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뮤지컬 ‘마리 퀴리’, 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 ‘폴란드의 별’
[공연리뷰] 뮤지컬 ‘마리 퀴리’, 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 ‘폴란드의 별’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8.11 2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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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아닌 ‘과학자’를 말하는 팩션(Faction)극
2018년 트라이아웃ㆍ2020년 2월 초연 이어 7월 대극장 컴백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세상의 수많은 말 가운데 나를 유일한 나로 만들어 주는 언어가 바로 이름이다. 때문에 누군가의 이름을 지운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이다. 학생, 선생님, *과장, *부장, **엄마와 같은 호칭은 이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개인의 정체성이 지워진 자리에 집단과의 관계성만이 남는다.

​▲배우 김소향의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시연 모습
​▲배우 김소향의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시연 모습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해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 방사선 치료법 개발로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낸 과학자.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의 이야기다. 누군가에겐 ‘퀴리 부인’이란 호칭이 더 익숙할지 모르나, 그가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이뤄낸 업적은 오늘날까지 물리학ㆍ화학ㆍ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마리 퀴리의 일대기에, 라듐시계 공장 노동자 안느 코발스키의 이야기를 더한 팩션(Faction)이다. 천재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을 다루지만 방사성 원소인 라듐을 발견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아가, 사회적 문제들을 함께 다뤄 깊이를 더했다.

<마리 퀴리>는 지난 2017년 제작사 라이브가 주관하는 창작 뮤지컬 공모전 2017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2에 선정됐다. 1년간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쳐 2018년 트라이아웃 공연과 올봄 초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났으며,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으로 완성도를 높여 재연 무대에 올랐다.

1891년,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 출신의 여성 마리는 소르본 대학 입학을 위해 프랑스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파리로 가는 열차 안에서 ‘안느 코발스키’를 만난다. 다른 목표를 가지고 폴란드를 떠났던 마리와 안느는, 같은 곳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안느는 돌아갈 곳을 알려준다는 ‘길잡이 흙’을 마리에게 건네며, 주기율표와 교환환다. 그렇게 그들은 친구가 된다.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장면 시연 모습
▲배우 김소향과 이봄소리의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시연 모습

여성에게 타이틀 롤을 주는 연극ㆍ뮤지컬 작품들은 점점 늘어가지만, 그 안에서 여성 간의 연대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김태형 연출은 남성에게 주어지던 모든 역할을 ‘안느’에게 부여하며, 성별이 아닌 배우의 역량으로 어떤 메시지든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의도를 밝힌 바 있다. 그의 설명처럼 ‘안느’는 극 중 ‘마리’만큼 중요한 인물로 활약한다. 

폴란드를 떠나 낯선 이국땅 생활의 출발점이 되어준 그들은, 이후 서로의 변곡점이 된다. 남들이 멋대로 재단한 평가를 뒤엎을 꿈을 향한 시작점에 나란히 선 것이다.

남성 중심의 엘리트 집단 속에서 폴렉(Polack), 크레이지 블랙, 미스 폴란드가 아닌 여성 과학자 ‘마리 스클로도프스카’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던 그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주위의 멸시와 모욕에도 굴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고, 마침내 조국과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나타낼 첫 원소를 발견했다. 주먹보다 확실한 복수, 마리는 ‘폴란드’의 이름을 딴 ‘폴로늄’을 주기율표에 남기며 통쾌한 한 방을 날렸다.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장면 시연 모습
▲배우 김소향의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시연 모습

이름 없던 원소에 ‘폴로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마리는 멈추지 않고 연구를 계속한다. 그러나 역사에 남을 업적을 이뤄낸 과학자임에도 세상은 마리를 향해 ‘똑같은 연구를 반복하며 허송세월을 보낸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등한시하고, 남성의 성전인 과학자 그룹에 끼어들고자 하는 야욕에 사로잡혀 있다’라는 비난들을 쏟아냈다. 이미 흐려진 최초의 노벨상 여성 수상자 ‘마리 퀴리’의 이름 위로 ‘이렌의 엄마’, ‘피에르의 아내’라는 이름이 새겨진 것이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 다 자기 자리가 있어 / 모두 거기에 있었다고 이름을 남겨 / 나도 내 이름 찾고 싶어 / 누군가 부를 때 망설이지 않고 돌아볼 수 있게 / 그게 나란 건 내가 알아차릴 수 있게

