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청길 대표, "‘막걸리’를 ‘마코리’로 만들면 안되지!"
유청길 대표, "‘막걸리’를 ‘마코리’로 만들면 안되지!"
  • 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09.12.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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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이 옛날처럼 술익는 마을로...각 지방마다 고유의 전통막걸리브랜드 하나씩 있었으면 한다”

‘막걸리’는 ‘막 걸렀다’는 데에서 이름이 왔다. 맑은 술을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서 짜낸 술이기 때문이다. 희면서도 탁하고 농부들이 자주 먹어서 ‘탁주’ 또는 ‘농주’라고도 불린다.

지난 11월 19일 본지가 창간 1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서울문화투데이 글로벌문화대상’을 수상한 유청길(51세) 금정토속산성막걸리(주) 대표는 이 막걸리를, 그것도 우리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이다.

유 대표의 수상 배경은 일본에서 우리 막걸리 누룩제조법을 가져가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으나 절대 ‘우리 것’을 내줄 수 없다며 굳건히 지키고 있는 유대표의 뚝심이 수상자선정위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이다. 유 대표는 김치가 기무치가 된것처럼 또 다시 우리것을 잃어버리는 ‘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대표는 최근 우리나라 막걸리를 만드는 대기업에 대한 일침을 가한다. 한마디로 자존심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 전통방식을 버리고 일본식으로 만들고 있으면서 전통주라고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현재 “일본인들이 막걸리가 한류라고 해서 관심을 갖고 찾고 있는데, 이럴 때 우리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놔야 한다.

전통과 조상들의 지혜가 노하우이자 전통과학이다. 숫자로 계량을 한다는 것만이 과학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성분분석 등은 하겠지만 맛에 대해 흉내내거나 계량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유 대표의 증조고모할머니가 일제강점기 때 동네에서 처음 술도가(양조장)를 시작했는데 그게 밀주였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우연한 기회에 산성막걸리 맛을 보고 우리나라 전통민속주 1호로 지정해 그 제조법이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이다.

▲누룩
막걸리는 제조 방식에 따라 ‘한국식’, ‘일본식’으로 나뉜다. 통밀을 거칠게 갈아서 물과 섞은 것을 반죽해 빈대떡 모양으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면 우리 식이고, 원하는 곰팡이 균(백국)을 직접 배양해서 쓰는 것, 즉 입국법(入麴法)이 일본식이다. 현대에 들어서 대부분의 양조장이 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만들 때 곰팡이 이외에 불필요한 잡균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기술이 필요하고 힘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에 입국법은 원하는 곰팡이만 배양해서 사용하므로 어느 정도 균등한 맛을 보장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입국법으로 사케(청주) 등을 제조하는데, 일본에도 ‘도부로쿠(濁酒 : 니고리자케)’라고 우리 막걸리와 맛이 비슷한 술이 있다. 하지만 코끝이 알싸해지는 누룩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없고 맛이 가벼워서 실제로 일본인들이 한국의 막걸리를 무척 선호하고 있다.

마침 취재를 간 날 공장 식구들을 위한 김장 담그는 날이었는데, 막 버무려진 김치와 산성막걸리는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며 그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산성막걸리는 화학성분이 들어간 일반 시중 막걸리와는 확연히 다른 맛이었다. 얕은 맛이 아닌 두터운 맛이라고나 해야할까?

지난 11월에 열린 막걸리 박람회에서 서울의 까다로운 맛 전문가가 단연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꼽기도한 인정받은 ‘명품’막걸리다. 일단 한 번 마셔보시라.  다음은 유청길 대표와 일문일답.


 

▲누룩방에서 유청길 대표

-이번에 본지의 글로벌문화대상을 수여했다. 우리 누룩 효모 종균 배양 기술을 일본에서 가져가려고 했지만 이를 끝까지 지켜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는데.
어제 대구 계명대학교 유대식 교수가 다녀갔다. 식품공학 쪽에서는 상당한 권위가 있으신 분인데 저보고 신신당부하는 말씀이 종균을 절대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누룩종균은 국가 차원에서 보존해서 우리가 세계에 로열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종자 로열티로 빠져나가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그런 점을 봤을 때 유 교수님 말씀이 백번 지당하다.

-일본에서의 유혹이 집요했을 텐데?
몇 년 동안, 지금도 일본 발효 전문가들이 함께 일하자고 찾아온다.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 일본에 가서 1년간만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거다. 우리의 전통 비법을 일본에 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지만, 우리도 미처 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한 우리의 전통 누룩과 막걸리 제조법을 알아내려고 일본인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상 받은 소감을 다시 한번 말해 달라.
기쁘다. (웃음) 그리고 산성막걸리를 더욱 잘 지켜가야 하는 책임감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들이 하는 일에 대해 발굴해내고 그 가치를 알아준 ‘서울문화투데이’에 감사드린다. 현재 전통을 도외시하고 세계화를 하자는 말만 하지 우리 막걸리 속에 숨겨진 오묘한 비밀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산성막걸리 맛의 특징은 무엇인가?
달고 신맛이 특징이다. 덜큰한(*편집자 주 : ‘달짜근하며 시원하고 맛있다’는 경상도 사투리) 맛이다.

