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양혜규展, 방울·블라인드...현 문명의 총체적 주제 다뤄
[프리뷰]양혜규展, 방울·블라인드...현 문명의 총체적 주제 다뤄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9.29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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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 & H2O'展, 선집 공개
9.29~21.2.28,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울문화투데이 김지현 기자]관계성ㆍ여성성ㆍ이주와 경계 등을 주제로 작품세계를 펼쳐온 양혜규(1971~) 작가의 전시와 그간의 예술세계를 글로 풀어낸 선집이 공개됐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 & H2O’展으로, 29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전시는 양 작가의 설치ㆍ조각ㆍ회화 등 다채로운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기자간담회 진행 모습,이지회 학예연구사(왼쪽),양혜규 작가(오른쪽)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과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양 작가는 아트 선재 미술관(2010), 리움 미술관(2015), 서울 국제갤러리(2019)의 국내 기관 개인전을 가졌다. 지난 2018년에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표창)과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볼프강 한 미술상을 수상했다.

그는 파리 퐁피두센터ㆍ쾰른 루트비히 미술관ㆍ뉴욕 현대미술관ㆍ테이트 모던 등 권위 있는 기관에서 초대전을 개최 및 소장품을 전시하며 국내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동시대 미술가 중요한 위치라는 평가 받아왔다. 현재 모교인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순수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세계적인 작가다.

▲'소리 나는 가물家物'이 설치된 전시장

양혜규 작가는 전시 오픈 전 열린 간담회 자리에서 전시에 대해 “3년 여 간 미술관과 협업해 준비한 결과물”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전시와 함께 국립현대미술관과 현실문화의 공동출판으로 양혜규의 국내 첫 한국어 선집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모음 2001-2020』을 언급했다. 지난 20년간의 작품 활동과 작가와 관계해온 국내·외 미술계 필진들의 글을 엮은 선집을 읽고 전시를 본다면,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현실의 추상성'이라는 주제를 던진다. 생명 유지의 필수 요소인 산소(공기)와 물은 자연 속에선 물리적 현실이지만 인간이 고안한 화학기호 ‘O2 ’ㆍ‘H2O’는 특정하게 추상화된다. 전시명 ‘O2 & H2O’는 인간이 감각하는 경험의 추상적 성질을 미술 언어로 추적해온 작가의 관심사에서 나왔다.

▲신작 '소리 나는 가물家物 – 솥 겹 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박스ㆍ서울 5전시실에서 양 작가는 사회-문화권의 지식ㆍ관습ㆍ현상을 그만의 언어가 반영된 작품으로 선보인다.

토속적인 재료를 활용해 만들어진 조각과 대형 설치 작품에는 일상, 산업, 유사-민속적 성격을 갖는 다채로운 재료를 통해 서사와 추상의 관계성, 가사성(domesticity), 이주, 경계 등과 같은 주제가 담겨 있다.

신작으로 공개된 ‘소리 나는 가물家物’은 일상적 기물인 다리미, 마우스, 헤어드라이어, 냄비의 생김새를 본뜬 형태로, 조각 방울을 활용해 만들어 졌다. 작품에 사용된 ‘방울’에 대해 이지회 학예연구사는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등장한다. 방울의 금속성 소리가 춤과 결합하며 의례는 고양된 정신 상태가 되기도 한다”라며 “작가의 우주적인 세계관과 연결돼 있는 것이 방울이다”라고 설명했다. 4개의 조각은 같은 형태를 복제해 서로 맞붙이거나 교차 결합해 혼종 기물로 구현됐다. 이동이 가능한 조각은 움직일 때, 방울 소리와 떨림이 있다. 

▲'소리 나는 동아줄'를 시연하는 모습(왼쪽), 중간 유형 – 서리 맞은 다산의 오발 이무기(오른쪽)

일상적인 오브제에 방울 등을 부착해 만든 작품은 기존 오브제의 의미를 상실한 채, 기물의 인체 공학적 흔적을 전한다.

지난 2015년 이후 여러 문화의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화두를 꾸준히 던져온 작가는, 인공 짚을 엮어 만든 조각 연작 ‘중간 유형’도 선보인다. 천장에 매달린 총 네 개의 생명체들은 전통적 짚 직조 기법으로 인공 짚을 만들었다. 작가가 짚 직조 기법으로 구현한 ‘털’에 대해 이 학예연구사는 “포유류, 살아있는 생명체를 연상 시킨다”라고 설명했다. 전시장 벽에는 방패나 가면의 형태의 작품, 발 달린 소쿠리 모양의 ‘걸어 다니는 서리 맞은 분할 용기’(2018)는 인간, 동물, 무생물 사이의 기이한 피조물이 전시된다.

작가의 지인 김우희 목수의 글과 숟가락 전시, 목우공방의 ’108 나무 숟가락’에서는 일상, 지역, 공동체, 공예적 수행성 등의 의미를 살필 수 있다.

▲중간 유형 – 아쿠아 털보 전사 방패(왼쪽), 중간 유형 – 구렁이 생명체(오른쪽)

높이 10m, 움직이는 블라인드 조각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은 서울박스에 설치됐다. 과거 맥주 양조장이던 베를린의 킨들 현대미술센터 보일러 하우스에 지난 2017년 설치됐던 작품이다. 작품의 구조는 산업용 저장고를 암시하는 반면, '활성화' 된 상태를 나타내는 속심의 코발트블루는 디지털 세계와의 접점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다.

이외에도 5전시실에서는 하나의 커다란 큐브로 완성되는 두 개의 ‘솔 르윗 뒤집기’ 복도에 설치된 디지털 콜라주 현수막 ‘오행비행’과 물질과 상징, 에너지와 기술, 기후와 사회적 양극화, 재해와 국경 등의 내용을 담은 벽지 ‘디엠지 비행’도 전시된다.

작가는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과학적 사실ㆍ경험과 감각을 포함해 현대 문명이 처한 초현실적 상황에 총체적 사유를 보여주고, 관람객도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했다.

▲높이 10m의 설치물 '침묵의 저장고 – 클릭된 속심'

전시와 연계된 설명은 지난 28일 먼저 소개됐다. 내달 16일 오후 4시에는 주요 출품작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특별 영상이 유튜브(youtube.com/MMCAKorea)에서 중계된다. 오는 10월 23일과 2021년 2월에는 주한독일문화원과의 협업으로 두 차례 라이브 대담이 진행된다.

아울러 공연과 공공프로그램 등도 마련돼 전시 이해를 도울 예정이다. 전시 특별 홍보대사를 맡은 배우 정우성은 오디오 가이드에 재능 기부로 참여, 양혜규 작가의 주요 작품을 설명해준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4개관(서울, 과천, 덕수궁, 청주)이 29일부터 재개관하며, 사전 예약을 통해 무료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