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장난치며 걷는 예술가의 길 ‘자파리’
[공연 리뷰] 장난치며 걷는 예술가의 길 ‘자파리’
  • 유해강 대학생 인턴기자
  • 승인 2020.07.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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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습작, 실패에서 예술의 가능성 찾아
김설진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 테크닉보다 도전에 의미 둬

[서울문화투데이 유해강 대학생 인턴기자] 예술은 멀고 장난은 가깝다. 예술은 어렵고 복잡하지만 장난은 쉽고 간단하다. 그래서인지 예술은 환대받지만, 장난은 쉽게 무시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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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리’ 공연 중의 김설진(사진=세종문화회관)

제주도 방언으로 ‘장난’을 의미하는 ‘자파리’는 예술의 재료이자 시작점이다.

<자파리>의 민준호 연출가는 “어떤 진지한 행동은 장난으로 받아들여지고, 어떤 장난은 예술로 보인다”라며 “장난의 힘을 알아버린 인간이 일부러 장난을 해대며 예술을 향한 끝없는 투쟁”이라고 이번 작품에 대해 소개했다. 

제대로 ‘장난’치려고 작정한 이번 공연에 정해진 것은 상황과 설정뿐이다. 주인공 ‘남자’를 맡은 김설진도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 채, 일단 무대에 오른다. 즉흥성이 곧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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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리’ 공연 중의 김설진(사진=세종문화회관)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늘어선 무대 위로, 허름한 문을 열고 ‘남자’가 들어온다. 백팩을 매고 모자를 쓴 허름한 행색의 ‘남자’는 흔히 우리가 ‘김설진’이라고 하면 떠올릴만한 유연하고도 기괴한 몸짓으로 무릎을 접었다 펴고, 발목을 구부렸다 돌린다.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도 힘든 각도가 그의 몸에서는 자유자재로 펼쳐진다. 

그의 움직임은 이색적이지만 춤이라기에는 어딘가 어설프다. 동작의 의미도, 춤의 장르도 알 수 없다. 정체불명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남자’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그는 물병을 던져서 세우고 커다란 종이로 뭔가를 접다가 이내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 나선다. UFO에 납치당하는 시늉을 하며 노는 모습은, 마치 어린 아이를 보는 듯 하다. 그렇게 ‘남자’의 사소한 ‘장난’은 점차 확대돼 다채로운 음악과 조명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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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리’ 공연 중의 김설진(사진=세종문화회관)

인터넷 문화나 밈(meme)에 관심 없는 사람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를 연극에서, 그것도 ‘세종문화회관’에서 듣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거기에 영화 <신세계> 속 이정재의 대사 “거 중구형 장난이 너무 심한 것 아니오”까지 더해지니, 한 마디로 ‘합필갤’*에서 만든 것 같은 음악이 공연장을 메웠다. *합필갤: 영화, 음악, 광고 등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다양한 2차 창작물을 생산하는 유저들이 모인 웹 공간 ‘합성-필수요소갤러리’의 준말이다. 

당혹스럽게 등장한 이 리믹스 곡은 마치 “그래, 우리 지금 장난치고 있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듯하다. 하지만 한편 ‘장난’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에 치우친 나머지 김설진의 움직임은 그 속에 묻힌 느낌도 들었다. 

▲‘자파리’ 공연 중의 김설진(사진=세종문화회관)

‘남자’의 ‘장난’은 계속된다. 아이유의 <좋은날>의 반주곡에 맞춰 무대 곳곳을 누비며 춤을 추고 팝업 동화책을 펼쳐 놓고 <Over the Rainbow>가 들려주는 환상에 젖어들기도 하면서, 의도는 분명하지만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준다. 장난이 예술이 된 순간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제도의 예리한 칼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스승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그의 곁에서 춤을 지도한다. 고전 발레부터 스트릿 댄스, 한국 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기초를 가르치며 스승은 그에게 “기본이 안 돼 있어”라며 꾸짖다가도 또 때로는 “잘한다”라고 칭찬한다. 

스승은 잠시 자리를 비우지만 그의 평가와 잣대의 목소리는 세 종류의 뒤섞인 음악으로 남아 ‘남자’를 괴롭게 한다. 그 속에서 ‘남자’는 고전 무용도 힙합도 아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를 춤을 추다가 마침내 탈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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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리’ 공연 중의 김설진(사진=세종문화회관)

‘남자’는 춤이 좋아서 춤을 배웠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추고 싶었던 춤은 무엇이었을까? 

죽은 듯 쓰러진 ‘남자’의 공간으로 고물상 노인이 들어온다. 노인은 ‘남자’가 늘어놓은 물건들을 보고 “여기 가져갈 쓰레기가 많아서 좋다”라며, “이거 내가 가져가도 돼요?”라고 묻는다. 

‘남자’는 대답 대신이라는 듯 일어나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한다. 옷을 던져서 나무 상자 모서리에 걸고, 풍선과 우산을 함께 배치하면서 고물상의 카트로부터 문어 모형을 가져와 같이 두기도 하는 그의 행위는 마치 설치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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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리’ 공연 중의 김설진(사진=세종문화회관)

쉬지 않고 움직이는 ‘남자’에게 할아버지는 “혹시 예술가”냐며 자신도 예술가 한 명을 안다고, 아랫동네에 사는 소설가 얘기를 꺼낸다. 

“나는 그 소설가가 망쳐서 버린 습작을 볼 수 있는데, 그것도 출판되는 작품 못지않게 나름의 재미가 있어(…) 게다가 그건 나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지”

소설가가 버린 습작이 노인에게는 의미가 있듯 ‘남자’가 갖고 놀다 버린 물건, 제멋대로 벌인 ‘장난’도 그것 나름의 가치가 있다. 구슬만 꿰어야 보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꿰고자 하는 마음’이다.   

노인의 대사를 통해 극의 후반부가 정리되면서 <자파리>의 주제는 선명해졌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의 장르가 ‘피지컬’ 모노드라마라는 점에서 핵심적인 결말부에 대사의 비중이 몸짓의 역할보다 큰 것은 다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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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리’ 공연 중의 김설진(사진=세종문화회관)

민 연출가는 “예술가는 진지하게 장난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 직업”이라며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시점에서 끝없이 생각해야 새로운 작품 하나를 만들 수 있다”라고 예술 창작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드러냈다. 

<자파리>에서 ‘예술’과 ‘장난’은 동전의 양면이다. 무대 위에서는 끊임없이 어떤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것은 ‘예술’도 ‘장난’도 아닌, 동전 던지기의 도박에 가까운 김설진의 몸짓이다.

진정한 공연은 막이 내린 뒤부터 펼쳐진다는 말처럼, <자파리>를 보고난 뒤 일상으로 돌아와 나만의 장난감을 발견하고 놀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