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국악대중화 수상자]팝핀현준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무대를 꿈꾼다”
[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국악대중화 수상자]팝핀현준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무대를 꿈꾼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8.06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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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통하지 않는 춤을 익힌 댄서, 예술가 아닌 기술자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퍼포먼스가 곧 브랜드 파워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요즘 마트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첵스 파맛’이다. 시리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첵스의 달달한 초코 향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첵스가 초코맛이 아닌 파맛이라니, 너무 생경한 조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나름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탄생한 신제품이다.

때는 2004년, 농심 켈로그는 첵스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면서 초콜릿 맛 캐릭터 ‘체키’와 파맛 캐릭터 ‘차카’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첵스초코나라의 새 대통령을 뽑아주세요’라는 타이틀의 프로모션을 통해 두 캐릭터의 투표를 진행하여, 더 많은 표를 받은 맛의 시리얼을 생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많은 이들은 ‘체키’가 이길 거로 생각했으나 예상을 뒤엎고 ‘차카’에게 표가 몰렸다. ‘체키’를 위한 홍보 수단에 불과했던 투표였기에 당시 출시가 불발됐으나, 이후 16년 동안 끊임없는 소비자들의 출시 요청으로 올해 첵스 파맛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됐다.

초콜릿 코팅이 되어있는 시리얼은 익숙한 맛이기에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파맛이 나는 시리얼은 누군가 일부러 만들지 않는 이상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조합이다. 혹자는 괴식이라 평가할 수도 있지만, 도전적이고 신선한 이 만남을 사랑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그리고 파맛 시리얼처럼 예상을 뒤엎는 과감한 콜라보는 여러 분야에서 점점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사실 이질적인 카테고리의 융합이 가장 자유롭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은 예술 분야다. 그리고 팝핀현준은 예술로 독특한 맛을 내는 대표주자다. 그는 파와 시리얼 대신 힙합과 국악, 팝핀과 판소리를 섞는다. 합쳐지기 전 원래의 모습 자체로 멋지고 특색있는 장르를 혼합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팝핀현준을 그의 연습실에서 만나 예술이야기를 들어봤다
▲팝핀현준을 그의 연습실에서 만나 예술이야기를 들어봤다

원래의 모습 그대로 완벽한 장르가 만나 박수받는 무대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각자의 개성만을 주장하다 보면 한 그릇 안에 넣어도 섞이지 않고 겉돌기 때문이다. 

1세대 팝퍼 팝핀현준은 춤으로 동작을 표현하는 것보다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질적인 만남일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필요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러운 융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더불어 콜라보 무대는 자신이 처음 시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어야만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다양한 시도와 독창성은 곧 브랜드 파워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 무대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제11회 젊은예술가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린다. 상을 받은 소회가 궁금하다.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은 결혼 후 아내 박애리 씨 트로피 장에서 처음 봤다. 지금까지 상은 비보이 배틀 같은 댄스 대회에서 받아본 것이 전부였다. 때문에 댄스에 한정된 것이 아닌 문화예술 전부를 아우르는 상을 받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더 늦기 전에 꼭 받고 싶었던 상인데, 실제로 그렇게 되어 기쁘고 영광이다.

애리 씨를 만나고 전혀 몰랐던 분야에 대한 여러 경험을 하게 됐다. 국립창극단과의 만남도 처음이었다. 나라에서 어떤 분야를 위한 단체를 운영하고, 공연 준비에 도움을 주고, 극장이 마련되는 등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많은 부러움을 느꼈다. 

요즘 이리저리 바쁘게 지내는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없어서 주로 방송 일정이 많은 편이다. 국공립 공연장들도 문을 열고 있으니, 점점 공연할 무대가 늘어나길 바라고 있다. 얼마 전 조관우 씨 콘서트에 게스트로 갔다. 그런데 띄어 앉기로 진행해서... 원래는 가까이 오세요, 해서 모여서 소리 지르고 해야 되는데 마스크도 다 쓰고 계시니까. 게스트가 나랑 현진영 형이었는데 형도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이렇게 차분하게 하기는 처음이라고(웃음)

서울문화투데이 독자들이 팝핀현준의 춤을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소개해 달라.
나는 스트릿 댄서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부터 로봇춤, 웨이브, 이집션, 부갈루, 애니메이션 스타일 등 스트릿 댄스의 종류는 정말 많다. 그리고 모든 춤에는 각자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 일본에서 춤의 씨앗이 되는 정신을 먼저 배웠다. 춤을 배우기에 앞서 힙합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에 대해 먼저 알아야 했고 그 바탕에는 love와 peace가 있었다. 더불어 힙합과 스트릿은 생존의 수단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신분 상승을 위해 싸우는 일종의 무기가 된 것이다. 

