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죽음의 앞 뒤에 듣는 음악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죽음의 앞 뒤에 듣는 음악
  • 주재근/한양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20.10.3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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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주재근/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지난 10월 25일 이건희 삼성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살아서는 삼성을 세계적 일류기업으로 키우며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린 업적을 남겼고 죽어서는 유명한 어록들을 남겼다. 

판소리 단가 중 사철가의 가사에 ‘사후에 만반진수(滿盤珍羞)는 생전의 일배주(一杯酒)만도 못 허느리라.’는 말이 있다. 죽어서 먹는 진귀하고 맛난 음식보다 살아서 먹는 한 잔의 술이 더욱 낫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고생하지 않고 죽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천수를 누리고 아무런 고통없이 자다가 죽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 마음 수양을 오래한 스님들 가운데는 본인의 죽음 시기를 알고 곡기를 끊고 조용히 영면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경외감이 든다.   

이승의 마지막 시점인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를진대 가장 안타까운 죽음은 비명횡사하는 것이다. 전혀 예기치 못한 죽음이 너무나 서러워 이승에 맺힌 한을 풀어주고자 굿판을 열어 오귀굿이나 씻김굿을 해준다. 죽은 이에게 이승에 남겨진 원통과 애한이 풀려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혈육의 정이 있는 가족에게는 그렇게라도 아쉬움을 풀어 마음의 위안을 받고자 한 것이다.

조선왕실에서 가장 큰 의식은 조선 역대 왕들의 종묘제사이다. 조선 유교사회에서 왕실의 권위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이 제사인 것이다. 종묘제례는 가장 엄숙하고 절도있는 의례절차에 따라 절제된 음악과 춤에 역대 왕들의 치적을 노래한다. 역대 왕들의 문덕(文德)을 찬양한 보태평(保太平)과 무공(武功)을 찬미한 정대업(定大業)의 음악과 노래, 춤을 종묘제례악이라 한다. 조선왕실의 제례음악은 세조 9년(1463년)부터 현재 종로3가에 위치한 종묘에서 변함없이 지금까지 연행되고 있다.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셰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종묘제례악은 1964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2001년에는 유네스코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첫 번째로 지정될 만큼 역사성과 더불어 예술성과 음악적 가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종묘제례악과 기능이 비슷한 곡으로 서양 클래식의 레퀴엠(requiem, 죽음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음악)이 있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가 남긴 레퀴엠은 위대한 곡만큼 일화도 유명하다. 모차르트 자신이 죽기 두 달 전인 10월에 레퀴엠을 작곡한 것은 본인의 죽음을 예견하고 작곡하였다고 한다. 죽기 전 병중의 모짜르트는 말하였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이 레퀴엠은 나를 위해서 쓰고 있다고....‘라고. 

찬란한 음악적 생이 한참인 35세 모차르트에게 죽음은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죽음 앞에 인간으로서의 기쁨, 절망, 분노, 희망 등을  한음씩 음표를 적어가며 본인의 아쉬운 생을 마감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자신을 위한 레퀴엠을 작곡하였다면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자기가 존경하는 이들을 위해 레퀴엠을 작곡하였다.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다 라는 이순(耳順)의 나이에 접어든 베르디에게 레퀴엠을 써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였던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선구자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와 이탈리아 대문호인 알렉산드로 만초니(Alessandro Manzoni, 1785~1873)의 서거 1주년을 위한 공연을 위해서였다.

만초니와 로시니는 슬프도록 화려한 장엄미사곡이 자신들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것은 알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만약 모차르트처럼 생전에 그 가락들을 조금이라도 들어보았다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였는지 위안을 받고 저 세계로 갔을 것이다. 

조선의 최대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펴낸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우리나라 거문고와 중국 청나라에서 넘어온 양금과, 중국의 칠현금의 음악을 『유예지(遊藝志)』 라고 하는 책에 남겨 놓았다.

서유구가 남긴 유예지 안의 음악들은 공부거리를 주어서 좋기는 한데 더욱 더 마음을 사로잡는 그의 일화가 있다. 서유구는 평소에 거문고를 즐겨 타고 들으면서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도 거문고를 연주해 달라고 하여, 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 이야기이다. 아마도 서유구는 거문고의 소리에 학을 타고 피안의 세계로가 그곳에서 또 거문고 음악을 즐겼을 것이다. 

매일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듯이 인간은 태어나 죽음에 이른다. 죽음에 이를 때, 아니 살아있는 내내 좋은 음악과 함께 한다면 그것이 지극한 선(善)이자 미(美)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