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시야마총장, "한 일 문제는 문화와 학술교류 통한 진지한 소통이 있어야"
와시야마총장, "한 일 문제는 문화와 학술교류 통한 진지한 소통이 있어야"
  • 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09.12.10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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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친한파로 알려진 와시야마 일본도쿄가쿠게이대학총장, "한류스타 중 박솔미씨 가장 좋아해"

일본의 국립교육대학인 도쿄가쿠게이대학 와시야마 총장은 도쿄대학교 독문학과 출신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교류에 대해 적극적인 친한 인사다. 지난 3일 부산 신라대 심포지엄 행사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 우리가 대다수 보아오던 ‘무게를 잡는’ 총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서슴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농담도 곧잘하는 소탈한 성품의 영락없는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인자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한일간의  청소년 교류, 문화 교류, 학술 교류 등, 상호간의 이해와 대화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교류를 통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불어 그는 한국의 여러대학과의 교류는 물론 일본문화의 뿌리인 백제문화연구와 교류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 2월 13~15일, 윤동주 옥사 64주기를 맞아 가쿠게이 대학내에서 추모전야제가 열리기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추모전야제에 참석해 축사까지 선물해 주어 또 한번 눈길을 힘을 실어 주었다. 그는 교육자답게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가치철학을 이야기 할 때면 더없이 진지하게 눈빛을 반짝이며 열정을 토해냈다. 현재 일본 뿐만이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이 시각적인 것에만 너무 현혹돼 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래서 그는 시각과 청각 후각 청각 우리 몸의 모든 감각을 통해 느끼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 한 예로 가쿠게이대학이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방학 때 기차를 타고 시골에 가서 일주일간 자연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교육적 가치와 효과가 있는 것이라 했다. 정년을 얼마 남겨놓고 있지 않은 그는 퇴임 후 자신의 고향마을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을 내비쳤다. 이날 한국인으로서 드물게 일본의 국립대학인 가쿠게이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이수경 교수의 도움을 받아, 와시야마 총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도쿄 가쿠게이(東京學藝)대학은 136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의 명문 사범대학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학생들을 ‘일본의 교사’가 되도록 교육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국제화 시대에 대응하는 교사’ 양성에 더 주력하고 있는가? 만약 국제화 시대의 인재 양성일 경우는 어떠한 컬리큐럼을 갖고 있는가?

우리 대학은 국제교육 전공, 아시아 전공, 구미 전공, 다언어, 다문화 전공을 갖추고 있으며, 영어·한국어·중국어·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 등의 언어 및 문화를 배울 수 있다. 외국의 약 60개 대학과 국제교류협정을 맺고 있고, 유학생도 500명이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제 감각이 풍부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어 있으니, 남은 과제는 다양한 활용이 되겠다.

한국에 대해서 상당히 교류적이고 우호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

나는 전쟁 중인 1943년에 시즈오카켄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조선에서 온 농업 연수생들이 우리집에 머물며 농업에 대한 공부를 했다. 창씨개명을 해서 이즈미하라(泉原), 요시무라(吉村) 등의 이름을 가진 청년들이었는데, 나를 아주 귀엽다고 늘 안고 다니며 놀이나 마을 축제 등에 데리고 다녔다 한다.

나도 동네에 있는 강의 나무다리를 같이 건너다녔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1945년에 귀국했는데, 부모님이 “이즈미하라나 요시무라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고 자주 말씀하셨기에, 나는 한국에 대해 아주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그들의 심경은 상당히 복잡했을 것 같다.

내년은 한국에서는 경술국치라고 부르는 1910년의 식민지 시대의 시작으로부터 병합 100주년의 해가 된다. 이 100년에 관해서 일본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한·일 합방이라는 불행한 역사는 사실을 사실로서 계속 밝혀내는 것과, 밝혀진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역사를 보는 관점이나 역사 청산을 위한 해법 속에는 항상 그 나라의 문화 수준과 견식의 수준이 나타난다.

그러한 수준을 더욱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들은 결국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직시하고, 서로 수준 높은 문화적·역사적 파트너십으로 우호적인 방향으로 미래 지향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본지 이은영 편집국장이 와시야마 총장과 진지한 대담을 나누고 있다.
항상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지향하려고 해도 독도문제 같은 역사적 문제가 불거지면 늘 양국의 외교문제의 걸림돌이 된다. 학장께선 한·일 역사가 향후 어떤 식으로 나아갔으면 좋다고 생각하는가?

독도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도 있지만 청소년 교류, 문화 교류, 학술 교류 등, 상호간의 이해와 대화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교류의 과제는 얼마든지 많다. 역사적 경위로 말하자면, 백제와 야마토의 교류 등은 학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더욱 더 규명해야 할 과제이고, 그러한 교류의 역사를 주요 문제로 삼으면서, 예민한 과제는 서로의 지혜와 시간을 들여서 차분하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지금 급히 서둘러서 결론을 보려고 하는 발상은 좋은 결과를 볼 수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서로 걸림돌이 되어 있는 문제는 많은 대화와 적극적인 교류 관계로 신뢰를 구축하며, 머리를 맞대고 우호적으로 미래를 생각하며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장하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는데, 향후 한·일 관계는 어떻게 변화한다고 생각하는가?