나는 1세대 팝핀 댄서라 우리 세대와 지금 젊은 친구들의 문화는 또 다를 것이다. 이제는 춤도 유튜브로 배우는 시대가 왔다. 원하는 파트만 찾아서 익히는 것이다. 동작을 빠르게 배울 수 있지만, 이런 방법의 학습으로는 문화를 배울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춤이 곧 문화인데 말이다. 문화를 통하지 않고 춤을 익힌 댄서는 예술가가 아닌 기술자가 되리라 생각한다.

팝핀을 시작한 후 가장 보람 있었을 때와 어려울 때가 있었다면?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
“솔직히 나는 편견이 있었는데 현준 씨 보니까 내가 틀린 것 같다” “잘 봤다” “존경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보람을 느낀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사회에서 존재감을 넓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보고 ‘춤만 추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사람들도 만나고 자기 예술로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것에 뿌듯함과 사명감을 동시에 느낀다.

이러한 시선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케이스이지만, 주변에 주류가 아닌 장르의 예술 활동을 하는 친구들은 많은 한계에 부딪힌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기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작년까지 나와 함께 브라질, 일본 등을 오가며 활동했던 크루는 이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혀 다른 생소한 직업을 갖게 됐다. 비보이 경력이 17년인데도 현실의 벽은 아직 높기만 하다.

지난 1월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통해 “국악과 처음 콜라보 공연을 한 것은 2003년 즈음이었고, 2010년 박애리 씨를 만나면서 국악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됐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박애리 씨를 만나기 전과 후, 국악을 바라보는 시각에 생긴 변화는?
가수 조관우와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왔다. 어느 날 형이 아버지를 소개해주겠다며 나를 인천에 데려갔다. 정작 그 시절의 나는 조통달 선생님의 명성을 모를 정도로 국악에 무지했었다. 

조통달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모듬북을 연주하게 하시고, 본인이 직접 거문고를 켜주시며 우리보고 놀아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까지 나는 어떤 박자에도 춤을 출 수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엇박자의 연속인 국악에는 도저히 춤을 출 수가 없었다. 그 일을 계기로 국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0년에 공연을 통해 박애리 씨를 만났다. 그전까지 나에게 국악은 어려운 박자로 이루어진 일종의 강박이었고, 어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애리 씨를 만난 후 어려움을 넘어서는 즐거움을 찾게 됐다. 판소리의 재미와 그 안에 담긴 해학적 의미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시각이 바뀌었으니, 본인의 작업 환경이나 작품 세계에도 많은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 옛날에는 그런 영감을 일차적으로 사용했다. 음악과 춤, 이런 식으로. 지금은 거기에 스토리를 넣을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스토리가 전통적인지 고민하게 됐다. 아니면 현대적인 음악에 어떻게 하면 전통의 소리와 결합할 수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다.

관심의 차이는 보는 눈을 훨씬 깊이 있게 만든다. 국악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우리나라도 어릴 때부터 국악을 자주 접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커졌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피아노는 대부분 배우지만, 국악을 배울 기회는 많지 않다. 때문에 국악은 ‘어르신들의 음악’이라는 인식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다. 

방송에서도 국악을 좀 더 많이 또 자주 다뤘으면 좋겠다. 클래식하고만 비교해봐도 국악을 다루는 방송은 정말 한정적이다. 설날, 추석같은 명절용 장르로 취급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얼마 전 KBS <도올 학당 수다 승철> 방송도 잘 봤다. ‘예술적 동지’로 서로가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관계가 참 좋아 보였는데,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이 10년 전 결혼 당시와 비교했을 때 이제는 많이 바뀌었는지.
결혼 당시 우리를 두고 “저 결혼 오래갈까”라는 식의 말을 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애리 씨 집안에서 애리 씨와 너무 다른 나를 받아들여 주실까, 하는 걱정은 있었다. 그런데 정말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귀걸이에 탈색한 머리, 온몸의 타투를 보시고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둘이 좋으면 됐다며 결혼을 허락하셨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말은 나에게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제는 오히려 주변의 부러움을 사며 ‘결혼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부부를 보면서 결혼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많아졌다. 주위의 응원과 관심 덕분에 잘살고 있다.

