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내가 사랑을 모르나?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내가 사랑을 모르나?
  • 윤영채/밀레니엄 키즈
  • 승인 2020.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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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영채야 너는 사랑을 모르는 것 같아”

작년에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이다.

아주 가까운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나는 연애 중독자였다. 2년의 짝사랑을 고작 3일의 연애로 끝맺고 나서 나는 거의 반쯤 미쳐있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 된 나는 가장 친했던 친구의 소개로 또래의 남자아이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귈 수 있나 싶지만, 그냥 그때는 그랬다. 우리에겐 스킨쉽이라고는 손을 잡는 것.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어색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주고받을 때만 편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이였다. 만난 지 22일 되는 날을 챙기고, 100일이 되던 날 이벤트로 남자친구와 추억을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식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곧 나에게도 그리고 그들에게도 새로운 연인이 생겼다. 우리는 딱 그 정도였다. 17살이 될 무렵, 또다시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나는 이제 좀 사랑을 알 것 같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저 말’을 들은 지금,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과거, 결핍, 습관 그리고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고 감싸줄 만큼 안정적이지 못했다. 매일 다르게 커가는 몸과 그것을 따라잡아야 하는 정신을 붙들고 사는 것은 10대 중반에 겪기에는 너무 무거운 일이었으니까. 세상에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이 쌓이고 싸여 내 마음에 큰 짐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저 집 앞 편의점에 20원짜리 검은 비닐봉지를 사듯, 서로를 소비한 것이었다. 값싸게, 자신의 무거운 짐을 담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영화 '히로인 실격' 속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영화 '히로인 실격' 속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그러나 그의 말에는 한 가지 오류가 있었다. 애인과 있어서의 사랑은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지금 내 옆엔 세상을 10년도 채 살아보지 못한 나이에 만나 20대를 함께 경험하고 있는 12년 지기 친구가 있고, 언제든 전화만 하면 우리 집으로 달려와 줄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다.

내 인생의 암흑기였던 19살에 우리 집으로 입주한 고양이 깨미도 있고,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이제는 싸워도 그 속에 사랑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나의 작은 언니도 있다. 함께 쌓았던 추억이 믿음의 형태로 경건하게 바뀌어 이제는 진심으로 신뢰하고 아끼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이들을 사랑한다. 나의 일부를 떼어서 나눠주고 싶을 만큼.

작년 10월 이후 이렇다 할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은 지금. 나에게 충격을 줬던 ‘그 말’을 내뱉은 ‘그’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저 재수 없는 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은 나를 생각보다 아주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름 끼치게 시리. 그러나 동시에 오류를 담은 그의 말이 완전히 맞는다고는 할 수 없기에 나는 그저 현재 내가 하는 ‘숭고한 사랑’을 더욱 굳건히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없는 그의 현재는 어떨까. 값싼 비닐봉지 같은 무의미한 설렘을, 오래된 친구로부터 느낄 수 있는 저 ‘고고한 사랑’을 그는 경험해보았을까. 그에게 있어서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이런 글을 쓸 기회를 준 그에게 감사하며 언제나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