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 최진호 조각가, 역사적 장소에 내 해치상 세워지길...공간 의미 기억되고 부각돼야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 최진호 조각가, 역사적 장소에 내 해치상 세워지길...공간 의미 기억되고 부각돼야
  • 인터뷰·정리/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7.1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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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조각을 통해 ‘한국 고유의 원형’ 찾아, 현대적 요소 반영한 연구 이어와
“조각, 도시 경관을 해치는 흉물 되지 않게 관리ㆍ감독하는 ‘관리청’ 필요해”

사회 현상에 자신만의 의식을 갖는 일은 어렵다. 그동안 해당 사안을 보고 쌓아온 인식과 수행ㆍ인지 과정 등에서 의식이 나오기 때문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자신만의 의식을 가지고 바라보는 세상은 남들과 다르다. 특히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것은, 과거를 통해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시도이기에 필요하다. 이렇듯 남다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법과 정의의 상징 해치를 조각해 온 사람이 있다. 최진호 작가(조각가)다.

최 작가는 조각을 통해 ‘한국 고유의 원형’을 찾고자 역사와 전통문화를 연구해 왔다.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약 30여 년 간, 최 작가가 만든 해치만 200여 개에 이른다. 그는 역사 전문가를 만나 작업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고증 연구도 해왔다. 또한 전국의 사찰을 돌며 한국 조각의 맥락적인 흐름을 배웠고, 이를 자신의 조각에도 새겨 왔다.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조형에 변화를 줘, 전통 조각의 재창조를 시도해 왔다.

▲최진호 작가가 ‘비움과 채움의 탑(남과 여)’ 작품 옆에 서 있는 모습. 지난해 관훈갤러리에 전시됐던 ‘비움과 채움의 탑’은 현재 안녕인사동 12층 ‘스페이스 오’ 야외 전시장에 전시되고 있다

2009년 최 작가는 ‘청렴의 해치’가 서울시청사 앞에 세울 당선작으로 선정되면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 외교부 공모에도 당선돼, 그의 해치상은 네덜란드 헤이그 ICJ국제사법재판소에 설치됐다. 또한 강릉대학교ㆍ중앙대학교 등에서 후학 양성을 위한 강의도 했다. 서울시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 및 종로구청 디자인 심의위원을 거쳐 현재는 종로구청 도시분과 비전위원이다. 또한 콘텐츠진흥원에서 대중문화예술인들에게 수여하는 대중문화예술상의 트로피를 2009년부터 현재까지 제작하는 등 작업을 이어왔다. 최 작가는 조각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키우는데 기여하고, 전통 계승 및 작업 영역 확대의 공을 인정받아 제 11회 서울문화투데이 최우수상(미술 조각)을 수상했다.

그는 역사적인 공간이나 중요 공간에 의미를 더해 온 행보를 이어가길 바란다. 대한제국 시기 역사적 의미가 있는 덕수궁 중명전이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중국 하얼빈 역에 ‘해치상’을 놓고, 모아이 석상과 비슷한 의미에서 한반도 평화의 염원하는 의미를 담아 우리나라 동ㆍ서ㆍ남 바다 끝에 ‘해치상’이 세워지길 희망한다.

한편으로 최 작가는 사회 문제에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등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공공미술’분야 용역 비리에 대해 “강력한 제재가 없다면 문제는 재발될 것”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감사원이나 검찰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정의를 상징하는 ‘해치의 눈’이 작동해야 사회 부조리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관리청’을 만들어 야외조각 설치를 위해 투입되는 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이미 설치된 조각은 관리ㆍ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조각이 설치되면 별다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설치된 조각은 도시 경관을 해치는 흉물로 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최진호, yellow space, 2019

