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근대여성 ‘윤심덕’, 이번엔 제대로 그려졌을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근대여성 ‘윤심덕’, 이번엔 제대로 그려졌을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0.08.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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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월화 - 신극, 달빛에 물들다>와 <사의 찬미?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7. 29. 경기아트센터 소극장)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일제강점기의 실존인물인 이월화와 윤심덕이 주인공이다. 둘째, 두 사람 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닌다. 이월화는 조선최초의 신극배우요,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은 조선최초의 소프라노다. 셋째, 두 여성의 ‘후반부’의 삶은 미스터리. 이월화도, 윤심덕도,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는, 실제 아무도 모른다.

이월화와 윤심덕을 다룬 두 작품의 공통점은 더 있다. 둘 다 음악이 작품을 살렸다. ‘월화’는 이정표가 음악감독 겸 가야금을, ‘사의 찬미?’는 이경화가 음악감독은 맡았다.

두 작품 모두 새롭게 작곡을 하지 않았고, 당시의 음악을 사용했다. 관객은 덕분에 작품에 더욱 몰입한다. ‘월화’는 유성기음반에 녹음된 ‘근대가요’에 충실했다. ‘사의 찬미?’는 그 시절의 여러 장르를 망라했다. 윤심덕이 실제 불렀던 노래를 중심으로, 그 전후의 노래를 다양하게 포진했다.

창가(唱歌)인 ‘희망가’. 조선가곡인 ‘봄처녀’와 ‘봉선화’(홍난파 작곡), 테너 안기영이 불러 유성기음반에 담긴 ‘내 고향을 이별하고’ (정사인 작사, 정사인 작곡), 오페라 춘희와 칼멘의 아리아, 이태리민요인 ‘푸니쿨리 푸니쿨라’, 러시아민요인 ‘검은 눈동자’ 등이 등장한다.  윤심덕은 조선 최초로 크리스마스 캐롤도 취입했다. ’사의 찬미?‘에는 그녀가 남긴 ’사의 찬미‘(다뉴브강의 잔물결)는 물론, 퍼스트 노엘, 메기의 추억도 삽입되었다.

‘사의 찬미?’란 제목부터 의문부호가 붙어있듯이, 이 작품은 두 사람의 현해탄의 정사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두 사람의 ‘생존설’에 무게를 두고 ‘열린 결말’로 작품을 마무리해간다. 이는 대본가(윤중강)의 상상이 아니다. 실제 여러 자료를 통해 두 사람의 삶을 추적해보면, 이런 추측이 설득력이 있다.

두 사람의 죽은 후, 몇 년 뒤에 생존설이 제기되었다. 관부유람선(덕수환)의 밀실에 몸을 숨겼다가 도망쳐서, 상해를 거쳐서 로마로 갔다는 얘기다. 두 사람의 성을 따서 ‘KYDO'라는 레코드를 다루는 잡화상을 로마에서 한다는 소문이 항간에 퍼졌다. 몇 년 후, 김우진의 집안에선 실제로 조선총독부에 진정을 내어, 두 사람의 생존여부를 이태리대사관을 통해서 확인한 바 있다. 로마에는 그런 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결론이었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또 다른 어떤 곳으로 떠날 것일까?

영화 ‘윤심덕’(1969년, 안현철 감독)을 통해서, 지금과 같은 윤심덕과 김우진 스토리가 더욱 공고해졌다. 조흔파 원작, 유한철 각색이다. ‘얄개’로 유명한 조흔파는 코믹물을 확고하게 정착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으나, 비극적 스토리에 약하다.  윤심덕과 김우진이란 두 사람에 대한 치밀한 사전 조사가 약했다. 집필 당시에는 주변인들이 거의 살아있기에 두 사람을 보다 입체적으로 캐릭터로 만들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다.

윤심덕의 죽음을 ‘부정마녀(不貞魔女)의 정사(情死)’로 치부했던 조선민중은 꽤 많다. “이 X들아, 정조가 다 무엇이냐” (1926. 08. 13, 동아일보)는, 윤심덕이 생전 했다고 전하는 말이다. 실제 윤심덕의 발언인지는 모르나, 그 시대의 일반적인 신여성(모던걸)과 윤심덕은 매우 달랐다.

영화 ‘윤심덕’에서 그려진 심덕(문희)은 자기주도적 근대여성과 거리가 참 멀다. 청순가련과 우유부단을 오가는 캐릭터다. 60년대 한국영화의 한계일까? 결코 아니다. 60년대의 영화에서도 요즘 영화보다도 더 전향적 여성캐릭터가 있다. 철저하게 작가와 감독의 한계다.

영화 ‘사의 찬미’(1991년, 김호선 감독)는 어떠한가? 영화제에서 시나리오상 (임유순)까지 받았다. 윤심덕(장미희), 김우진(임성민), 홍난파(이경영)를 일제강점기의 고뇌하는 청춘으로 형상화하는데 일정 성공했으나, 60년대의 문희나 90년대의 장미희는 ‘근대여성’으로서는 결격이다. TV드라마 ‘사의 찬미’에선 윤심덕(신혜선)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런 작품에서 공히 범하는 오류는 윤심덕을 매우 우울한 여성으로 그려진다는 점. 윤심덕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그녀가 ‘남자와 같이 매우 활발’하였고, 스스로 ‘나는 어딜 가던지 밥은 사먹은 사람’이라 말할 정도로 생존에 강한 인물이다. ‘침울한 것조차 견디지 못하는 성격’에다가 언제나 ‘재미를 추구하는 삶’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윤심덕의 한계를 산뜻하게 잊게 해준 작품이 <사의 찬미?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이 작품에서의 윤심덕은 오진영배우가 맡았다. 이번 작품에서 연출을 맡은 이경화 음악감독은, 오진영 배우와 함께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윤심덕과 ‘거리두기’가 확실했다.

지금의 우리가 근대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오류를 범하는 건 아닐까? 첫째, 근대여성이 매우 우울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선입견이다. 시대는 그랬을망정,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다. ‘시대의 우울’을 극복하려는 측면에서, 근대여성의 가치를 찾을 낼 수 있다. 둘째, 근대여성을 대개 ‘남자의 여자’로 설정한 후에, 그런 잣대 속에서 판단하는 한계다.

앞에서 짚어야 할 얘기가 많았기에, 정작 오진영 배우와 이경화 연출을 크게 다루지 못해 아쉽다. 두 여성이 합심해서 만들어낸 윤심덕은 매우 달랐다. 작품이 계속된다면, 윤심덕의 본 모습은 더욱더 구체화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조선의 근대여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게 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