팔중 산(散)동백꽃’을 줄인 말이다. 울산이 원산지면서도 임진란 때 일본으로 반출되어 이 땅에서 종적을 감췄다가 4백년 만에 환국해 울산에 다시 심겨진 동백꽃을 이름이다. 여덟 겹 꽃 잎을 가진 다섯 가지 색깔(흰색, 붉은색, 진홍색, 분홍색, 연분홍색)의 동백꽃을 한 그루나무가 피워내고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지는 여느 동백꽃과 달리 한 잎 두 잎 분산해서 떨어지는 특이한 희귀종이다. 

한국춤의 전통을 다시 찾고자 오랜 침묵을 깨고 모인 동인들은 산(散) 동백꽃의 귀환을 상징한다. 한 나무가 5색 꽃을 피우듯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면서 오색팔중과 같은 창의적인 춤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이 제목에 집약되어 있다. 제목이 상징적인만치 팸플릿은 관객친화적이다. 깔끔한 디자인에 여백이 있고 문체는 유려하다. 작품의 제목과 팸플릿 자체가 공연의 일부임을 깨닫고 있는 안무가는 흔치 않다. 내가 이들의 공연을 보고 문질빈빈이라고 평가한 이유다. 한국무동인회가 시적 감성과 여백의 미가 넘치는 무용단으로 오래도록 살아남아 우리 전통춤의 이정표가 되고 관객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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