이렇듯 자신만의 뚜렷한 의식을 갖고 작품 세계를 일궈온 최진호 작가를 본지 사무실에서 만나 그동안의 작업과 앞으로 작업 방향에 대해 들었다. 또한 ‘공공미술’의 문제 및 해결책ㆍ포스트코로나에 대비한 현장 예술인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최우수상 미술(조각) 수상을 축하드린다. 수상 소감을 통해  “한국 고유의 원형을 찾고,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조각들을 많이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조각 발전을 위해 관심 두고 있는 부분은

덕수궁에 중명전이라는 건축물이 있다. 그 건축물은 대한제국 시기 고종황제의 집무실인 편전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불법적으로 체결된 공간이다. 이후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이준·이상설·이위종 등을 파견한 장소 역시 중명전이다. 공간에 대한 안 좋은 역사와 기억도 있지만, 외교적 노력도 시도된 장소가 덕수궁 중명전이다.

당시에 밀사들은 육로를 통해 헤이그로 이동을 했는데, 정작 만국박람회가 열릴 때는 참여하지 못했다. 일본의 견제도 있었고 대한제국이 국가로서 인정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외국어에 능통한 이위종 선생은 한이 서려, 만국기자협회에서 일본의 야만적 침략행위를 세계 여론에 호소했다. 이 선생이 외국기자들이 있는 곳에서 우리나라의 일본에 강압적인 행위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최초의 오스트리아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 베르타 폰 주트너(Bertha Von Suttner, Austria)도 이러한 상황을 억울하다고 동조하며, 평화군을 한반도에 파견을 해 일본군을 몰아내야한다는 주장을 했다는 내용을 들었다.

▲이준, 이상설,이위종(헤이그 특사)

이후 나는 2015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ICJ국제사법재판소 평화궁(Peace Palace) 입구 홀에 설치된 ‘웃는 해치상(像)’을 설치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 기증 작품 해치상을 로비 안에 설치를 했는데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건너편에 여자 흉상이 있는데 헤이그 밀사의 주장을 옹호했던, 베르타 폰 주트너의 동상이라고 하더라. 100여 년 전에는 그 뜻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올해 내가 만든 해치상을 덕수궁 중명전에 세운다면 100여전의 이준ㆍ이상설ㆍ이위종 일행이 헤이그로 떠났던 의미가 통하고 감사의 마음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적 문화유산의 재창조’에도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과거 조각과 다른 새로운 조형 작업을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상상을 하기도 하고, ‘오래된 가지’속에서 삐져나오는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꽃이 피는 느낌과도 같다. 꽃이 다양한 형태로 피어나듯 내 작품도 그렇다. 내가 말하는 ‘오래된 가지’는 전통문화의 맥락적인 부분이다. 꽃이 피는 것은 새로운 현실을 의미한다.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어나 듯, 시대에 맞춰 시대성을 반영한 작품을 재창조해야 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해치 조형을 할 때 해치에 날개를 달수도 있고, 현대적 재료인 스테인리스를 사용할 수도 있다. LED조명도 들어 갈 수 있다. 현대적 요소가 반영될 수 있도록 작품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다.

재료적 실험을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 같다. 돌ㆍ철(스테인리스) 등 각각의 재료에 집중하게 된 계기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작업에서 화강석을 자주 사용해 왔다. 화강석은 색상이 다양해, 같은 형태여도 작품의 느낌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사실 화강석 하나만으로 작업하더라도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비교적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최근에는 경주에서 나온 경주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그전에는 포천석으로 주로 작업했다. 포천석은 연회색의 돌이다. 돌의 색을 보면 참 다양하고 신기하다. 조각은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보이지 않는 지층이나 지질학 공부도 많이 필요하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있는 ‘웃는 해치상’

고흥석은 고흥에서 나온 돌인데, 네덜란드의 돌이 고흥석과 동일하다. 2014년에 외교부 공모에서 당선돼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해치상을 설치할 당시, 해당사업의 평화의 궁 사무국장이 돌 색은 조금 진한색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의견을 반영해, 헤이그 돌로 해치상을 만들었다.

