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가로등 이야기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가로등 이야기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0.10.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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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도시의 밤을 밝히는 가로등은 그 역사가 기원전 4000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동물의 기름을 햇불에 적셔 불을 밝히고 추측컨대 제사와 같은 공동체 의식을 갖었던 것으로 기록된다.

지금과 같은 형태, 즉 광원을 등주의 꼭대기에 설치한 가로등은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등장했다. 16세기 네덜란드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며 밤에 시민들이 운하에 빠지거나 익사하는 사고가 많아지자 암스테르담 시는 세계 최초로 가로등 설치에 대한 내용을 담은 도시 조명 계획을 발표했다. 암스텔담에서 태어나 줄곧 암스텔담 시청이나 거리, 그리고 광장의 모습을 그렸던 화가, 얀 반 데르 헤이덴은 유채 기름에 목화 심지를 꽂아 불을 밝히는 랜턴을 등주 끝에 매다는 가로등을 제안하였고, 42m 마다 배치할 것을 - 이는 거리의 폭이나 배치에 의해 제시된 것이겠지만 광원의 광학적인 특성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러한 숫자를 명시한 것은 매우 의미하는 바가 크다. - 권장했다고 한다. 화가인 그가 도시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페인팅을 통하여 표현하면서 -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빛에 의해 드러난 도시, 건축물의 모습이 얼마나 잘 관찰 되었는지 알 수 있다. - 도시를 밝혀줄 가로등의 필요성을 깨닫고 그 방식이나 형태까지 제안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19세기에 들어서 등장한 가스를 연료로 한 가로등은 이전의 가로등이 주었던 불편함 - 충분하지 않은 밝기, 잦은 교체 주기, 제한적인 사용 -를 해결해 주어 1807년 런던 팰맬가에 처음 등장, 1850년경에는 이미 런던 전역에 확대 설치되었고 가스 제조 공장과 맨체스터의 필립스&리 방적공장의 외부에 조명을 설치하여 경관조명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랑스 파리는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도시 전역에 가로등을 도입, 확대해 나갔는데 겉으로는 밤거리 시민의 안전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당시 어둠을 틈타 이루어지던 민중들의 모임을 감시할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하층민 사이에서 유행하던 랜턴스매싱 Lantern smashing은 유리 깨지는 소리만으로도 답답한 시민들을 위로했을 뿐 아니라 지배층에 대한 반항을 의미했던 것이었고 당시 국가는 이를 왕권에 반항하는 범죄로 다루었다고 한다.

가스에 의한 가로등은 가스가 새면서 불이 나거나, 폭발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도 발생했지만, 이 후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은 틀림이 없었다.

상류층의 독서량이 들어 문학, 철학 분야의 부흥기를 맞은 것도, 산업계가 야간 근무제를 시작하여 생산성은 증가하고 근로자의 삶은 더욱 고단해진 것도 모두 이시기에 일어난 사회적 변화였다. 또한, 시민들은 해가 진 뒤에도 계속 파티를 즐길 수 있었고,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 있었으며 범죄 발생률도 줄어들어 도시는 시민들에게 안전한 곳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로등의 역사는 전기에 의한 가로등에서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석유를 부어 불을 밝히는 장명등을 문 앞에 걸어두어 거리를 밝히다가 1900년, 종로에 처음으로 3구의 전기 가로등이 불을 밝히게 된다. 이후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실제로 국내에 가로등이 보급된 것은 1960년대 말이라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것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 얀 반 데르 헤이덴의 목화심지 가로등은 150여년이나 사용되었다. - 가로등은 수은등에서 나트륨등 그리고 메탈할라이드(Metal Halade), 현재 LED까지 진화되었고 그 방향은 목화심지 가로등에서 가스등으로 진화한 이유 - 충분하고, 지속가능한 밝기, 긴 교체주기, 광범위하게 사용 가능한 효율 -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가지 주목해야 할 진화 방향은 색 표현력이다. 수은등은 도시 전체를 창백하게 바꾸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파리했었고 흰색 와이셔츠는 보랏빛에 가깝게 파란 기운이 돌았었다. 나트륨등은 세상을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였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면 초록색이라고 알고 있던 가로수도 주황색이 되곤 했다. 그래도 창백한 것 보다는 나았다. 내가 사는 도시의 모습이 조금 따뜻하게 느껴졌다.

고급 상점들이 밀집한 강남의 한 도로에 처음 메탈할라이드 가로등이 설치된 것은 종로에 최초의 가로등이 생긴 이유와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첫 인상은 빛이 비추어지는 모든 것을 반짝이게 하는 느낌이었고, 공기마저 투명한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 메틸할라이드 광원을 사용한 가로등이 등장하면서 도시의 다양한 색들이, 모습들이 드러나 야간경관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그 가치가 부각되고 또, 도시에서의 역할이 요구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LED 광원의 등장은 색 표현력을 포함한 모든 가로등 진화 방향의 업그레이드일 뿐 아니라 사람을 위한 환경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의 진화라고 할 수 있겠다. 광원의 수명은 늘어났고 효율은 좋아졌으며, 교체주기도 훨신 길어졌다. LED광원의 밝기에 대한 양적 개념은 이제 무의미하며 사용에 따라 스마트하게 증감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진화의 끝까지 온 것 같은 가로등이 이제는 ICT와 결합하여 잘 보이게 하는 안전을 넘어 찾아가는 서어비스를 할 모양이다. 이미 미세먼지나 오존등 공기의 질에 대한 환경정보의 플랫폼 역할은 얹어진지 오래, 주변의 교통상황등 기타 정보를 받아들이는 플랫폼을 설치하여 시민의 모바일로 전송하도록 한단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이렇게 가로등 광원의 특성이 진화하고 등주에 기능이 더해지면 도로별 가로등의 형태, 높이나 간격, 배치 기준이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 기준은 도로의 폭 그리고 광원의 광학적 특성에 따라 정해지고, 그동안 계속해서 광원의 특성이 달라져 왔는데 그 기준은 거의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조명 요소를 제각기 다른 분야에서 관할하다보니 도로 조명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 바꿀 수 있는지 지식이 없어 의문이 들 뿐이다. 여하튼, 얀 반 데르 헤이덴이 400년전에 제안했던 42m라는 숫자 만큼이나 모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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