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춤이면 춤, 마임이면 마임-‘오네긴’ 에서 보는 유니버설발레의 매력
[이근수의 무용평론]춤이면 춤, 마임이면 마임-‘오네긴’ 에서 보는 유니버설발레의 매력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8.0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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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코로나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공연가에 ‘오네긴(Onegin)이 다시 돌아왔다(7.22~26, 충무아트홀). 3년 전 엄재용과 황혜민의 은퇴무대로 오페라극장에서 보았던 유니버설발레(문훈숙)의 대표적 레퍼토리 중 하나다. 그 당시 황혜민과 함께 더블 캐스팅을 구성했던 강미선이 주역을 맡아 이동탁과 함께 출연한 4일 째(7.24) 공연을 보았다.

푸시킨 원작, 존 크랑코 안무, 차이콥스키 음악에 슈톨제 편곡, 3막 6장 120분 공연의 기본 구조는 변함이 없다. 세 그루 나무, 커다란 기둥, 벽에 세워진 등신대 거울 외에는 별다른 장치가 없는 간소한 무대도 그 때와 같다. 오페라극장에 비해 무대가 약간 좁아지고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가 구모영의 지휘로 생음악을 연주했던 그 때와 달리 녹음된 음악이 사용된 것이 외형상 달라진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알렉산더 푸시킨의 운문(韻文, 詩)소설 ‘에브게니 오네긴’은 남녀 간 사랑에 대한 섬세한 감정들이 솔직하게 표현되고 있어 무용의 소재로 흥미롭다. 1965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세계초연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캐나다 등 국립발레단 공연 등이 이어지고 국립발레단장으로 취임한 강수진의 슈투트가르트 고별무대공연(2015, 오페라극장)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순진한 시골처녀 타티아나(강미선, 손유희)의 세련된 도시남자 오네긴(이동탁, 이현준)에 대한 순정적 사랑, 약혼자의 친구에 대해 추파를 던지는 올가(홍향기, 김나은)의 가벼운 사랑, 자신을 연모하는 여인의 순정을 무시한 채 그녀의 동생이며 친구의 약혼자를 유혹하는 오네긴의 바람 끼는 결국 모든 비극을 잉태한다. 타티아나와 결혼 후 그녀에 헌신하는 그레민 공작의 신사적 사랑과 자기를 사랑한 여인과 동생, 친구를 배신한 비극의 장본인이면서도 신분이 바뀐 타티아나에 다시 접근하여 사랑을 구걸하는 남자의 이기적 집착은 사랑의 다른 면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강미선과 이동탁이 오네긴을 대표하는 두 개의 파드되를 춘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타티아나가 꿈속에서 오네긴과 함께 추는 ‘거울 속의 파드되’가 첫 번째다(1막2장). 침실에 있는 거울은 현실과 꿈의 경계이고 그들이 오가는 통로다. 거울을 통해 침실로 들어오는 오네긴을 상상하며 침대에서 일어난 타티아나는 자신만의 지순한 사랑을 오네긴에게 바친다. 고난도의 발레테크닉이 곳곳에 자리 잡은 에로틱하며 열정적인 듀엣이다. 두 번째 파드되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레민 공작이 출장을 떠난 사이 타티아나의 침실을 찾아와 열정적인 구애를 하는 오네긴에게 여인의 마음은 잠시 흔들린다. 그러나 그녀의 용기는 과감하게 오네긴의 구애를 뿌리치고 그가 보내온 편지를 면전에서 찢어버린다. 그녀는 오네긴에게 떠날 것을 지시하지만 그가 떠난 후에는 하늘 높이 양 팔을 들어 올리며 오열한다.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3막2장, ‘회한의 파드되’다. 두 개의 파드되가 모두 차이코프스키의 'Romeo & Juliet'(차이콥스키 핸드북42, 작품39)을 배경음악으로 한다. 두 개의 파드되 외에 인상적으로 다가온 또 하나의 듀엣은 페테르부르크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타티아나와 그레민 공작(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에프)과의  우아하고 세련된 춤이었다. 빨강색 바탕에 금빛 꽃무늬가 화려하게 박힌 무도회 드레스도 인상적이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솔로, 5번 로망스(op.51)가 배경에 깔린다. 앞의 두 개가 사랑의 열정과 환희 혹은 집착과 애증을 표현하는 정열적이고 고난도의 춤이었다면 세 번째 춤은 안정과 여유가 깃들어 있는 부드러운 춤이었다.

푸시킨 소설이 품고 있는 다양하고 섬세한 사랑을 춤만으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출연자들에게 춤과 함께 뛰어난 연기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오네긴에 나타난 사랑에는 순정, 유혹, 질투, 배신, 회한, 복수 등 사랑의 모든 요소들이 망라되어 있다. 타티아나의 새침함 속에 숨겨진 열정, 올가의 말괄량이 연기, 약혼자 렌스키(콘스탄틴 노보셀로프)의 소심함, 오네긴의 오만하고 거침없는 연기, 그레민 공작의 페미니즘이 출연자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표현되어야한다. 주역들의 춤과 함께 모든 출연자들의 마임연기가 함께 빛났다. 창립 36년을 맞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을 보면서 더블캐스팅으로 출연한 손유희와 이현준의 파트너링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들을 볼 수 있는 다음 공연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