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코로나시대, ‘당산풍월’에서 답을 찾다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코로나시대, ‘당산풍월’에서 답을 찾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0.08.21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올드 팝이 귓가에 맴돌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을 입구에 큰 나무가 있었다. 당산나무는 나무이지만, 그건 또 하나의 인격체였다. 서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죄를 짓고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마을 입구의 큰 떡갈나무에서 노란 리본이 나부낄 때의 감동은 어떠했을까? 사람에게 큰 나무란 매우 귀한 존재다. 나무는 사람은 아니나, 인격체처럼 우리를 반긴다. 거기엔 용서와 포용. 질서와 화합이 있다. 

코로나사태로 인해서 모든 공연장이 위축되었던 시기, 당산풍월(堂山風月)이란 콘서트를 만났다. 필봉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당산나무가 점잖게 자리하고 있다. 무형유산인문학콘서트‘란 이름의 ’당산풍월‘을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당산나무가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고, 멀찍이 필봉산 너른 태를 보게 된다. 그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생각이 넓어진다.

사람이 나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크게 느끼게 된다. ‘쉼’을 뜻하는 한자 쉴 휴(休)를 써본다.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댄 형상이 아닌가? ‘당산풍월’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임실필봉농악의 양진성(인간문화재)의 짧은 인사말을 듣는다. 나무에 반갑다고 인사하는 듯, 나무에 도와달라고 기도하듯, 그의 짧은 얘기가 마치 그러했다. 코로나의 위기 상황에서, ‘당산풍월’은 잠시나마 우리에게 모든 것을 잊게 해주었다. 

대한민국에서 농악을 좀 접해본 사람치고, 필봉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 땅의 행정단위에서 ‘필봉’이란 명칭은 가장 끄트머리. 이 땅의 농촌은 오래전부터 군면리 (郡面里) 단위로 존재했다.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중에서, 군 이름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면 이름은 또 과연 얼마나 될까? 군(郡)과 면(面)도 모르는데, 리(里)는 더욱 알지 못 한다. 이런 예외를 만든 게 필봉마을이다.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 이 곳의 마을굿이 오래도록 잘 전승되었고, 너무도 유명했기에, 사람들은 ‘필봉농악’ 또는 ‘임실필봉농악’이라고 했다. 필봉의 마을굿이 전국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양순용(梁順龍. 1941 ~ 1995)이란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필봉문화촌’ 없이 임실군을 얘기하기 어렵다. 양순용 선생께서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농악의 뿌리를 만들어 놓았던 터전을 바탕으로 해서, 그의 자제(양진성, 양진환, 양옥경)와 마을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매우 ‘비옥한’ 농악판(문화촌)으로 만들어 냈다. 그런데, 지금의 많은 곳들이 그렇겠지만, 필봉문화촌은 생긴 이래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강행한 ‘당산풍월’은 얼마나 대단한가! 올해 네 차례 펼쳐졌다는데, 나는 두 번 함께 자리했다. 8월 1일은 주로 전라북도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을 만났다. 조현일의 가야금산조와 병창, 이창선의 대금연주, 극장 공연에서의 조명과 음향, 무대의 큰 도움 없이도 빛이 났다.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예기무(藝妓舞)의 김광숙 명무의 ‘살풀이’에선, 예인이 갖고 있는 ‘아우라’ 자체를 ‘더 가까이,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당산풍월이기에 가능한 감동이다. 

8월 15일, 당신나무 바로 아래선, 문지윤이 첼로를 연주했다. 당산나무가 첼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노래를 들려주면서, 지금의 우리들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감싸주는 듯 했다. 홍라무의 ‘부토’를 매우 근거리에서 보았다. 부토는 일본에서 시작된 춤이지만, 광복절에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부토는 매우 넓고 크게 느껴졌다.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1910 ~ 1998)의 영화 ‘꿈’이 떠올랐다. 제 1편(여우비)과 제 2편(복숭아밭)은, 숲과 나무를 ‘의인화’하고 있다. 그것과 연관해서 생각해본다면, 홍라무는 당산나무의 정령(精靈)과도 같았다. ‘무서움과 신비함’과  ‘안온함과 다정함’이란 상반된 정서가 당산나무의 기운(氣運)과 함께 전달되었다. 

