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레앙 허의 '재밌게 공연보기'
오를레앙 허의 '재밌게 공연보기'
  • 오를레앙 허
  • 승인 2009.12.1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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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문화예술센터 < 운현궁 오라버니> 연극 공연리뷰

   
오를레앙 허

최고의 예술성을 목표로 탈장르,복합장르의 공연양식을 발굴하며

젊은 예술가들의 도전과 새로운 무대 실험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6월 새롭게 개관한 남산문화예술선터에서 2009년 제 10 회 옥랑희곡상 수상작인 <운현궁 오라버니>를 관람하기 위해 명동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안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남산예술센터는 서울시 창작공간 조성 사업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옛 남산드라마센터가 재탄생한 것이다.예전 서울에서 연극공연을 올릴 수 있는 곳은 명동 국립극장과 남산드라마센터 뿐이었다고 하니 오늘의 관람은 무척 뜻깊다고 할 수 있겠다.

대학로 소극장의 밀림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만나는 역사극, 운현궁 오라버니는 2008년 거창국제연극제 세계초연 희극공모 대상 <모래가 되어 사라지고>의 신은수 작가의 올해 옥랑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희곡상 수상작이다.

연출은 극단 <백수광부>의 대표이자 새로운 무대만들기에 앞장서는 이성열이 맡았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집으로, 고종이 태어나서 왕위에 오를 때까지 자란 곳이기도 하다.

운현궁 오라버니는 의친왕의 둘째 아들인 이우, 운현궁의 새주인이며 의친왕의 둘째 딸인 해원옹주입장에서 바라보는 오빠인 이우를 일컫는다.

일본 제국의 군인으로 길러지는 조선의 왕자 이건과 이우, 오빠를 기다리는 어린 남매 해원과 형길, 퇴락한 황실의 마루를 닦고 또 닦는 한상궁, 이들의 일상적 감각으로 접근한 운현궁 앞마당의 이야기이다.

일본이 만주사변이후 승승장구하자 대세인 일제에 순응하는 큰형 이건, 동생인 이우를 더 총애한다는 이유로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의친왕과 갈등하며 일본황실과의 내선결혼을 받아들여 결국 일본인으로 귀화한 현실주의자로 그려졌다.

1933년 이제 막 21살, 인생의 청춘을 맞은 이우는 방학을 맞아 운현궁에 돌아오고 일본 총독부는 메이지 천황의 외손녀 기타시라가와 히사코와 결혼을 서두르지만 황족의 일원이 되고자 자신의 외손녀와 결혼하기를 바랬던 친일파 박영효는 자주 운현궁을 들락거린다.

이우는 일본여자와의 강제결혼을 받아들이지 않고 조선여자라는 단지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박영효의 손녀와 결혼을 결심하지만 히사코가 떠나는 날 바라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라본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작가는 이 작품이 정치적, 역사적 이데올로기의 맥락에서 읽히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1930년대 일제의 침략전쟁이 더욱 노골화되는 지점의 조선황실 이야기라 침울한 마음으로 역사를 거슬러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조선황실은 독립 이후에도 권력에 의해 탄압받아 우리에겐 많이 잊혀져버린 역사이다. 최근에 현존하는 황실의 최고령인 해원옹주는 종친회와 황실복원운동가들에 의해 여황제로 옹위되었다고 하나 4평짜리 단칸방에 기거하며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극중에서 또한 주목받을 만한 것은 식민시대 신세대가요의 첫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작곡가 전수린의 작품이자 이애리수의 노래로 1932년에 음반화된 <황성옛터>이다.극중 해원과 형길,어린남매가 부르지만 실은 이우가 즐겨 불렀던 노래라 한다.

당시 트로트는 유행가 혹은 유행소곡이라 불리웠는데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아 완성된 미야꼬부시음계라 불리는 5음계를 바탕으로 작곡하는  일본의 엔카가 조선으로 유입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우리나라의 전통음계를 바탕으로 하는 민요에 비해 트로트는 굉장히 이질적인 음악이었다. 지금은 배척하기엔 뿌리가 단단하여 한국음악으로 토착화되었다고 간주되어야 한다.

운현궁에서 해원과 형길은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요시나리에 반하며 조선황실을 상징하는 꽃인 오얏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만 역사적 사실은 슬프기만 하다.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일제에 의해 일본군인의 복장으로 사진을 찍은 황손의 사진을 조선황실의 공식사진으로 유표하는 등 일제의 정치적 이벤트는 적나라하였으니 말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정치적 맥락에서 바라보길 경계하는 의도는 나쁜 제국주의의 선한 얼굴로 묘사되는 이우를 상관으로 모시는 요시나리뿐만 아니라 ,친일파 박영효를 바라보는 형길과 이우의 다른 시선에도 찾을 수 있다.

어린 아우 형길은 담장 밖에서 바라보는 박영효에 관한 친일의 시선이 그대로 옮겨지지만 이우는 같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조선의 흙냄새와 풀냄새를 사랑한 순수한 조선의 청년이자 우리 조선의 왕자 이우, 그러나 그는 히로시마 원폭의 희생양이 되어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오를레앙 허 press@sctoday.co.kr

오르레앙 허 (본명 허성우)

작곡가/재즈피아니스트

음악교육과을 전공, 프랑스 파리 유학.
IACP, 파리 빌에반스 피아노 아카데미 디플롬, 파리 에브리 국립음악원 재즈음악과 수석 졸업.
재즈보컬 임미성퀸텟의 1집 ‘프린세스 바리’ 녹음 작곡과 피아노.
제6회 프랑스 파리 컬러즈 국제 재즈 페스티벌 한국대표(임미성퀸텟)
제1회 한전아트센터 재즈피아노 콩쿨 일반부 우승
현재 숭실대, 한국국제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