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부석사의 사계는 사랑?!
[발행인 칼럼]부석사의 사계는 사랑?!
  • 이은영 발행인
  • 승인 2020.10.26 1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연으로 올려진 창작 합창교향곡, 청중들 기립박수로 화답
의상대사와 선묘의 애절한 사랑 담은 대서사 그랜드 무대
동서양의 결합, 정교한 음악장치,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합창의 하모니
부석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 기념, 부석사의 역사와 아름다움 재조명

“천년의 부석사여, 그리운 이름이여, 기나긴 사랑으로 그 이름 다져왔네.
아름다운 부석사여, 천년의 그리운 이름이여! 수줍게 수려하고, 수줍게 찬란하네.
그리운 부석사여, 천년을 노래하리라!...하늘의 축복이여,영원한 부석사여!
땅과 하늘과 봉우리가 노래한다.”

지난 24일 경상북도 영주시(영주국민체육센터)에서 창작합창교향곡 ‘부석사의 사계’ 초연이 장중하게 펼쳐졌다. 청중들은 기립박수로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부석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 기념음악회로 열린 이번 공연은 창작 합창교향곡으로 구성됐다. 부석사의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조명하는 여러 의미가 중첩된 무대는 청중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졌다. 성악 솔로와 중창, 혼성중창과 합창,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어우러진 보기 드문 그랜드공연이었다. 부석사의 사계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당나라 출신 선묘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과 그리움, 부석사의 영원을 기원하는 묵직한 사랑의 대서사다.

창작 합창교향곡 부석사의 사계의 한 장면.(사진=영주시)

부석사의 사계는 한국오페라협회장인 박현준 예술총감독이 연출과 대본을 맡았고, 총기획 이철구 음악협회장, 이근형 작곡, 성기선 지휘, 대본협력 탁계석, 오케스트라 심포니사계(81명)와 그란데오페라합창단(100명), 중견과 신진 성악가들이 대거 출연하는 대규모의 진용으로 짜여졌다. 또한 무대 배경은 영상을 활용해 부석사의 사계를 각 장에 맞춰 보여줌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더했다.

공연은 부석사 범종의 묵직한 긴 여운의 떨림에 이어 박진감 넘치는 타악 대고(大鼓)의 힘찬 울림이 시작부터 가슴을 뛰게 한다. 이를 지휘자 성기선이 오케스트라를 앞에 두고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천년고찰 부석사를 소재로 동양의 범종과 대고, 서양 오케스트라의 조합은 이번 공연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창작곡 사계’가 청중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였다. 클래식 현대음악곡은 난해한 불협화음 등으로 일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그러나 총 4악장으로 구성된 부석사의 사계는 익히 들어오던 비발디의 사계처럼 편안하게 들렸다. 부석사의 사계절을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하고 느낄 수 있었다. 작곡가 이근형은 “‘온 인류와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일반 청중과의 소통을 위한 단순하고 아름답게 ‘귀에 들리는 음악’으로 만들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공연이 끝나자 청중들의 기립박수가 말해 주듯, 그의 의도는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대중 이해 쉽게 조성 구성. 성악과 오케스트라 교차편성으로 몰입도 높여

창작 합창교향곡 부석사의 사계의 한 장면.(사진=영주시)

부석사의 사계의 감상포인트는 편안함과 재미, 무게감,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은 짜임새다. 각 악장마다 독립된 오케스트라 연주와 성악으로 교차 편성해, 청중의 몰입도를 높이는 영리한 장치를 구사했다. 특히 1악장의 캐스터너츠의 솔로 등장은 보기 드문 것으로, 산사의 아침 손님 참새의 지저귐을 깜찍하게 표현한다. 3악장의 청아한 가을날의 산사에 울려퍼지는 목탁소리를 악기로 표현한 것은 부석사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한편, 이 또한 재미요소로 한 몫 한다. 클라리넷 솔로도 짧은 구간이었지만 신선한 편성이었다. 새소리, 풍경소리, 무량수전 처마밑 낙수소리, 산사를 휘감는 바람소리, 단풍과 흰눈... 이 모든 것들이 음악 곳곳에 담겨있어 서정성을 한껏 드러낸다. 피날레는 부석사의 위상에 걸맞게 웅장하고 장엄함으로 구현했다.

