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0.08.21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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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1830년 7월 혁명, 베를리오즈는 로마대상에 출품할 칸타타 <사르다나팔루스>을 막 완성했다. 유탄이 날아와 작곡가의 창가를 두드렸다. 작곡을 마친 그는, 거리로 나와 ‘성스런 시민들’과 함께 총을 들고 새벽까지 구호를 외쳤다. 자신이 작곡한 <전사의 찬가>를 시위대가 부르자 덩달아 함께 부르기도 했다. “온 파리 시민이 해일처럼 일어났네. 구슬프게 울리는 구식 포성에 발을 구르며 마르세예즈 노래로 맞서네.”

그는 민중의 광기에 놀라기도 했다. 봉기한 농민들이 리히노프스키 공을 살해했다는 소식에 그는 치를 떨었다. 스무발의 총탄이 그의 몸을 뚫었고, 칼과 도끼와 낫으로 걸레처럼 분해된 그의 시신은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인간은 얼마나 파렴치하고 추악한가! 혁명의 광기와 흉측한 모습은 보르네오 밀림의 오랑우탄이나 개코원숭이보다 수백 배 더 어리석고 사납지 않은가!” (베를리오즈 <음악여행자의 책>, p.55)

베를리오즈는 프랑스 대혁명 때 활약한 선배 작곡가 고세크, 메윌 등을 존경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열광한 작곡가는 베토벤이었다. 1828년 파리음악원의 르지에르 교수를 연주회장에 모시고 가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들려 준 일화가 있다. 피날레가 힘차게 끝나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아서 침묵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한 구석에서 누군가 조심스레 박수를 치자 그제서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르지에르 교수가 말했다. “굉장하군, 열이 나니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야겠어. 근데, 모자는 여기 있는데, 내 머리가 어디로 갔지?” 밖에 나가서 베를리오즈가 소감을 묻자 르지에르 교수가 말했다. “흠, 이런 곡을 쓰는 사람은 다시는 태어나서는 안 될 거야.” 베를리오즈가 대답했다. “네, 걱정 마세요. 이런 곡을 쓰는 사람이 다시 태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까요.”

▲32살 무렵의 베를리오즈

셰익스피어가 그에게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면 베토벤의 음악은 ‘새로운 교향곡을 행한 열정’이 그의 가슴에서 불타오르게 했다. 1829년 1월, 그는 친구 에드워드 로세에게 썼다. “위대한 베토벤의 음악을 들었을 때 나는 음악 예술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를 깨달았지. 그의 음악보다 훌륭한 음악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네. 하지만 베토벤과 다른 방향도 있을 거야. 세상에는 새로운 것, 새롭게 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살아 있는 동안 그 일을 반드시 해내고 말겠어.” (최은규 <교향곡>(마티) p.235~237)

베를리오즈가 이 포부를 실현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베토벤 사후 3년 만에 탄생한 <환상> 교향곡은 예술가의 사랑과 환상을 찬란한 관현악으로 묘사하여 교향곡의 세계를 단숨에 확장시켰다. 이 곡이 태어난 과정을 보면 진정 낭만시대 교향곡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    

1830년 7월 혁명의 용광로 속에서 베를리오즈는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아와 줄리에트를 연기한 영국 여배우 해리어트 스미드슨이 그의 심장을 사로잡았다. 그는 일찍이 셰익스피어에 심취했지만, 스미드슨이 보여준 극적 재능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초월했다. 어떤 연극배우도 그녀만큼 관객을 사로잡고 감동시키지 못했다. 베를리오즈는 그녀에게 자기도 극적 재능이 있는 예술가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열렬한 고백이 담긴 편지를 그녀에게 수 차례 보냈다. 한 평론가는 연극 리뷰에서 그의 말을 인용했다. “그녀와 결혼할 것이다. 그녀의 연극을 바탕으로 대작의 교향곡을 쓸 것이다.”

32살 무렵의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에 영감을 준 연극배우 해리엇 스미드슨

그러나 인기 정점에 있던 스미드슨은 무명 작곡가 베를리오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활기를 잃고 시름시름 환상에 빠졌다. 목적지도 없이 거리와 들판을 배회했다. 우울과 고통, 절망적 사랑, 잔인한 냉소, 막막한 공상, 찢어지는 가슴, 광기, 눈물…. 사랑과 죽음의 절망적인 투쟁 속에서 그는 탈진했다. 그녀의 죽음을 발견하는 3악장 ‘들판에서’를 쓰며 그는 3주 동안 끙끙 앓았다. 교수대로 끌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4악장은 신들린 듯 하룻밤에 써 내려갔다. 그는 이 교향곡에 미칠 듯한 사랑을 녹여넣고 승화시키면서 서서히 되살아났다. 5악장으로 된 <환상> 교향곡에는 헤리엇 스미드슨의 이미지가 악장마다 등장하는데, 이 주제를 베를리오즈는 ‘고정 관념’(idée fixé)이라 불렀다.

▲<환상> 교향곡에 영감을 준 연극배우 해리엇 스미드슨

1악장 ‘꿈과 열정’은 환각에 빠진 예술가의 내면이다. 꿈결처럼 아름다운 서주에 이어 격정적인 알레그로가 이어진다. 2악장 ‘무도회’, 예술가는 떠들썩한 축제를 즐기지만 그녀의 환상이 나타나자 다시 혼란에 빠진다. 3악장 ‘들판에서’, 평화로운 석양 풍경 속에 두 명의 목동이 피리를 분다. 멀리 천둥소리가 울리자 예술가는 그녀가 죽었음을 직감한다. 4악장 ‘교수대로의 행진’, 예술가는 음독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하고 애인을 죽인 죄로 교수대로 끌려간다. 기요틴은 가차 없이 그의 목을 잘라버린다. 5악장 ‘마녀들의 축제’,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마녀들의 춤 한가운데 그녀가 있다.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에 이어 그레고리안 성가 중 ‘진노의 날’이 울려 퍼진다.

http://youtu.be/AD5jmO9TA1I (피에르 몽퇴 지휘, 북독일 라디오 방송교향악단)

1830년 12월, 로마대상을 받고 이탈리아로 떠나기 직전에 초연했다. 단 두 번의 리허설로 완벽한 연주는 불가능했지만 베를리오즈는 “그런대로 무난한 연주였다”고 자평했다. (같은 책 p.173). ‘무도회’와 ‘마녀들의 축제’는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들판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교수대로의 행진’은 청중들을 모두 뒤집어 놓았다. 이 자리에서 프란츠 리스트는 열렬한 갈채를 보냈지만, 보수적인 파리 음악원장 케루비니는 ‘혐오스런 작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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