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 쌓여가는 노예근성, ‘이번에는 누가 오실까?’
[장석류의 예술로(路)] 쌓여가는 노예근성, ‘이번에는 누가 오실까?’
  • 장석류 KMAC 한국능률협회컨설팅 공공문화 컨설턴트/행정학 박사
  • 승인 2020.09.1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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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AC 한국능률협회컨설팅 공공문화 컨설턴트/행정학 박사
▲장석류 KMAC 한국능률협회컨설팅 공공문화 컨설턴트/행정학 박사

‘이번에는 누가 올까?’ 2-3년마다 대표가 바뀌는 공공 문화예술 조직의 화두다. 다양한 안테나가 세워지면서 조직은 시끄러워지지만 누구도 내부자를 염두하면서 ‘이번에는 누가 될까?’ 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보다 괜찮은 사람이 오거나, 우리조직에 대한 이해는 있는 사람이 오길 바랄뿐이다. 어떤 과정으로 어떤 이유로 선정되었는지 모른 채 암행어사의 마패처럼 임명장을 들고 온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러 나간다. 어떤 조직의 역사가 4~50년 되었음에도 단 한 번도 내부에서 조직에 대표가 나오지 않았을 때, 조직문화는 어떻게 될까? 그 조직을 가장 잘 아는 내부에서 성장한 사람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늘 외부인이어야 한다.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 제정 이후, 국립극장(1973), 세종문화회관(1978), 예술의전당(1988)이 생겼다. 이 세 조직이 생겨나고 2020년 현재까지 단 한번도 내부자가 조직의 대표로 임명되어 본적이 없다. “왜 우리는 내부자 출신의 리더를 만들어보지 못했을까요?” 위 조직 중 한 곳에서 20년 정도 근무한 공연사업팀장 연구참여자에게 물었다. “예술기관은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술이 갖고 있는 포지션이 그 정도이지 않나, 그게 예술계가 갖고 있는 한계가 아닌가. 예술기관도 정치적 영향을 받으니까, 낙하산 인사도 많이 오고, 이런 리더나 인사들이 오면 안된다는 걸 인식할 수 있는 공감대가 필요한 것 같아요.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쪽은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인식, 전문인력으로 존중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현재는 누가 와도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다. 이러니까 여기저기서 다 들어오고 그런 분위기가 문제가 아닐까요.” 

갤럭시 노트를 오랫동안 사용했다고, 삼성전자 사장에 임명되진 않는다. 삼성전자 사장단 그룹이 100% 외부에서만 온다면 조직은 어떻게 될까? 질병관리본부장 자리에 내부 전문가가 아닌 외부관계자를 임명한다면 코로나 19상황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위 3개 극장 외에 중앙정부 소속 여러 문화예술기관을 비롯해 경기문화재단(1997), 강원문화재단(1999), 서울문화재단(2004) 등 16개 광역문화재단과 전국에 있는 기초문화재단까지 내부자가 조직의 최종의사결정권자로 직접 임명된 사례는 그 동안 ‘0’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그게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인가? 아니면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부 국장급 연구참여자에게 물었다. “왜 문화예술기관은 내부자 출신의 리더가 안 나올까요?” 문화부도 현직 박양우 장관 외 박근혜 정부에서 유진룡 장관까지 내부자 출신 장관은 단 2명 나왔다. 차관 이후 대학으로 갔다가 이후에 임명된 공통점이 있다. “그게 조직역량하고 직결이 돼요. 경제부처가 왜 그렇게 자신만만할까요, 자기 출신들이 주로 장관이 되거든요. 문화부 같은 곳은 장관되기 힘들어요. 내가 장관이 될 수 있다는 거, 경제부처는 전통이 생기는거에요. 자존심, 자부심이 강해지는거에요. 조직에 주인의식을 갖는거지. 우리는 뼈 빠지게 해봤자 낙하산만 오고 그러면 조직이 죽는거에요. 그러면 조직에 애착이 안 생기는 거고,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정치인들도 잘 하면 존중하는데, 이상한 사람이 오면 사기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자부심도 없어지고, 조직문화가 엉망이 되요. 그래서 경제부처는 결정권한이 상당히 아래에 가 있어요. 기재부에 가보면 사무관이 당당하게 ‘이건 안 됩니다.’ 우리는 ‘잠깐만 물어보고 올께요.’ 주인의식을 가지려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해요. 자율이 없으면 책무가 없어요. 책무와 자율이 맞물릴 수 있어야 조직이 일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돼요.”  

88올림픽 이후, 문화예술기관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 조직들이 이제 30년을 향해 간다. 공통적으로 비슷하게 드러나는 패턴이 있다. 조직이 생기고, 10년이 조금 넘을 때 까지 리더를 포함해 구성원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성장하면서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전성기를 한번 쯤 맞이한다. 그 이후 20주년이 되기 전 조직문화가 크게 한번 꺾이는 과정을 보인다. 정치행정의 변동성이 클 때, 무늬만 전문성이 있는 리더가 한두번 임명되면서 잘 해왔던 사업을 매몰시키고, 계속적인 관리자 교체와 함께 내부자간 신뢰를 무너뜨린다. 바뀐 주인에게 발 빠르게 맞출 수 있는 역량만이 살아남는다. 크게 한번 무너진 조직문화는 잘 회복되지 않는다.   
   
문화예술 기관의 대표가 내부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번의 사례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번에는 누가 오실까?’가 당연한 질문이 되었다. 문화예술기관에 있는 직무자도 정치행정과 예술인 사이에서 전문 직업주의를 존중받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 첫째는 현장 예술가의 전문성을 함께 존중해야 할 것이고, 둘째는 정치행정에게는 전문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좀 더 고개를 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름이 되는 것이 가장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