철과 한지ㆍ신문지도 작업에 사용한다. 작품의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내 스스로의 연구기도 하지만, 어떤 공간이 전통한옥인데 한지 조명을 하고 싶다고 하면 주문에 맞춰 작업하기도 한다. 지난해 관훈갤러리 전시 때 만든 철 작품은, 사실 돌로 작업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부에서 전시하기에는 무거워 철 조각으로 작업했다. 공간에 맞춰 운반과 이동이 수월하도록 만든 것이다. 스틸 작업도 재미있더라. 유연하게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업을 하고 싶다. 현재 그 작품은 관훈에 있다 ‘안녕인사동’ 12층에 있다. 그곳은 야외 전시장인데 작품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 조각은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역사적 맥락과 맞닿아 있는 작업을 주로 해온 것 같다. ‘해치상’과‘ ’탑’조형을 처음 구상할 때 자료조사는 어떻게 했나

고증을 많이 했다. 특히 해치 작업은 역사적 고증이 매우 중요해서 동국대와 서울대 등의 한문학ㆍ법학과 교수와 전문가들에게 자문도 얻었다. 서울시청사의 다산홀 해치조각은 2009년 당선 작품이었다. 심사위원이 추진위원회를 겸하다보니 작업 중간 자문을 많이 줬다. 그런데 추진위원회의 자문은 작업을 하는데 불편할 수 있다. 내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보니 추진위원회의 의견을 잘 수용한 거 같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공모에 당선됐는데, 경험이 없었던 짧은 생각으로 작업을 했다면 실수가 많았을 것이다. 연륜과 경험이 많은 추진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해 더 좋은 작품이 나왔다.

내 작업 중 불탑 조형 작업은 자료조사 및 답사를 거쳐서 완성됐다. 현대성을 추구하다 보니 철판에 자연적인 빛이 통할 수 있는 투각 문양을 넣었다.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가 생긴다. 그런 방식과 같이 기존 조형에서 새로움을 추구한다. 여러 실험이 끝나면 사찰이나 야외에도 큰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

조각을 보기 위해 사찰을 다녔지만 작품이 너무 많고, 상태도 좋지 못한 경우가 있다. 중요하고 유명한 사찰 안에 그라인더 기계 터치가 조각 표면에 남아있는 작품도 설치돼 있다. 정성도 전혀 안 들어가고 기본도 안 됐다. 상태가 좋지 못한 작품을 사찰에 무분별하게 설치하면 공간의 의미를 떨어뜨린다.

전문가 자문으로 선별해 작품을 설치해야 한다. 조각은 공간에 맞는 작품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사실 불교는 비우는 것인데 많이 채우다 보니 역으로 가는 것인가 우려된다. 고려 시대 때 만든 사찰은 석불이 많다. 몇 백 년 후에 2020년대 만든 작품을 보면 어떨까? 후대에 좋지 못한 평가를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 부분은 비단 사찰 조각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공공미술 조각도 관련된 문제다.

최근 ‘공공미술’ 작품이 장소성도 고려되지 않고 도시 경관까지 해치는 실패사례가 나오고 있다

오늘 ‘공공미술’에 관련된 자료를 봤다. 조형물을 없애고 벤치와 나무를 두자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 내용에 대부분 수긍하는 댓글도 봤다. 그만큼 큰 비용을 쓰며 조형물을 설치하면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공공미술’ 공모에는 경제와 산업이 함께한다. 거기에 속해 돌아가는 작가들도 있지만 몇몇 조각가는 로비를 통해 당선되기도 했다. 그 문제로 강원도의 시청공무원이 구속되는 사례까지 보았다.

