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여성 미술작가 선구자...박래현展 추상화·태피스트리·판화 집대성
[프리뷰]여성 미술작가 선구자...박래현展 추상화·태피스트리·판화 집대성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10.06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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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2021.1. 3 ‘박래현, 삼중통역자’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8일 온라인 중계
‘미술가 박래현’ 독자적 조명...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순회 예정

[서울문화투데이 김지현 기자]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미술가 우향 박래현(1920-1976)의 초기작부터 만년작까지 집대성한 전시가 마련됐다. 전시는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각각의 예술적 기술 습득과 다양한 예술의 분야를 하나로 통합시킨 박래현의 도전기를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관에서 지난 29일부터 시작된 ‘박래현, 삼중통역자’展으로, 전시는 내년 1월 3일까지 이어진다. 온라인 생중계는 오는 8일 진행된다. 

올해는 박래현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에는 다채로운 주제를 시각적 매체로 구현한 박래현의 예술세계를 한 공간에서 살필 수 있다.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소장 작품을 협의를 통해 공개하는, 대규모 전시로 예술가 박래현의 성과를 조명해 선구적 예술작업을 소개한다.

▲박래현, 화장, 1943, 종이에 채색, 131×154.7cm, 개인소장(도판=국립현대미술관)

박래현은 식민지시기 일본화를 수학했으나 해방 후에는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회화를 모색했다.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넘어 세계 화단과 교감할 수 있는 추상화ㆍ태피스트리ㆍ판화를 탐구한 미술가다.

전시를 준비한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박래현을 “운보 김기창의 아내로 잘 알려진 작가”라며 “이번 전시는 ‘청각장애를 가진 천재 화가 김기창의 아내’라는 그늘을 거두고, ‘미술가 박래현’을 독자적으로 조명했다”라고 설명했다. 박래현은 1960년대 태피스트리ㆍ1970년대에 동판화 기술을 익히며 작업을 해왔으나, 가부장제 시대 ‘박래현’이라는 이름 대신 ‘김기창의 아내’라는 수식이 부각돼 왔다. 아울러 당시는 새로운 예술(판화)기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박 작가가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해 대중적으로 제대로 이해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전시명 ‘삼중통역자’는 박래현 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한 표현이다. 미국 여행에서 박래현은 영어를 해석해 구화와 몸짓으로 김기창에게 설명했는데, 여행에 동행한 수필가 모윤숙이 그 모습에 관심을 보이자 박래현은 자신이 ‘삼중 통역자와 같다’라고 표현했다. 박래현이 말한 ‘삼중 통역자’는 영어ㆍ한국어ㆍ구화(구어)를 넘나드는 언어 통역이지만, 전시에서는 회화ㆍ태피스트리ㆍ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던 그의 예술 세계를 지칭한다. 

▲박래현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예진 학예연구사

전시는 1부 한국화의 ‘현대’ㆍ2부 여성과 ‘생활’ㆍ3부 세계여행과 ‘추상’ㆍ4부 판화와 ‘기술’로 구성, 박래현 작업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1부 한국화의 ‘현대’에서는 박래현이 일본에서 배운 일본화를 버리고, 수묵과 담채로 당대의 미의식을 구현한 ‘현대 한국화’ 작업을 보여준다. 박래현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3년에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받았고, 해방 후에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1956년 대한미협과 국전에서 <이른 아침>, <노점>으로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전시된 작품 중 <단장>은 당시 박래현이 거주하던 하숙집의 딸을 모델로 했다. ‘거울을 보는 여성’이라는 소재로 한다. 배경 없는 큰 화면에 검은 옷의 소녀와 붉은 화장대만 마주 보도록 대담하게 구성했다.

한국에 돌아와 해방을 맞이한 박래현은 일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여성 인물화를 발전시키게 된다. 전시에서는 <단장>ㆍ<이른 아침>ㆍ<노점>이 한자리에 공개된다.

▲'십명가서화합벽', 박래현, 김기창, 천경자, 노수현, 김은호, 이기우, 김충현, 손재형, 김응현,이철경의 1974년 작품이다.

2부 여성과 ‘생활’에서는 화가 김기창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로 살았던 박래현이 예술과 생활을 조명한다. 1960-70년대『여원』, 『주간여성』등 여성지에 실린 박래현의 수필들이 전시돼,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했던 박래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김기창과 박래현의 합작도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된 ‘봄C’는 4폭의 연폭병풍에 그린, 큰 규모의 합작도다. 작품을 완성한 1956년은 박래현과 김기창이 입체주의를 수용한 새로운 양식의 동양화를 선보이면서 화단에 큰 획을 그은 시기다. 이 작품 이후 박래현은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화단의 중진이 됐다.

3부 세계 여행과 ‘추상’에서는 세계 여행 이후, 새로운 문화를 체험한 뒤 변화된 박래현이 추상화작품이 전시된다. 1960년대 세계 여행을 다니며 박물관의 고대 유물들을 그린 스케치북들이 전시돼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박래현, 작품, 1970-73, 태피스트리, 119.2x119cm, 개인 소장(도판=국립현대미술관)

박래현이 대만ㆍ홍콩ㆍ일본을 돌아본 후 본격적으로 추상화 제작에 몰두했을 때의 작품, 1964년과 1965년에 미국 순회 부부전 이후, 미국ㆍ유럽ㆍ아프리카를 돌며 서구 미술과 세계 문명의 현장을 접한 이후의 작품이 소개된다.

4부 판화와 ‘기술’에서는 판화와 태피스트리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동양화의 표현영역을 확장하고자 한 박래현의 마지막 도전을 조명한다. 1967년 박래현은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석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하고 미국을 방문했다. 이후 1974년까지 뉴욕에 체류하며 태피스트리와 판화를 연구했으며, 동판화 기법을 익혀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에서는 귀국 후 동양화에 판화 기술을 접목한 작품 다섯 점을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다.

그의 실험은 갑작스러운 병마로 중단됐지만, 매체를 넘나들며 판화와 동양화를 결합하고자 했던 그의 새로운 작품 경향은 재조명돼야 할 부분이다. 

▲박래현, Retrospetion of Era, 1970-73, 종이에 판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도판=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중계는 전시를 기획한 김예진 학예연구사의 설명으로 오는 8일(목) 오후 4시 약 40분간 진행된다. 전시 종료 후인 내년 1월 26일부터 5월 9일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순회 개최된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4개관(서울, 과천, 덕수궁, 청주)이 9월 29일부터 재개관하며, 미술관 누리집(mmca.go.kr)에서 사전 예약을 통해 무료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