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Ⅱ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Ⅱ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0.09.18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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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이 곡이 들려준 새롭고 대담한 오케스트레이션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곡에서 그는 사상초유의 방식으로 음향의 판타지들을 실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도록 만들었다. 기괴한 악기도 등장했다. 5악장 ‘마녀들의 축제’에서는 뱀처럼 생긴 저음의 관악기 ‘서펀트’가 등장하여 섬짓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파격적인 연주기법도 선보였다. 현악 주자들은 5악장에서 피치카토, 아르페지오는 물론 활대로 현을 두드리는 콜레뇨 주법까지 구사했다. (최은규, p.238) 베를리오즈는 이 곡을 이탈리아 여행 중 틈날 때마다 손질했고, 1832년 파리에 돌아와서 다시 무대에 올렸다. 

이번에는 헤리엇 스미드슨이 연주회장에 왔다. 베를리오즈는 그녀를 직접 초대할 용기가 없었지만, 엉거주춤하고 있는 그녀를 친구들이 등을 떠밀어 데려온 것이다. 그녀는 교향곡의 주제에 놀랐고, 자기가 바로 주인공이란 걸 깨닫고 감동했다. “이 열렬한 작품, 뜨겁게 타오르는 멜로디, 사랑의 탄식, 격렬한  돌진과 진동을 바로 앞에서 들은 그녀의 예민한 감각과 시적 상상력은 예기치 못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베를리오즈, p.235) <환상> 교향곡에 이어서 속편 격인 모노드라마 <렐리오 - 삶으로 돌아오다>가 연주됐다. 렐리오 역을 맡은 보카쥬라는 가수가 노래를 시작했다. 노골적인 사랑 고백이었다. “아, 터질 듯한 가슴으로 이름만 불러보는 나의 줄리엣, 나의 오필리아. 그녀를 찾을 수 있다면 사랑의 슬픔과 기쁨에 취할 수 있을텐데!”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뜨거운 연인 사이가 됐고, 베를리오즈는 그 날짜를  평생 기억했다. 1832년 12월 9일이었다. 

두 사람은 양가의 결사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이듬해 10월 결혼을 강행했다. 당연히 예상된 일이지만, 결혼과 함께 ‘환상’도 깨졌다. 새색시는 배우로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결혼 당일에도 빚 걱정뿐이었다. 두 사람 다 불같은 성격이었으니 날이면 날마다 다투었다. 헤리엇은 인기가 시들어가면서 알콜 중독이 됐다. 두 사람은 결국 1844년 이혼했는데, 베를리오즈는 평생 그녀의 생활비를 대 주었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결혼 초기, 동료 음악가들의 우정이 큰 보탬이 됐다. 헤리엇의 공연 수익을 올려주기 위해 쇼팽과 리스트가 찬조 출연하여 피아노를 연주했다. 두 음악가는 “빚을 갚으라”며 개런티를 모두 신혼부부에게 주었다. 베를리오즈는 파가니니를 위해 비올라 솔로가 들어있는 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럴드>를 썼다. 파가니니는 솔로 부분의 분량이 적어서 실망했지만, “죽은 베토벤을 되살릴 사람은 베를리오즈 뿐”이라는 찬사와 함께 무려 2만 프랑의 거액을 사례로 내놓았다. 베를리오즈 또한 크게 감사하며 ‘대선배’ 파가니니에게 무한한 존경을 바쳤다. 낭만주의 초기, 사랑과 우정이 넘치던 시절의 풍경이다. 그런데도 베를리오즈는 “우리 시대는 시적인 상상이 메말랐다”고 한탄하고 있으니(베를리오즈, p.11), 그가 21세기의 강퍅한 세태를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베를리오즈는 활화산 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열정적인 성격은 낭만 시대 예술가의 전형이었고, 그가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환상> 교향곡은 낭만 교향곡의 금자탑이 됐다. 베토벤 이후 베를리오즈만큼 대담하고 독창적인 음악실험을 해 낸 작곡가는 없었다. 베를리오즈의 관현악이 내뿜는 독특한 음향은 평범한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음향효과를 위해서 무슨 짓이든 다 했던 베를리오즈, 그의 과감한 시도는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음악가들에게도 놀라움과 두려움을 안겨준다. 혁명의 아들 베를리오즈, 그의 <환상> 교향곡은 베토벤이 3번 <에로이카>과 5번 C단조에서 암시한 교향곡의 극적 가능성을 극한까지 몰고 간 ‘교향곡의 혁명’이었다. (최은규, p.237~239)

<환상> 교향곡에는 또 하나의 사랑 노래가 숨어 있다. 12살 베를리오즈는 해마다 여름을 보내던 알프스 산자락의 메일랑이란 마을에서 6살 연상인 에스텔을 짝사랑했다. 벼락을 맞은 충격에 잠 못 이루는 소년의 마음을 에스텔은 곧 눈치챘다. 그녀는 베를리오즈를 무척 귀여워했고, 어린 그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숨긴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년 베를리오즈는 에스텔에 대한 사랑을 담아 연가를 썼는데, 그 주제가 <환상> 교향곡 1악장 ‘꿈과 열정’의 서주에 나온다. 제1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이 선율은 “감당 못할 사랑에 짓눌려 괴로움에 빠진 어린 마음을 표현했다.” (베를리오즈, p.29) 베를리오즈에게 음악은 첫사랑과 함께 찾아온 셈이다. 그는 훗날 “첫사랑의 흔적은 절대 지우지 못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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