▲최진호 작가가 ‘비움과 채움의 탑(남과 여)’ 작품 옆에 서 있는 모습. 지난해 관훈갤러리에 전시됐던 ‘비움과 채움의 탑’은 현재 안녕인사동 12층 ‘스페이스 오’ 야외 전시장에 전시되고 있다

한 예로 KTX강릉역 상징조형물 공모사건에서 10억짜리 조형물을 공모하는데, 비리가 있었다. 언론에도 조형물 비리 뉴스가 나왔다. 해당 비리 사건 저지른 특정업체 관계자는 기소됐음에도 한국조각가협회 혹은 한국미술협회 등에서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해당 작가도 제재했었어야 했다. 조치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심지어 해당 비리 공무원의 경우 몇 개월 있다 업무에 복귀했다.

강력한 재제방침이 없어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나도 그 공모를 냈던 사람으로서 많은 고생을 했다. 솔직한 내 심정으로는 강릉시에 손해 배상까지 하고 싶다. 최소한 공모전에 참여했던 작가들에게는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공미술의 처음 취지는 공공미술을 통해 건강한 수익을 가지고 작가들은 작업을 하라고 지원한다는 의미인데, 원래 의미가 퇴색되고 많이 변질됐다.

이런 내용은 내가 ‘해치의 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해치의 눈은 정의를 상징한다. 상징물이 있음에도 안 좋은 일이 만연하니까 일반 서민들이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감사원이나 검찰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해치를 만들다 보니 사회 현상이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공공미술’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제재가 필요할까 또한 ‘공공미술’의 발전 방향은

공공미술 공모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해, 서울시에서는 기존 공모에 응모했던 작가들은 떨어뜨리고 신진 작가들을 많이 뽑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그런 방식도 문제가 있다. 오히려 조각의 개념이 퇴색되거나, 작가들은 설치 작품에만 치중하게 됐다. 일반사람들은 ‘공공미술’의 작품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쪽으로 가고 있다. 건축물ㆍ미술작품ㆍ공공 미술품 설치를 위해 문예진흥기금도 투입된다. 그러나 이 돈을 가지고 일부는 각본에 짜인 듯한 공모를 내, 관련 위원들의 작품이 당선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들이 4~5번 서울시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에서 떨어지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시간과 비용의 문제도 있지만, 마음의 상처가 더 크게 남는다. 정책의 의미는 참 좋은데 그 과정과 심사는 투명하지 못하다.

법적 제재 보다는 이런 문제를 건강하게 관찰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내가 대학원 때부터 관심을 두고 논문을 쓰기도 했다. ‘서울시내 환경 조각’이 연구 주제였다. 그전에 기념 동상 애국선열 건립조각위원회가 설치됐다. 그 배경을 설명하며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들어와 정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위인동상을 세운 내용 등을 다뤘다.

조각은 설치했다고 끝이 아니라 유지관리와 보수가 중요하다. 1988년도에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서울에 특징 있는 동상이나 조각물이 없으니까 프랑스 파리의 법을 따왔다. 건축물 10층 이상, 어느 정도 평수에는 환경 조각을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미술 작품을 설치하는 것으로 당시 법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거의 30년이 된 셈이다. 논문에는 그동안 비용 및 용역ㆍ문제점, 앞으로의 비전까지 다뤘다. 관리와 비전에 대한 것에 ‘관리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관리청’은 서울시 소관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관리처로 해야 한다. 조각을 처음 세우면 주변이 비어져, 조각을 잘 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에 커다란 간판이 생기고 나무가 자라 조각을 가리게 된다. 조각을 방치하면 처음 조각을 설치한 의미가 없어진다. ‘관리청’이 생겨 총괄적으로 관리ㆍ감독해야한다.

