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가 이태호, 평양 지역 고구려 벽화를 남기다…『고구려의 황홀』 출간
미술사가 이태호, 평양 지역 고구려 벽화를 남기다…『고구려의 황홀』 출간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10.27 15: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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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의 디테일 이미지 500여 컷을 책으로 엮어
▲이태호 글ㆍ그림|덕주|정가 35,000원
▲이태호 글ㆍ그림|덕주|정가 35,000원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한국 미술의 뿌리, 고구려 고분 벽화를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2006년 평양 지역 고구려 벽화고분을 답사했던, 미술사가 이태호 교수(명지대학교 초빙교수)가 500여 컷이 넘는 디테일 이미지를 책으로 엮어냈다.

이태호 교수가 2006년 봄 평양 지역 고구려 벽화고분 답사할 당시, 안악3호분에서 강서중묘까지 평양 일대 8개 고분에 대한 '남북 공동 고구려 벽화고분 보조실태 조사'가 이뤄졌다. 이태호 교수는 벽화의 ‘미술사적 조사’를 위해 이 조사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교수는 처음 구입한 똑따기 디지털카메라(라이카-루믹스 소형)를 메고 습도 90%가 넘는 고분 안으로 들어가, 그린 지 1400년에서 1600년이 지난 벽화를 실견했다. 그곳에서 1400년에서 1600년이 지난 벽화를 실견하면서 여건이 허락된다면 ‘어쨌든’ 찍어댔다.

그는 “안악3호분에 들어갔을 때다. ‘널길을 따라 깜깜하고 축축하기 이를 때 없는 앞방(전실)에 이르렀을 때, 짙은 어둠 속에서 문득 낯선 푸른 레이저 광선이 자신을 뚫고 있어서 순간 소름이 돋고 섬직했다”라며 “이 광선의 정체는 앞방과 널방(현실) 사이에 세워진 기둥머리 귀면의 푸른 색 눈에서 쏟아진 안광이었다. 벽화고분 안으로 들어서면, 화가가 방금 벽화에서 붓을 뗀 듯 인물상의 선들이 사면 벽에서 휘적휘적 걸어 나와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듯이 생생하고 황홀했다”라며 안악3호분에 들어갔을 때 첫 인상을 전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이 1500컷이 넘었다.평양에 다녀온 조사단은 2007년에 조사보고서로 두 권의 책을 냈지만, 이 보고서에 이태호 교수의 디카 이미지들은 거의 실리지 못했다. 벽화의 디테일한 이미지들은 2008년 일본 오사카 한국문화원에서 있었던 ‘고구려의 색, 한국의 색’ 전시에 잠시 나왔다가 수업이나 강의에 부분부분 조금씩 보여졌다고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소재와 내용에 따라 세 시기로 나눈다.

4세기 중반에서 5세기 초반이 초기에 해당한다. 황해도 안악, 평양 지역에 산재한 안악3호분, 덕흥리벽화고분, 태성리1호분 등이 이 시기에 조성됐다. 이때의 고분벽화는 무덤 주인을 신격화한 초상화가 중심이다. 중국풍의 기물과 복식을 걸치고 권위를 표현했다. 대규모 행렬도나 거느리던 관료들과의 대면식 같은 궁궐, 관청 등에서의 행사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부엌, 푸줏간, 마구간, 외양간 등 가내생활도 곁들였다. 이 교수는 “무덤 주인의 공적 혹은 사적인 생활상을 담은 그림은 당대의 훌륭한 풍속도”라고 평가했다.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까지의 그림에는 신격화된 초상화 방식이 사라지고 풍속화와 사신도가 공존한다. 고구려식 복장을 한 인물과 손님맞이, 가족나들이, 광대놀이, 사냥, 씨름 등에 대한 묘사는 ‘한 폭의 여유로운 풍속화’다. 한편 무용총, 쌍영총 등에서는 풍속화와 함께 사신도가 벽이나 천장에 등장한다. “소재가 풍부해진 만큼 회화적 기량도 크게 진전했다. 채색이 밝아지고 대상 묘사가 정확해졌다”라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후기에 해당하는 6세기 후반∼7세기 전반의 벽화에서는 사신도가 단연 두드러진다. 다실(多室), 양실(兩室), 단실(單室) 등으로 다양하던 고분 내부 구조가 단실로 정착되면서 실내의 네 벽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장식했다. 중국 지린(吉林)성의 통구사신총, 평양의 호남리사신총, 강서대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때의 사신도는 ‘웅혼한 형상미와 에너지’가 특징이다. 백제, 신라와의 전쟁, 중국 왕조와의 동북아 패권 경쟁을 치르며 ‘승리를 자축하곤 했던 결과’의 반영으로 해석된다.

이태호 교수는 “지금은 어렵지만, 남북 간에 평화 분위기가 더 익어가서 고구려인들의 생활상과 정신세계를 누구나 접할 수 있게, 고구려 고분 벽화의 세계가 더 확실히 열릴 때까지 이 디테일 이미지들은 유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둡고 습한 고분 안에서 저자가 오롯이 체험했던 감동을 담았다. 인물 군상들을 묘사한 생동하는 붓 선의 끌림, 사신도(현무, 청룡, 주작, 백호)의 웅장한데 섬세한 아름다움, 그리고 붉고 푸른 다채로운 색채의 황홀경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정가 35,000원, 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