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깨미와의 동거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깨미와의 동거
  • 윤영채
  • 승인 2020.10.09 2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먀오 먀오. 길바닥에 꼬리가 잘린 채 버려진 는 뒷골목 양아치 고양이의 둘째 아들이오. 어미가 물어다 준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먹다 객혈하고 누었으니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는 군. 아..아.. 점점 눈이 감긴다...아아'

우리 집 고양이 깨미
우리 집 고양이 깨미

  동대문 근처 번잡한 한 동네(시도 때도 없이 오토바이 굉음이 들렸던 걸 보면 창신동 봉제 공장 골목이나 동대문시장이 아니었나 싶다.)에 버려진 채로 발견된 새끼고양이는 착한 어떤 아가씨에 의해 구조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의식을 잃은 채 며칠이나 지났을까? 고양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되는 경로를 통해 이 어린 길고양이는 우리 집으로 입양되었다. 아빠는 가끔 집에 여자만 다섯(엄마랑 세 딸, 참치)이라 기가 빠진다고 푸념하시곤 했다. (자기가 다 저질러 놓고선) 이 녀석의 입양을 부산에 있는 아빠와 상의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드디어 우리 집에도 아들이 생겼다고 좋아하실 것도 같았다.

  이 녀석이 우리 집에 온 날은 201898일 내 생일이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다 보니 미역국 한 그릇 먹기도 힘들었던 때였다. 언니와 생일 기념으로 맛있는 밥을 먹고, 늘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내 동생 윤참치’(강아지)의 친구가 될만한 녀석이 없을까 하고 언니랑 집 앞 동물병원에 갔을 때, 이 녀석은 한 손에 얹힐 정도로 작고 가냘팠다. 완벽한 턱시도로 몸은 검정, 배 부분은 하얀 털을 자랑하는 이 녀석은 개미를 닮았다 하여 언니랑 나로부터 깨미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제2의 묘생을 살게 되었다. 방에 놓은 물과 밥을 먹고서 바로 내 가슴팍에 올라와 졸던 턱시도 고양이 깨미. 이때부터 이 녀석의 집사로 나 역시 제2의 집생이 되었음을 선포했다.

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스무 살, 대학에 모두 떨어지고 고등학교까지 졸업해버린 탓에 완전한 자유인이 된 나는 돈이나 벌자는 심산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돈이라고 하는 자본주의의 무지막지한 절대권력 앞에 무장 해제당한 나는 초라해져만 갔다. 원치 않는 회식에서 강요된 술을 진탕 마신 뒤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출근해야만 했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심했던 사장 밑에서 난처한 일들이 반복되자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집에서 홀로 울고 있는 나를 힐끔 본 깨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밥을 달라는 신호만을 보낼 뿐이었다. 젠장. 고양이가 나의 눈물을 닦아준다거나 위로해주는 일은 금 붕어에게 안마를 기대하기만큼 어렵겠구나.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상하게 자기의 본능에 의해 밥을 갈구하고, 눈치 없이 모래 속에 똥이나 싸고 있는 저 검은 생명체가 나에게 묘한 위로가 되기 시작했다.

  ‘세상과 다른 눈으로 나를 사랑하는, 세상과 다른 맘으로 나를 사랑하는 그런 그대가 나는 정말 좋다. 위로하려 하지 않는 그대 모습이 나에게 큰 위로였다. 나의 어제에 그대가 있고, 나의 오늘에 그대가 있고, 나의 내일에 그대가 있다. 그댄 나의 미래다.’ 권진아의 노랫말(‘위로’)처럼 말이다. 고작 스물한 해밖에 살지 못해서, 세상의 슬픔과 위로를 백분 이해하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저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나에게 요구하고 때가 되면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이, 어떠한 조건 없이 함께 하는 이 일상이, 나에게 곧 위로였음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떠올리면 이 녀석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랑이었고 사랑이며 사랑일 것임을.

 내 인생의 암흑기였던 열아홉 살에 우리 집으로 입양되어 제대로 된 젖 한번, 따스한 어미의 손길 한번 느껴보지 못한 채로 커버린 나의 고양이 깨미’. 이 녀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짠한 연민이 앞선다. 프로 집사다운 모습이 아닌, 매일 울고 투정을 부리는 철부지 누나의 모습만 보여줘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데도 깨미 이 녀석은 매일 밥을 요구했고, 물을 달라 칭얼댔다. 한 입 또 한 입 사료를 씹고 삼킬 때마다 나의 눈물도 조금씩 옅어졌고 이 녀석 옆에서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성장해갔다. 지금 나는 스물한 살, 깨미는 두 살.

  하루하루가 특별하진 않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사이. 지금 우리는 이렇게 지낸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 너무 늦은 건 아닐지……. 그저 남들을 바쁘게 쫓아가다가도 새근새근 자는 깨미를 보면 그저 이렇게 먹고 자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삶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베개 위에서 하염없이 팔을 뻗고 자는 깨미의 옅은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랑 같은 생일(입양한 날), 이제 갓 두 살이 된 파평 윤씨 집안의 윤깨미36대손 윤영채의 동거가 영원히 함께하길 그저 소망해 본다.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함께 있는 존재가 되어주길. 늘 너에게도 위로가 되는 내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