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영호남 춤의 교섭과 우리시대 춤지도자상(像)
[성기숙의 문화읽기]영호남 춤의 교섭과 우리시대 춤지도자상(像)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0.10.1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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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언젠가부터 ‘소리는 전라도요, 춤을 경상도’라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소리는 호남지역이 강세를 보이고 춤은 영남지역이 우세하다는 논리다. 정말 그럴까? 영호남 지역의 춤전승 내력을 내밀하게 살펴 보면, 이같은 속설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 같다.

삼한시대 변한은 가야국이 되었다가 진한과 더불어 통일신라로 병합되었다. 가야국의 천재 우륵이 신라로 귀화하면서 그의 수준 높은 춤과 음악은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는 계고, 법지, 만덕에게 각각 가야금, 노래, 춤 등을 전수했다. 또 신라의 승려 원효는 큰 박을 본떠 무애(舞碍)라 이름 짓고, 이곳 저곳을 유랑하며 춤과 노래로서 불교를 포교했다고 전한다.  

이런 기록도 있다. 『동경잡기(東京雜紀)』 「풍속조(風俗條)」 에는 7세의 황창이 적국인 백제에 들어가 검무를 추다가 백제왕을 찔러죽이고 그도 잡혀 죽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신라 사람들이 어린 황창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춤춘 데서 오늘날 검무가 기원되었다. 주술성이 담지된 처용무의 유래도 흥미롭다. 처용무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처용랑(處容郞) 망해사조(望海寺條)」에 기록이 전한다. 아내를 범한 외간남자(역신)를 춤으로 용서한 처용을 신라 사람이 아닌, 아랍상인으로 해석하는 글로벌한 시각도 있다.

당나라 유학생 출신 최치원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 「오수(五首)」도 주목된다. 여기서 오수란 신라오기(新羅五伎)를 뜻하며 금환·월전·대면·속독·산예 등 다섯 가지 기예를 일컫는다.  서역에서 전래된 신라오기는 전문예인들이 담당했다. 신라 왕립음악기관 음성서에는 금척(琴尺), 무척(舞尺) 등 이른바 ‘척(尺)’이라 불린 장르별 전문예인이 존재했다. 천년의 역사를 품은 신라의 수준 높은 가무악이 오늘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에서 영남지역의 찬란했던 문화의 저력를 엿본다.

호남 춤의 전승은 어떠한가. 호남 민속예능의 전통은 옛 마한과 백제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옛 문헌에는 농경의례와 관련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또 농악의 원류로 회자되는 탁무(鐸舞)의 존재도 뚜렷하다. 『일본서기(日本書紀)』 에 기록된 기악무(伎樂舞)도 주목된다. 백제사람 미마지(味摩之)가 중국 오나라에서 기악무를 배워 백제에 전하고 이를 다시 일본에 전해줬다고 한다. 기악무는 오늘날 한국가면극의 원류로 해석된다. 서역에서 발원된 기악무가 중국을 거쳐 백제로 전래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백제인 미마지는 고대 한중일 삼국을 관통하여 문화의 가교역할을 한 셈이다.

영호남 춤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교방과 매개되었고 일제강점기엔 권번을 통해 전승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지방 관아 혹은 감영이 있던 곳에는 대부분 교방이 설치되었다. 교방관기들이 선상기(選上妓)로 선발되어 궁중연향에 참가하였고 그들에 의해 궁중정재가 지방으로 이식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영남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호남보다 영남지역이 교방정재 비중이 월등이 높은 것은 이러한 내력과 관련이 깊다.

공교롭게도 호남 지방무형문화재 중 교방정재는 전무하다. 이른바 ‘영남학파’라는 고유의 학풍 형성에서 짐작하듯 영남지역은 예로부터 유학이 발달한 고장이었다. 조선시대 유가의 예악사상이 구현된 궁중정재가 선상기를 통해 영남으로 전파되었음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반면 조선시대 호남지역은 사대부 출신 관료 및 유학자들의 유배지로 낯익다.  

예컨대, 조선 창건의 주역이자 궁중정재 몽금척과 수보록을 지어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정당화하고 유가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데 기여한 정도전의 귀향지는 전라도 나주였다. 조선중기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꾼 조광조는 화순으로 유배되었다. 조선후기 사회개혁을 주도한 실학자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의 유배지 또한 강진과 흑산도 등 전라도의 외딴 섬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정리하자면, 유가의 예악사상이 투영된 교방정재가 영남지역 독서인층의 관심과 지원으로 꽃을 피웠다면, 호남은 개혁적 성향의 유학자 내지 주체의식을 소유한 실학자들의 대표적 유배지로 교방정재의 전통은 미약한 편이다. 반면 조선후기 실학과 매개된 새로운 예술장르가 호남지역에서 싹터 나왔음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속악(俗樂)의 주요 장르로 즉흥성과 개성이 중시된 시나위, 산조 등을 비롯 판소리가 발원된 고장도 호남이 아니던가.

20세기 초 판소리가 하나의 공연장르로 안착되면서 이른바 전국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즈음 호남에서 영남으로 전통가무악이 확산되었는데, 박기홍·박지홍의 역할이 컸다. 그들과 사승관계를 맺은 제자 대부분은 후일 여류명창으로 혹은 명무자로 일가를 이뤘다. 나주 출신 강태홍이 영남으로 옮겨가 제자를 양성하였고, 서편제 판소리 명창 장판개를 숙부로 둔 장월중선 역시 경주로 이주하여 호남제 전통가무악을 영남으로 확산시켰다.

이와 같은 현상이 도래한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개화기 철도개설을 통한 교통망의 확충과 새로운 상업자본이 집결된 근대 신흥도시 중심으로 권번과 극장공간이 출현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영호남의 전통가무악의 교섭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진 편이다. 오늘날 영호남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전통가무악의 융숭 깊은 문화유산은 이와 같은 결과의 소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즈음 ‘코로나19’로 인한 한국사회의 깊은 침묵 속에 무용계 내부는 요란스럽다. 내년 초로 예정된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출사표를 던진 두 명의 무용가는 공교롭게도 영남과 호남 출신으로 무용계를 대표하는 리더로서 역량과 전문성, 그리고 열정을 두루 갖췄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무용계의 새로운 리더상(像)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누가 협회장이 되든 상생과 협력으로 무용계 발전을 위해 공적으로 헌신하길 기대한다. 시대의 변곡점에서 치러지는 한국무용협회장 선거! 부디 페어플레이를 통해 각자의 소망을 성취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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