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 예술기관 기획인의 직업 정체성은 무엇일까?
[장석류의 예술로(路)] 예술기관 기획인의 직업 정체성은 무엇일까?
  • 장석류 KMAC 한국능률협회컨설팅 공공문화 컨설턴트/행정학 박사
  • 승인 2020.10.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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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류 KMAC 한국능률협회컨설팅 공공문화 컨설턴트/행정학 박사

행정이 예술을 만났을 때, 행정인과 예술인은 함께 일을 할까? 생각보다 현실에서 행정인과 예술인은 직접적으로 만나 일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확장보다 집합명사로서 상호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문화부 공무원이 예술가의 의견을 듣고 설명하는 상황은 있지만, 행정업무를 함께 하거나, 예술창작의 직접적인 파트너로 만나지는 않는다. 예술인도 본인의 창작과정에서 행정인과 직접적으로 머리를 맞대지는 않는다. 행정인은 행정만 하고, 예술인은 예술만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행정인과 예술인에게 본인의 직업 정체성을 물어보면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기획인의 경우 스스로 인식하는 직업 정체성의 스펙트럼이 컸다. 국립극장 제작PD로 15년 경력을 가진 기획인에게 자신이 기대받는 역할에 대해 물었다. “예술인과 행정인은 본인의 포지션이 매우 확실하다 생각해요. 기획인은 그들의 확실한 포지션 외의 모든 역할들 기대 받는다 생각해요. 내가 어느 부분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디어의 시작부터 정산과 향후 발전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다 생각하면서 행정인의 도움을 어떻게 받을지, 예술가들이 어떻게 빛날수 있게 협업하는 방법까지 생각해요.”

행정인과 예술인의 일의 범위와 권한은 명료한 편이다. 명료한 만큼 직업 정체성도 명료하다. 하지만 공연장, 미술관 등 예술기관에서 공연, 전시, 예술교육 등을 기획하고, 예술가와 고객을 연결하는 업무를 맡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물어보았다. 기획인으로 대답하는사람이 많지만 행정인이나 예술인, 혹은 혼합형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예술기관 기획인은 크게 4가지 유형이 있었다. 예술가형 기획인, 시장형 기획인, 행정가형 기획인, 연구자형 기획인이다. 예술가형 기획인은 드라마투르그적 감각이 발달해 있고, 창작에 강점을 둔 프로듀서 마인드가 강한 유형이다. 시장형 기획인은 고객 지향성이 강하고 지속 가능함을 위한 티켓판매, 홍보마케팅 역량이 발달해있다. 행정가형 기획인은 정책과 제도에 대한 이해가 높고, 안정적인 지출과 정산의 관점에서 지원의 역할을 한다는 오퍼레이팅 마인드가 강하다. 연구자형 기획인은 거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정책 환경과 시장 상황에 따라 조직과 사업의 방향성, 전략을 설정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기획인의 경우 행정인, 예술인보다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혼합형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 4가지 유형도 가중치를 가지고, 다양한 비율로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술인이면서도 기획인, 기확인이면서도 행정인 같은 복수의 직업 정체성을 갖는 것이다. 한 기획인 공공극장 대표자에게 당신의 직업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저는 행정을 알고 있지만, 행정 전문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기획중에서도 제작에 대한 부분이 더 강해요. 프로듀서적인 관점이 강하고. 프로듀서들 내에서도 저는 상당히 크리에이터에 가까워요. 자질적인 측면에서 드라마투르그적인 감각이 더 발달 해있어요. 제가 그 부분을 좋아해요. 공공조직에 왔을 때 행정 능력이 없는 크레이에터가 많아요. 저는 이걸 알고 있으므로 섞어서 할 수 있는 극장장 같은 포지션, 예술감독과 행정감독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재원의 한계가 있거나 실질적인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미학적으로도 승부하고 싶어.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정체성 이겠죠.”

이러한 혼합형이 생기는 맥락은 예술 기관에서 기획인 직무를 시작한 사람은 직위가 올라갈수록 행정적 역량을 깊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요구받는다. 이에 비해 행정인은 직위가 올라가도 기획의 언어, 예술의 언어 습득을 요구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획인은 생존과 필요 때문에 행정의 언어를 습득하고, 행정인의 직업 정체성을 추가하면서 직무의 지평을 넓혀간다. 하지만 기획인의 진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행정인과 구분되는 특징은 이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반응을 통해 보람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기획인은 예술기관에서 직무를 좀 더 잘하기 위해 행정력을 갖추고자 하는 것이지, 기획인의 직업 정체성을 내려놓고, 행정인이 되고자 하는 경향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예술기관과 대학, 민간 문화학교에서 문화분야 전문인력, 혹은 기획자 양성과정, 예술경영, 예술행정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채로운 역량이 필요한 문화분야 전문인력 기획인을 육성한다. 그에 비해 행정이 문화예술을 만났을 때, 문화담당 공무원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은 부족해 보인다. 행정인도 기획인의 언어와 예술인의 언어를 알아갈 필요가 있다.

올해 2월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가칭)문화예술인재개발원 건립 및 운영 기본계획」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국립외교원,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농식품공무원교육원처럼 주요 부처마다 소속 교육기관이 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무원 교육 훈련기관은 아직 없다. 행정을 깊이 아는 기획인과 예술인도 필요하지만, 문화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는 행정인의 질적인 수준도 함께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