-다른 막걸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산성막걸리는 지하 250m 깊이로 파서 나오는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 이곳의 물 맛이 뛰어나 다른 지역에서는 우리 막걸리의 독특한 맛을 흉내낼 수 없다.

-만드는 과정은?
통밀을 굵게 갈아서 깨끗한 그 물을 섞어 반죽을 한다. 그걸 조금씩 떼어내서 전용 덧신을 신고 사람이 발로 꼭꼭 밟아 빈대떡처럼 편다. ‘족타식’이라는 전통 방법이다.

-발로 밟는 이유는?
반죽 속에 공기가 남아 있으면 발효가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누룩방
-상당히 힘도 들고 작업 속도도 더딘 방법 같은데, 그 작업을 기계가 대신하지 못하는가?
기계도 있다. 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공기가 남아 있으면 안 되는데, 기계로 하면 그게 만족스럽게 되지 않는 거다. 천상 사람이 직접 해주는 게 속도도 빠르고, 그게 대량생산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자 장점인 것 같다. 귀하다는 건 장점이니까.

-반죽을 한 다음에는?
반죽이 다 된 누룩은 마을에 있는 누룩방으로 옮긴다. 이 누룩방이 50년 넘게 사용하는 방인데, 실내 온도를 48~50도로 유지하면서 1주일에서 보름 동안 누룩을 띄우면 하얗게 곰팡이가 핀다. 그러면 그걸 잘게 부순 다음에, 푹 찐 고두밥(*물을 넣지 않고 증기로만 찌는 밥)과 물을 섞어서 술 탱크에 넣고 며칠 두면 산성막걸리가 되는 것이다.

밀가루 떡에다 효모를 넣어 2~3일 만에 뚝딱 만드는 공장 누룩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누룩을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인데, 이런 전통 누룩과 우리 산성마을의 맑은 물, 그리고 정성이 합쳐져 산성막걸리가 나온다. 물론 다른 첨가물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일본에도 우리 막걸리와 비슷한 술이 있다는데?
감히 자부하지만 그들은 우리 맛을 절대 못 따라온다. 일본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 입국이다. 입국이 뭐냐면 고두밥을 찌면서 곰팡이를 누룩식으로 쪄서 비닐을 씌워 띄우는 것, 일본 사케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효모를 다 죽이니, 결국 살아 있는 술이 아니라 죽어 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것이다. 효모가 죽어 있으면 막걸리로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대기업에서 하는 방법이 다 이런 일본식이다.

-만들면서 힘이 들지만 기쁜 순간도 있을 텐데?
커다란 술통에 함께 섞인 누룩과 고두밥은 2~3일 후부터 발효가 시작돼 여름에는 7일, 겨울에는 10일 정도 지나면 술이 완성된다. 그런데 발효가 시작될 때 술통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두두두두!” 하는 소나기 내리는 소리 같은 게 들린다. 이게 술이 발효되기 시작하면 나는 소리, 술이 익는 소리인데, 그 순간 희열 같은 걸 느낀다.

-살아 있는 효모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천연 누룩에서 발생하는 그 자체를 쓰고 있기 때문에 효모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술은 습도와 온도 등의 차이에 따라 일정한 맛의 유지는 조금 어려운 부분은 있다. 지난 11월 19일에 서울에서 막걸리 심포지엄할 때 문제가 된 것은 전부 가짜 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전통 술이라고 말해서…. 누룩을 통해, 누룩과 고두밥을 통해 효모가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전통방식이다.

-그날 문제 제기를 했나?
했다. 그러나 전부 대기업들 아닌가. 우리나라는 자존심도 없다. 중앙에 있는 사람들이 막걸리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알아야 한다. 그날 눈치를 보니 언론도 대기업 편에 다들 섰더라. 현재 막걸리 붐이 일고 있는 이 시기에 해야 한다. 일본인들이 막걸리가 한류라고 해서 관심을 갖고 찾고 있는데, 이럴 때 우리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놔야 한다.

전통과 조상들의 지혜가 노하우이자 전통과학이다. 숫자로 계량을 한다는 것만이 과학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성분분석 등은 하겠지만 맛에 대해 흉내내거나 계량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산성막걸리의 주 소비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에피소드일 수도 있는데, 부산대학교를 졸업한 출신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유는 우리 동네와 부산대가 인접해 있어 부산대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거의 우리 막걸리를 마셨다. 그때의 맛을 잊지 못하는 부산대 출신들이 지금도 꾸준히 전국에서 찾고 있다.

-산성막걸리와 관련된 재밌는 일들도 많은 것 같은데.
10여 년을 우리 막걸리를 하루에 한 병씩 드시는 분이 있다. 열흘에 10병씩 사가는데, 이분은 우리 막걸리 마신 이후 변비가 없어졌다며 마니아가 되신 분이다. 건강을 위해 매일같이 조금씩 일정하게 양을 정해놓고 마시는 분들이 많다.