한·일 양 국민의 풀뿌리 시민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거라고 생각한다. 가서 보는 것, 눈으로 보는 것, 말을 건네보는 것, 음식 맛을 보는 것 등등, 이러한 체험적 교류를 통하여 서로 좋은 것을 추구하고, 상호 평가하며 개발하여 새로운 문화 형성을 창조한다면 한·일 관계는 더욱더 곤고한 우호 관계를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총장께서는 일본 국내의 한류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총장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류 스타나 드라마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한류 드라마는 제작법의 왕도와 리얼리즘을 균형있게 활용하여 중후한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기에, 공감과 감동과 사색을 주는 좋은 작품이 많이 창출되고 있는 것 같다. 인상적이었고 개인적으로 만나보고 싶은 스타는 <겨울 연가>의 최지우의 라이벌 역으로 준상에게 연민을 품었던 ‘채린’역의 박솔미 씨이다. 그녀의 다양한 작품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웃음)

▲올해 2월 가쿠게이대학에서 열린 윤동주 추모행사에서 와시야마 총장이 윤동주를 기리는 시낭송과 함께 축사를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2월에 귀 대학교에서 윤동주의 추모전야제를 개최했다고 들었다. 처음으로 국립대학법인체에서 행해진 행사에다, 일본에서 치안유지법위반이란 죄명으로 옥사당한 윤동주를 추모하는 행사를 승인하고, 또 근사한 축사까지 해주었다고 하는데.

2005년에 한국 연세대학교 대학원과 자매결연을 맺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을 때, 캠퍼스 내에 있던 윤동주 시비를 보게 되었다.

같이 동행했던 이수경 교수로부터 시비의 의미와 그의 주옥같은 시의 내용을 듣고, 그의 일생과 작품을 좀 더 알고 싶어서 윤동주를 읽어 본 적이 있다.

순수하고 곧은 마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아 당시의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 무참히 꺾여진 윤동주의 삶인 만큼, 우리들은 그의 행적과 역사를 명확히 하고 그가 염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의식을 가지고 다망한 생활에 쫓기고 있을 때, 이수경 교수가 나를 찾아왔다. 교내에서 윤동주 추모전야제를 개최함으로써 못 다 배운 그의 유학의 꿈을 되살리는 한편, 교사가 될 학생들에게 무력이 없는 미래 캠퍼스 만들기의 의미를 전하는 것이 우리들 교육자로서의 사명이라고 역설했다.

나는 실천하는 교사의 행동을 알리는 의미에서 흔쾌히 수긍을 하였고, 결코 과거와 같은 불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 힘써달라고 부탁하였다.전야제 당일, 그런 취지를 이해한 동료 교수들이 많이 참가하여 다채로운 음악·무용·낭독 등으로 그날을 빛냈다.

국적이 다양한 다문화 행사가 되었고, 모두가 불행의 반복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동의식을 가지고,  근대사를 반성하고 내일을 향하려는 의지의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고향의 봄>을 부르며 하나로 어우러져 우리가 지구촌 시민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 유익한 행사가 되었다.

총장님이 언급하신 마키무라 코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고치켄 출신의 천재 시인으로 불린 프롤레타리아 시인이다. 1912년 6월생으로, 윤동주보다 5년 먼저 태어났다. 윤동주의 내성적인 성격과는 달리 사회적으로 활동을 많이 했고, 전쟁과 억압에 저항하며 고치켄에서 반전문학운동에 몸을 담았던 문인이다.

한·중·일에서 널리 알려진 ‘간도 빨치산의 노래(間島パルチザンの歌)’ 등의 시를 통하여 당시의 한국사람들의 불행한 삶을 토로하며 옹호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의 그런 당연한 행동은 탄압당했고, 체포되어서 26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선열한 서사적 서정시와 역사를 향한 확신과 사상성, 그가 지녔던 국제주의 의식은 그 시대치고는 참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깊은 뜻을 가지고 있었다.

총장님은 그동안 귀 대학교의 이수경 교수와 많은 문화 행사를 치렀다고 했는데, 이 교수는 어떤 교수라고 평가하시고 있는가?

이수경 교수는 우리 학교에서 탁월한 연구업적을 쌓은 대표 연구자로 선정되어 있는 재원이기도 하면서, 대단히 성실하고 열심히 자신의 교육적 사명과 연구에 정성을 쏟는 정직한 연구자라고 할 수 있다.

학교의 국제 행사 기획 때 보면, 문제의 소재를 정확히 판단하고 대처하는 순발력과 통솔력, 분석할 때의 깊은 역사적 파악과 구조적 파악, 종합적인 사고력으로 전체 속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명석함과 초지일관한 사회 의식을 갖춘 석학이다.

완벽한 일본어와 언어적 표현력은 일본인을 초월하고 있고, 가슴을 울리는 문장 표현과 인도주의적 이해력은 교사 양성 필수과목인 국제인권교육론을 맡은 교수로서 가히 역량을 가진 인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이수경 교수이기에 동료 교수들이나 교직원들에게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고, 많은 학생들이 이 교수의 배움을 따르고 있다. 앞으로도 국적을 초월한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 세계적인 활약이 기대되는 우리 학교의 자랑이다.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 young@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