지난한 어둠의 끝을 알리며 스스로 빛을 내던 물질의 발견은 그래서 마리에게 더욱 특별했을지 모른다.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밝게 빛나던 물질에 그는 ‘라듐’이라는 이름을 선물한다.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장면 시연 모습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장면 시연 모습

하지만 그가 발견한 ‘라듐’과 달리 마리의 이름은 여전히 빛날 수 없었다. 노벨상 수상에 남편 ‘피에르 퀴리’의 이름이 먼저 호명되고, 마리는 그저 ‘마담 퀴리’로 피에르의 옆에 섰다. 주기율표에 새로운 이름을 남겼지만 여전히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마리의 모습은, 역사 속 이름 잃은 많은 여성들을 떠오르게 한다.

마리와 피에르는 라듐이 더욱 많은 곳에서 빛을 낼 수 있길 바라며, 라듐 정제법을 무상 공개했고 세상은 이내 라듐 빛으로 반짝인다. 마리의 연구에 투자했던 기업가 루벤은 라듐을 이용한 시계, 화장품, 속옷, 콘돔, 생수 등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한다. 

안느 역시 라듐의 빛 안으로 들어간다. 마리의 소개로 루벤이 운영하는 ‘언다크’ 라듐 시계공장에 취직한 안느는 폴란드인 공장 직공들과 ‘폴란드의 별’ 마리를 자랑스레 여기며, 자신들의 미래도 라듐처럼 빛날 것을 꿈꾼다. 

▲배우 김소향의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장면 시연 모습

그러나 빛나는 라듐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유용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는 큰 파장으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느는 동료들이 원인 모를 질병으로 하나둘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들의 사인이 라듐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루벤은 라듐이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을 은폐하려 공장 직공들의 사인을 매독이라 규정하고, 안느는 물론 마리와 피에르의 공장 가동 중단 요청도 무시한다. 

진실을 알고도 외면하는 것이 소수의 권력자라면, 이를 밝혀내는 것은 남은 자들의 연대이다. 라듐의 유해성이 공식적으로 입증된다면 자신도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인 마리를 멈춰세운 것은 안느다. 오류 앞에서 멈칫거리는 마리에게 안느는 ‘길잡이 흙’이 되어 준다. 그는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의 이름을 부르며 “라듐이 아니라,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라고 말한다. 앞만 보고 뛰어오다 잠시 방향을 잃었던 마리는, 진실 규명을 위해 탑에 오른 안느를 보고 잘못을 바로잡을 용기를 낸다. 

▲배우 김소향과 이봄소리의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시연 모습

한없이 부족한 혹은 완벽한 모습만 보여 왔던 지금까지의 예술작품 속 여성 캐릭터와 비교해보면 매우 현실적인 모습으로 표현되는 점에서 <마리 퀴리>는 고무적이다. 사람은 누구든 고뇌하고 실수하는 과정을 거치며, 극복을 통해 성취한다는 당연함이 당연하게 그려진다. 

트라이아웃 공연부터 마리 퀴리 역을 맡은 배우 김소향은 마리를 ‘투쟁하는 여인이 아닌, 자신 앞의 벽을 조금씩 갉아서 허무는 사람’이라 말했다. 자신이 정의한 대로, 김소향은 신중하게 한 발씩 나아가며 이따금 돌아봤고, 어느새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의 이름을 깊숙이 새겼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에게 이름이 생긴다는 것은, 그 존재를 상징할 만한 정체성이 부여된다는 것과 같다. 뮤지컬 <마리 퀴리>를 통해 ‘마담 퀴리’가 아닌 ‘마리 퀴리’의 이름과 삶을 발견한 것처럼, 우리는 더 많은 이름을 발견하고 불러줄 의무가 있다.

한편, 뮤지컬 <마리 퀴리>는 오는 9월 2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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