‘무형유산 인문학콘서트’ 라는 제목처럼, 이야기 손님의 애기가 함께 한다. ‘얘기 반, 소리 반’ 공연이라고나 할까? 박남준 시인의 산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아날로그 삶의 가치와 인간본연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즐겁게 경청하면서, 각자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크게 기뻤던 것은, 필봉예술단 ‘판타스틱’의 여섯 젊은이. 3대째 이어진 필봉굿의 손자 양종윤 (꽹과리)을 상쇠로 해서, 고정석 (장구) 이종휘 (북, 버나), 김지빈 (징), 유선보 (소고), 이환주 (태평소)는, 콘서트마다 대미를 장식했다. 한 번은 농악(15일)을 보여주었고, 한 번(1일)은 ‘호허굿(호호굿)가락’을 앉은반(사물놀이) 형태로 들려주었다. 이것을 보다 더 발전시켜주길 바란다. 그간의 사물놀이는 ‘삼도농악’ 중심이었다면, 임실필봉농악단 ‘판타스틱’은 앉은반(사물놀이)이 ‘좌도농악의 특징을 아주 잘 살려주길 바란다. 지금까지의 사물놀이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호흡이 실종했고, 움직임이 실종했다. 관객들이 함께 호흡을 느낄 수 있고, 이런 가락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조심스레 움직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호흡과 움직임이 사라진 ‘공연형 사물놀이’와는 다른, 호흡과 움직임을 살아 숨쉬는 ‘함께 호흡하는 앉은반’ 사물놀이를 꼭 잘 만들어주길 이 젊은이들에게 기대한다.  

필봉농악보존회가 마련한 ‘당산풍월’은 도농간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는 가장 이상적인 접근이다. 공연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마을공터(당산나무 앞)라는 ‘열린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었고, 마스크를 일상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삶에서, 시원한 바람을 경험해준 자리였다. 

‘당산풍월’은 지난 100년간 익숙해져 버린 ‘근대적 극장문화’ 이전에 존재했던 ‘전통적 공연문화’의 회복이기도 하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아날로그 감성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당산풍월’의 소박한 무대에서, ‘입체창’ 공연도 보고 싶다. 창극 이전의 모습이다. 몇 사람이 배역을 나눠서 하는 창극이다. 조명과 무대의 도움없이, 역시 당산나무를 배경으로 해서 펼칠 수 있는 공연이다. 판소리를 하더라도, 소리꾼이 굳이 고수를 대동하지 않아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이 직접 북을 잡고 소리를 하거나, 마을 사람들이 북을 잡아서 화합하는 그런 판이 참 그립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 힘들고 부담스러운 이 시대에, ‘당산풍월’은 최소인원으로 얼마만큼 최대효과의 공연이 가능한가를 보여주었다. 

simple is strong. 코로나 시대엔 더욱 진리다. 코로나시대엔 소박함이 현명함이요, 위대함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의 위기에서, 우리가 지향해야할 공연은 무엇인가? 소박함 속에 ‘푸진 삶’을 경험케 해야 한다. 국어사전에서 ‘푸지다’는 ‘매우 많아서 넉넉하다’로 풀이한다. 푸진 삶을 가능케 하는 푸진 굿(공연)은 무엇일까? 이젠 출연자도 스텝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대신 구경꾼의 만족도는 높여야 한다. 코로나란 재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특히 명심해야 한다. 필봉농악보존회의 ‘당산풍월’은, 이 시대의 공연문화의 하나의 대안, 그들만의 모범답안을 제시해주었다.

지난 270호에 실린 윤중강 칼럼이 그 이전 호인 269호 내용과 중복돼 실렸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필자인 윤중강 님께도 죄송한 말씀드립니다. 혜량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