함께 무대를 하다 보면 소위 요즘 음악을 박애리 씨가 부를 때도 있고, 전통 음악에 팝핀현준 씨가 춤을 더할 때도 있다. 이질적인 두 예술 장르를 자연스럽게 녹이기 위해 서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작업 과정이 듣고 싶다.
무대 하나를 위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한다. 전통은 전통 그대로, 힙합은 힙합 자체로 멋진 장르다. 각자의 무대로 완벽한 것들을 섞으려면 억지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하느니만 못한 콜라보는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애리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콜라보 무대를 지금까지 정말 많이 해왔다. 그리고 애리 씨도 무대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힙합의 색깔은 내가, 국악은 애리 씨가 책임지고 가져간다.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부분도 많은 공을 들인다. 판소리와 힙합 모두 애환의 음악이다. 시작의 궤를 같이하는 두 음악의 중간 점을 찾고, 사람들이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다.

비빔밥에 케첩을 뿌려놓고 동서양 퓨전이라고 소개하면 아무도 먹지 않을 것이다. 그냥 섞어놓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한 그릇 안에 넣어도 각각의 것이 겉돌기만 할 뿐 완성되지 않는다. 양보가 있어야 완전한 화합을 이룰 수 있다.

국악과 댄스, 국악과 힙합의 만남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걸 만들어야만 한다. 그게 우리의 브랜드 파워다. ‘팝핀현준’과 ‘박애리’가 있어야만 볼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한다.

최근 방송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불후의 명곡>과 같은 음악 프로 외에 다른 예능 등의 출연도, 다소 멀게 느껴지던 국악과 스트릿 댄스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는 가교 역할을 한다고 보는지?
아무래도 매체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소모되는 측면이 있다. 좋은 옷도 자주 입다 보면 좋은 줄 모르게 되지 않나. 애리 씨와 나는 결코 예술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데, 평가되는 무대에 너무 자주 나오면 어느새 쉬운 무대가 될까 봐 염려되는 부분도 있다. 더군다나 방송과 시청자들은 ‘짧고 굵게’ 보여주길 원한다. 천천히 다 보여줄 수 없고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선보여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우리끼리만 아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어떤 예술가라도 절대 대중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브랜드와 예술가들은 모두 대중 매체를 통해 알려진다. 직접 체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나친 노출로 소모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변형되지 않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문화예술인들의 무대가 점점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온ㆍ오프라인의 경계가 없어지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나도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지만, 공연만큼은 오프라인에서 직접 보고, 듣고, 만져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그렇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현장성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장 무대는 물론 버스킹 무대조차 사라져, 예술인들의 발밑이 뻥 뚫렸다. 괜찮아질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 이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 직장인이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는 있겠지만 다른 일자리에 이력서를 넣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작품을 창작해서 무대에 올리는 활동 자체를 할 수 없게 됐으니 팔다리가 잘린 기분일 것이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무대에 있을 때 비로소 숨을 쉬는데, 산소를 빼앗긴 셈이다.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나는 찰리 채플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찰리 채플린이 하는 건 대사 없는 춤이다. 춤이 그에게는 표정이자, 노래이며, 언어다. 찰리 채플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재밌고 유쾌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이야기. 그것은 찰리 채플린의 브랜드다. 나도 찰리 채플린처럼 나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춤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

새롭게 계획하는 것이나 머지 않은 미래의 목표가 있는지.
10월 달에 팝핀현준과 박애리의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 원래 2월에 진행하려 했던 공연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다. 다만, 객석 띄어 앉기를 시행해서 많은 인원과 함께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꼭 대면 공연으로 관객들과 마주 하고 싶다. 한국 댄스 역사를 집대성한 ‘댄스 레볼루션’ 앨범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