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같은건 직접 보고 사야죠”
“의료기같은건 직접 보고 사야죠”
  • 박솔빈 기자
  • 승인 2009.12.09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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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 의료기상가길, 인터넷몰에 밀려 한산… 외국 손님은 늘어

종로 3가에는 의료기 상가가 있다. 정확하게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그곳을 ‘의료기 상가’라고 부렀다. 종로 2가 국일관부터 흥인지문 아래까지, 의료기 상가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40여 년 전. 그 후 하나둘씩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형성됐고, 서울의 의료기 업체 200여 곳 중 1/3에 해당하는 70여 개의 업체가 종로 이 지역에 밀집,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대 의료기 상가가 됐다.

종로 3가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지상에 서자 보이는 건 OO의료기 상가, OO의료기 상회라는 이름이 붙은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그리고 12월 찬바람이 만만치 않은데 온통 목도리에 장갑까지 중무장을 한 채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인, 노인, 노인분들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급속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노인 인구는 가히 세계 최고라 할 만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2030년 정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질병에 취약한 노인 인구가 늘어날수록 의료기·의료보험 등 의료산업의 수요와 중요도가 높아졌다. 이와 더불어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생활이 안정될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의료산업이 발전하는 데 한몫을 거들었다.

이에 대해 (사)대한의료기기 서울시지회 김희규 회장은 “예전 의료기 상가에서는 주로 병원용 의료기만 취급했는데,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인터넷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예방의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병이 나야 병원에 가던 것이 병이 나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하자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고가의 치료기기들이 가정용으로 개발되면서 매출도 올라가고 매장도 늘기 시작했다”며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정보 범람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김 회장의 상점 ‘경일의료기’에서 취재를 하고 있을 때 한 손님이 찾아와 “인터넷보다 가격이 비싸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직원이 인터넷의 저렴한 제품은 다른 제품이라고 설명했지만 손님은 “내가 본 상품이 맞다. 인터넷보다 직접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어렵게 왔었는데 가격이 더 비싸다”고 불평을 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확인해본 결과, 직원의 설명이 맞았다. 시선을 끌기 위해 제목만 고가의 제품으로 올려놓고 내용물은 저렴한 제품이었던 것이다.

매년 2~3회 의료기 자체 교육을 실시한다는 김 회장은 “의료기기는 아픈 몸에 사용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확한 정보 제공이 중요한데 인터넷 업체들은 대부분 정보 제공에 소홀하다. 조금 비싸더라도 직접 보고 상담한 후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 (웃음) 대체적으로 90% 정도는 저렴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시장 때문에 타격을 입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지만 의료기 시장도 꽤나 수난을 겪고 있는 듯했다.

그러자 그는 “요즘은 생활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직원들 월급 주고. 시장 상황이 워낙 안 좋다보니 마진은 바라지도 않는다. 예전에 장사하셨던 분들은 돈 많이 버셨는데 요즘은 뭐…” 하고 씩 웃는다.

하지만 “그래도 요즘 외국인 손님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우리가 예전에 일본 가서 밥솥 사왔듯 중국이나 동남아 쪽 의사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의료기를 사간다. 한국 제품은 대부분 수출을 전제로 만들어져 믿을 수 있고 품질이 좋으니 가격이 좀 비싸도 우리나라 제품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직원의 의자에 깔려 있는 전기방석이 화제에 떠올랐다. 노인들에게 사기를 치고 다니는, 일명 ‘약장수’가 생각났다. 순진한 시골 노인들을 꾀어 가짜 보약에 전기장판을 팔아먹는 그 속셈을 알 때도 됐건만 기자의 할머니는 아직도 옥장판이다 세라믹장판이다, 자꾸만 물건을 사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처음에 협회를 만든 이유가 바로 ‘약장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가짜 의료기에 피해를 입거나 그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사람들을 줄이고 싶었다. 앞으로도 이런 가짜 의료기 피해를 줄이고 미리미리 예방하는 ‘예방의학’ 발달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주위에서 엉뚱한 데 관심 쏟다가 굶어죽는다고 하지만, 그래서라도 아픈 사람이 줄어들면 좋겠다.”

두툼한 점퍼에 목도리까지 두른 중년 아저씨가 경일의료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무리 인터넷이 싸도 솔직히 몇만 원 차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이왕이면 자세한 설명도 듣고 물건도 직접 볼 수 있는 종로에서 산다. 다들 오래 일하신 분들이고 믿을 수 있다”며 찜질기를 찾았다.

물론 인터넷 구매는 대체적으로 저렴하고 편하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몰은 항상 붐빈다. 사실 12월 엄동설한에 버스 타고, 전철 타고 종로 3가까지 방문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의료기처럼 자칫 잘못 사용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물건은 직접 사용해 보고 구매하는 것이 좋다.

다음에 들를 때는 디스크에 관절염에 거의 종합병동 수준인데 병원 갈 시간이 없는 가족들을 위해 찜질기나 하나 장만해야겠다.

박솔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