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평론가의 글쓰기와 무용전문지 II
[이근수의 무용평론]평론가의 글쓰기와 무용전문지 II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0.10.1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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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평론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평론을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작품을 정직하게 평가하고 겸손한 언어로 독자들과 소통해야한다. 평론기능을 회복시키고 평론가를 존재케 하며 무용전문지를 살리는 것은 이 길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호 글을 이렇게 끝맺었다. 

‘평론의 기본은 무엇일까?’, ‘좋은 평론은 어떤 것일까?’ 세상에 없는 두 가지가 정답과 비밀이라니 정답은 나도 모른다. 그러나 힌트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누구를 위해 평론이 쓰여 지는가?’를 잊지말아야한다. 둘째는 평론가의 메시지가‘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욕심을 더 부린다면 평론가들이 대학 강의에서 강조하는 평론 글의 기본 형식을 지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평론을 쓰는가?’ 공연을 마치고 전문가의 평가를 기다리는 무용가가 첫 번째 대상일 것이다. 내 작품에서 무엇이 보여 졌고 안무의도가 전달되었나? 평론가가 본 내 작품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고 혹시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 발견된 것이 있는가, 전문가의 평가는 어떤가? 무용가는 이런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미 공연을 본 관객들은 평론을 읽으면서 ‘내가 본 것과 평론가의 견해가 일치하는가’ 혹은 ‘내가 작품을 제대로 감상했는가’를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예비관객들은 ‘내가 꼭 보아야할 작품인가’를 판단하고 싶을 것이고 연구자들은 기록을 위해서 공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구성요소의 구체적 묘사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들 독자며 작품의 이해관계자 들이 공통적으로 평론가에게 바라는 것은 ‘좋다 나쁘다’란 단정적인 평가는 최소화 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과 요소별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해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충족되려면 평론은 글 자체로서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작가와 작품세계, 앞선 작품들과의 맥락, 주제의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 논리성과 형식성을 갖춘 글로서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좋은 평론의 요건일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평론을 싣는 전문지의 편집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져야한다는 사실은 종종 무시된다. 좋은 평론은 평론가와 평론을 게재하는 매체와의 합작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느 무용잡지 편집장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보내주시는 책은 잘 읽고 있습니다. 편집장님은 (인쇄하기 전에) 원고를 미리 읽으시는지요. 8월호에 실린 ‘춤평론 3’은 너무 끔찍했습니다. (이런 글은) 춤 독자들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내 자신이 쓰고 있는 평론가란 이름이 부끄러워지는 글이었습니다. 평론도 리뷰도 아닌 취객의 잡담 같은 글이었다고 할까요. ---잡지의 실명을 밝히지 않기 위해 중간에 39자 삭제함---. 춤을 사랑하고 글의 귀함을 아는 사람으로서 편집장님의 순수함을 믿고 있기에 한 마디 쓴 말씀을 드렸습니다.”  

답장은 없었다. 다음 달에도 그 필자는 평론을 썼고 글의 형식도 달라진 게 없었다. 아마도 편집장은 잡지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내 문자를 아예 무시해버렸던 모양이다. 생활이 바쁘다면서 일기장 형식으로 쓴 글이 춤평론으로 버젓이 게재된 것을 이 잡지에서 읽은 적도 있다. 평론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글이 마구잡이로 쓰이고 다달이 무용전문지에 게재되고 있는 것은 우리 무용계의 슬픈 현상이다. 평론가 단체도 두 개가 있다. ‘춤’ 지와 ‘댄스포럼’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춤평론가회에 11명, 춤 웹진을 운영하는 한국춤비평가협회에 14명의 평론가가 소속되어 있다. 이들 단체에 속하지 않은 독립평론가도 여럿이다. 좁은 무용계에 범람하는 무용전문지의 숫자도 문제다. ‘춤’, ‘댄스포럼’, ‘몸’, ‘춤과 사람들’ 등 월간 오프라인 매체 외에도 ‘춤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 등 온라인매체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매체들이 임의로 평론가 자격을 부여하는 현실도 문제다.

평론가도 예술가다. 훌륭한 공연은 관객을 위로하고 좋은 평론은 독자를 지혜롭게 한다. 평론가가 쓴 좋은 글을 골라내고 독자들에 전달하는 책임은 무용전문지의 몫이다. 이러한 자정능력을 상실한 잡지, 특정한 개인과 단체의 홍보수단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잡지, 전문지 본연의 기능에 소홀함으로써 무용인들로부터 소외되고 독자로부터 외면 받는 잡지는 이제 그만 산화(散華)할 때라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용시장을 보유한 미국도 전국적인 무용전문월간지는 ’댄스매거진(Dance Magazine)‘ 한 개 뿐이다. 우리도 이제 이런 책 하나쯤은 가져야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