-함양의 유기농 햅쌀인 ‘용추미’로 제조한 ‘햅쌀막걸리’를 출시하고 있는데, 가격이 꽤 비싸겠다.
햅쌀로 막걸리를 담아달라는 요청이 많이 왔다. 그래서 일반 막걸리와 이원화해서 햅쌀막걸리를 만들어 내는데, 병당 5천 원으로 비싼 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주목할 일이 있다. 막걸리라고 하면 무조건 싼 술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제조사 사장들부터 막걸리는 싼 술이라는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얼마든지 고급 술이 가능하다. 막걸리는 맛뿐만이 아니라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웰빙시대에 발맞추어 그런 인식을 해나가고 더욱 고급화시켜 나가야 한다.

-유기농 햅쌀막걸리는 주로 어떤 곳에서 주문이 오는가?
서울의 롯데·현대·신세계 등 3대 백화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주문해 오고 있다.

-생산 비율은 어떤가?
아직은 일반 산성막걸리가 99%를 차지하고 햅쌀은 1% 정도지만 햅쌀막걸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루 생산량은?
누룩 생산에 한계가 있어 하루에 3000리터, 약 5천 병 정도 생산하고 있다.

-상표출원과 무형문화재 지정도 추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 누룩 때문이다. 유사품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출원신청을 하려 한다. 우리 막걸리병에 내 사진을 넣은 것도 내 이름을 걸고 정직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소비자와의 약속이다. 이런 것은 요즘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막걸리로 유일하기 때문에 그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뜻있는 분들이 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요즘 ‘맥주의 맛있는 적정온도’를 말하는데, 산성막걸리도 그런 게 있는가?
출시된 후 이틀 정도 냉장보관했다가 마실 때가 가장 맛이 좋다. 소비자들이 증언해주고 있는 말이다.

-수출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주로 어디에서 많이 의뢰가 오나?
주로 일본에서 많이 오는데 물량을 다 대주지 못한다.

-생산 설비를 늘리면 되지 않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누룩제조 기술자가 많이 양성돼야 하는데, 그것이 교육한다고 금방 되는 것이 아니다. 누룩방의 온도와 습도 등을 관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적어도 40년은 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60여 년 해오신 우리 어머니(전남선. 77세)도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하실 정도니…. (웃음) 현재로서는 금방은 힘들지만 우리 누나들이며 주변에서 같이 배우고 있어 머지않아 조금은 확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고급화 전략도 설비의 부족분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다. 우리 전통을 살려야 사는 것이다. 우리 김치처럼. 김치가 세계에 알려질 때 일본이 우리 것을 흉내내서 만든 것이 우리 김치인 줄 아는 세계인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진정한 김치맛을 아는 사람들은 다시 한국 고유의 본연의 맛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건 결국 한국적인 맛에 뿌리를 두고 가야 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얄팍한 상술로는 안 되는 것이다.

-막걸리와 관련된 꿈이 있다면?
두 가지가 있다. 이 산성마을 전체가 ‘술 빚는 마을로 정착’되길 바라는 것과, 우리나라 전국 각 지역마다 고유의 브랜드를 가진 막걸리가 하나씩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산성은 예전부터 집집마다, 그 당시는 ‘밀주’라고 단속을 받았지만, 워낙 동네가 외떨어져 있고 깊은 산속에 들어 있어서 밀주를 담아도 단속을 거의 당하지 않았다. 일제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지형적인 요인이 많다. 그때 집집마다 술을 담았던 것처럼 온 마을이 막걸리를 빚는 마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주 감귤막걸리처럼 각 지역별로 고유의 특산물과 결합된, 우리 막걸리가 프랑스의 와인처럼 세계적인 것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김치’ 대신 ‘기무치’라는 일본말이 외국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막걸리’가 아닌 일본식 ‘마코리’가 외국 시장에 먼저 소개될까봐 걱정이다. 따라서 전통 누룩을 빚는 노하우를 하루빨리 표준화하고 전국의 양조장에 보급해서 경쟁력 있는 전통의 맛을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정부에서 관심도 지원도 없고….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전통주 문화의 재기를 모색해야 한다.


유청길 대표는 지금도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누룩을 제조하기 위한 종균이 생성되려면 적어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산성막걸리의 누룩방 종균실은 지금도 50년 이상 된 갈대를 사용하고 있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룩을 사용하던 우리의 전통 양조 방법은 흑국·황국 등의 일본식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퍼지면서 거의 사라졌다. 전통의 맥이 끊어질 위기인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조금 편하다는 이유로 전통을 버리고 있다.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도 기술이전에 대한 대가는 전혀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몹시 아쉬운 일이다.

유 대표는 상당한 학업을 쌓은 재원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일문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 가업을 이어받았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편집국장 young@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