 바리톤과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와 테너의 솔로, 테너와 소프라노 등의 2중창, 3중창과 혼성4중창 등 9명의 성악가의 다채로운 무대가 펼쳐진다. 81명의 그랜드오케스트라, 100명의 합창단이 무대를 가득 채운 웅장한 스케일의 구성은 이들을 전체적으로 이끌기가 쉽지 않음에도 지휘자 성기선은 섬세하게 리드했다. 초연임에도 초연같지 않은 하모니로 청중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악장 부석사의 봄은 바리톤 김동섭의 밝고 힘있는 목소리로 대 서사의 막을 올리기에 손색없었다. 이어 경쾌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소프라노의 봄’으로 문을 활짝 열어준다. 소프라노 김정우는 ‘새들의 왈츠’에서 한 마리 꾀꼬리이자 종달새(진부한 표현같지만, 달리 이보다 더 합당한 표현이 없을 듯하다)였다. 꽃의 왈츠에서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여린 꽃잎이었다. 산산한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들의 하늘거리는 떨림을 잘 드러내는 표현력의 극대화였다. 김정우는 이번 무대에서 최고 돋보이는 연주자였다. 현재의 통통튀는 맑은 목소리와 매 무대마다 컨디션을 잘 유지하면 임선혜의 뒤를 이을 소프라노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감상포인트는 편안함과 재미, 무게감,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은 짜임새

2악장 여름은 메조소프라노 양성미가 깊은 우물에서 물이 가득찬 두레박을 흔들림 없이 길어 올리는 안정감으로, 변화무쌍한 여름을 담담히 안아냈다. 테너 김중일은 조금 여린 목소리였지만 차분하고 정성스럽게 오케스트라의 비바람 폭풍우로 연결시켜 주었다. 오케스트라는 격정적 선율로 여름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표현해냈다.

3악장 가을은 의상대사와 선묘의 본격적인 러브스토리로 넘어간다. 소프라노 김순영은 애절한 ‘선묘아리아’로 의상을 향한 지극한 마음을 잘 담아냈다. 이날 김순영의 흰드레스는 지고지순한 선묘의 모습을 연상시켜 아리아에 몰입도를 높였다. 이어진 카리스마 넘치는 테너 박현준의 폭발적인 성량이 무대를 압도했다. 바리톤의 무게까지 가미된 목소리는 선묘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하는 의상의 고뇌와 사랑의 깊이가 묻어져 나왔다.

창작 합창교향곡 부석사의 사계의 한 장면.(사진=영주시)

4악장 겨울, 이 땅의 뭇생명들의 겨울잠을 고요히 재워주듯 흰눈이 사락사락 내려 부석사와 소백산을 하얗게 덮는다. 영상위로 잔잔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평화의 세계가 펼쳐지다 끝부분에 긴장감으로 전환된다. 바리톤 김동섭은 겨울의 길목으로 들어서며 더욱 빛을 발한다. 바리톤 정광빈과 베이스 김요한, 테너 박현준이 합류하면서 남성 4중창의 묵직함으로 무대는 정점에 이른다.

이어 소프라노 신지화의 원숙한 성량과 성음으로 무게감과 깊이를 더하며, 김중일의 맑은 목소리가 어우러진 이중창과, 9명의 성악가의 합창과 100명의 합창단의 소리가 어우러지며 연주의 대미를 향해간다.

세찬 바람을 견뎌낸 천년 고찰의 뿌리깊은 역사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의 용맹정진으로 사바세계의 평화가 찾아든다. 의상과의 못다한 사랑의 애달픔이 부석(浮石)이 돼 부석사(浮石寺)를 지키고 있는 선묘를, 땅과 하늘과 봉우리가 이 모두가 영원하기를 축복한다. 빠른 템포의 오케스트라 선율과 합창은 부석사의 사계의 대장정을 웅장하고 장엄하게 마무리 한다.

세계인에 어필되는 음악으로 뉴욕과 베를린 무대에도 올려지길

이렇게 훌륭하게 잘 마친 연주회에서 아쉬운 점은 있었다. 성악가들이 악보를 들고 노래하는 것이 거슬렸다. 노래에 감정을 다 실어야 하는데, 악보를 들고 노래하다 보니 가끔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고, 가수가 마이크를 살짝 놓치는 상황도 연출되기도 했다. 또한 신지화 솔로곡 중 끝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레 끌어올려지도록 곡을 마무리했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럼에도 부석사의 사계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시사점을 남긴다. 지방에서도 대규모의 창작 합창교향곡을 올릴 수 있다는 점과 이를 지속적으로 연주를 해 나갈 수 있는 무대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점이다. 또한 이번 무대를 본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는 오페라 제작에 앞서 음악적으로 정식 무대에서 호흡을 맞췄다는 점이다. 이는 다음 단계로 가기 전 작품완성도를 높이기에 매우 바람직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당초 이 공연은 야외에서 올려질 계획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요인으로 실내에서 연주됐다. 개인적 바람이라면 내년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이 연주들을 꼭 다시 듣고싶다. 아울러 박현준 총예술감독의 희망대로 부석사의 사계가 오래지 않은 시간 내에, 뉴욕에서, 베를린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부석사의 사계가 널리 울려퍼지길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