▲최진호 작가가 ‘비움과 채움의 탑(남과 여)’ 작품 옆에 서 있는 모습. 지난해 관훈갤러리에 전시됐던 ‘비움과 채움의 탑’은 현재 안녕인사동 12층 ‘스페이스 오’ 야외 전시장에 전시되고 있다

작가들도 조각이 설치된 이후에는 공간을 찾지 않고 있다. 작가들과 서약서를 써, 자신의 조각이 설치된 공간에 찾아가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야외에 조성된 조각은 꼭 한 번씩 살펴야 한다. 다른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을 잘 관리하면 좋겠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나 헤이그는 야외에 작은 좌대가 있고,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계속 설치하고 바꾸기도 한다. 지나가다 보면 ‘거리의 미술관’ 같은 느낌이 든다. 안전성 문제만 해결된다면 좋은 도시 경관을 만들 수 있다. 또한 호주 바닷가에도 작은 조각 공모전을 해서 바닷가와 연관된 조각을 설치한다. 바다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조각도 함께 볼 수 있다.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조각. 일종의 대안 전시인 것이다. 잘 만들어진 조각을 공간에 조성하면 상징물이 생기는 것이고, 관광객들도 더 많이 찾아와 활용할 수 있는 방향이 많이 생긴다.

앞으로 꼭 작품이 설치됐으면 하는 장소와 그 이유는

정동진과 정서진ㆍ정남진에 내 해치작품을 세우고 싶다. 실제로 칠레 이스터섬에 가서 모아이를 보니 추장 혹은 족장의 마음이 읽히더라. 바다가 보이는데 석상을 세워 섬을 지켜달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한반도의 정세가 불안할 때도 있고, 최근 코로나19로 많이 힘들었으니 바닷가 쪽에서 보는 의미, 각각의 끝자락에서 우리나라를 지켜달라는 염원을 담아 내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

그동안 나는 외국에 우리문화 알리는 일도 해왔다. ANU 호주국립대에서 교환 작가를 하며 해치를 기증해 교정에 “한국의 공간”제목으로 해치가 있다. 네덜란드에도 내 작품이 있다. 네덜란드를 갈 때는 비행기를 오래 타고가고 또 시차 때문에 피곤하다고만 느꼈는데, 갑자기 이준 열사가 생각나더라. 그 순간 우리문화를 알리는 일이, 참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되면 안중근 의사의 위업이 있는 중국 하얼빈 역에도 해치상을 기증하고 싶다. 역사적인 공간이나 의미 있는 공간에 한국을 알리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의 타격이 많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작가로서 어떻게 전망하며 그에 대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요즘 코로나 때문에 학교 교육도 비대면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학교라는 곳을 벗어나면 더 큰 부분과 마주할 수 있다. 요즘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나는 야외 활동성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인터넷과 게임을 하며 실내에만 있기보단 야외 활동도 필요하다. 내가 전통적인 탑을 좋아하는데 위에 어른들의 좋은 가르침이나 만남을 하면, 중간자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 젊은 세대나 젊은 학생에게 좋은 자리나 대화 공간에 가서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방식이 자연스러운 문화의 흐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전시도 보고 계절에 맞는 공간이나 사찰도 자주 간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 있는 곳이라면 찾아보는 편이다. 과거의 옛날 것을 재생산ㆍ재창조하는 미술가들 어떤 작가가 있고 어떤 생각을 해서 이런 작업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은 보다 보이지 않는 컨셉이 중요하니까, 부분을 알리고 싶다. 나 혼자만 아는 것이 아닌 대중에게 공유하고자 한다. 이런 교육이 건강한 문화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번 수림미술재단의 뉴웨이브에도 참석했는데 김희수 이사장님의 뜻을 이어 아시아권의 문화교류에 힘쓰는 모습을 보았다. 코로나19로 지금 많이 힘든 상황이지만 수림문화재단에서는 SNS를 활용한 방식도 있고, 공연예술은 경쟁을 통해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있다. 해치조각을 통해 ‘한국 고유의 원형’ 찾아, 현대적 요소 반영한 연구 이어와 이런 부분마저 못하면 전부다 멈출 수밖에 없다. 나도 모든 일정이 미뤄졌다. 내년도 불확실하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는 없지 않나? 준비 부분은 각자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적절히 맞춰 개인의 창작생활로 가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