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과 문자의 조우, 김창열 작가 개인전 ‘The Path’
물방울과 문자의 조우, 김창열 작가 개인전 ‘The Path’
  • 왕지수 기자
  • 승인 2020.10.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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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김창열 개인전 ‘The Path’ , 10.23~11.29
물방울과 문자가 결합한 김창열 작가의 작품 세계 새롭게 조명

[서울문화투데이 왕지수 기자] 캔버스 한가득 빼곡하게 써진 문자 위에 맑은 물방울들이 톡하고 떨어져 있다. 힘주어 반복해서 그린 문자와 흐트러짐 없이 원형을 유지하며 맺혀 있는 물방울은 캔버스 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문자’와 ‘물방울’, 이 둘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김창열 개인전 ‘The Path’ 전시 전경
▲김창열 개인전 ‘The Path’ 전시 전경(사진=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가 지난 23일부터 오는 11월 29일(일)까지 김창열의 개인전 ‘The Path’를 대중에게 선보인다. 김창열의 작품을 ‘The Path(길)’라는 주제로 한자리에 모아,  그의 작품 세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하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

일명 ‘물방울 작가’로 불리는 김창열은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과 동양의 철학과 정신이 담긴 천자문을 캔버스에 섬세하게 쓰고 그리면서 회화의 본질을 독창적으로 사유한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파리에 정착해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갤러리현대와 김창열 작가가 함께하는 열네 번째 개인전인 ‘The Path’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물방울과 함께 거대한 맥을 형성하는 문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에게 문자는 이미지와 문자, 과정과 형식, 내용과 콘셉트, 동양과 서양, 추상과 구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미적 토대이지만,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물방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것이 사실.

‘The Path’ 展은 김창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문자에 담긴 심오하고 원대한 진리의 세계관이 생명과 순수, 정화를 상징하는 물방울과 결합해 우리에게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김창열 개인전 ‘The Path’ 전시 전경
▲김창열 개인전 ‘The Path’ 전시 전경(사진=갤러리현대)

그가 캔버스에 수없이 그린 문자는 바로 천자문과 도덕경이다. 작가는 우주와 만물의 이치를 담고 있는 천자문과 무위자연이라는 노자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는 도덕경을 캔버스 위에 끊임없이 옮기며, 자기 자신이 삶을 살아내며 나아갈 방향에 대해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듯하다.

또한 작가 김창열은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모든 사물을 투명하고 텅 빈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용해하는 행동이다, 당신이 분노와 두려움을 몰아내고 자신을 비운다면, 당신은 평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자아를 무화 시키기 위해 이런 방법들을 추구하고 있다.”라고 자신이 물방울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작가가 옳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에 맑고 깨끗한, 나아가 생명의 근원인 물방울을 제일 마지막에 떨어뜨림으로써 스스로가 선택한 도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물방울로 마침표를찍어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품은 평생 물방울을 그리고 문자를 쓰는 수행과 같은 창작을 이어간 김창열이 도달한 ‘진리 추구’의 삶과 태도를 은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 ‘수양과 회귀’, ‘성찰과 확장’ 등 총 3가지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마련된 1층 전시장에는 기존에 김창열 작가가 그려왔던 물방울에 최초로 문자가 결합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지하 전시장의 ‘수양과 회귀’에서는 문자가 물방울과 조우하는 <회귀> 연작의 다채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2층 전시장 ‘성찰과 확장’에서는 작가가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제작한 <회귀> 연작 중, 먹과 한지를 소재한 작업을 선보여 동양 사상의 문자를 동양적인 조형 이미지로 구현하기 위해 재료의 사용에도 연구를 거듭한 그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