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사람도 자연이다 -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에서 본 남정호의 자연관
[이근수의 무용평론]사람도 자연이다 -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에서 본 남정호의 자연관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0.10.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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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푸른 초원을 떠올리는 초록색 바닥과 거무튀튀한 도시의 실루엣이 대조적이다. 무대 구조에서 자연과 문명, 인간의 본성과 타락, 생명과 죽음의 2분법을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바닥과 벽의 경계면에 사람들이 들어서 있다. 그들 중에 튀는 색깔의 옷을 입고 노상에서 춤추는 사람이 있다. 그는 무리 가운데 용납되지 않는다. 용서 없이 소외된 그는 사람들의 어깨에 얹혀 무대에서 사라져간다. 뒷모습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예리한 호각소리와 구령에 맞춰 무대에 남은 12명의 놀이가 시작된다. 그네들은 모두 흰 옷을 입었다. 유년시절에 경험했던 익숙한 놀이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세 명씩, 네 명씩 그룹을 이루던 12명이 5명씩 두 팀을 이룰 때 두 명은 탈락할 수밖에 없다.  그들 앞에 놓인 나뭇가지가 8개뿐임을 알았을 때 또 두 명이 탈락한다. 8명에서 5명으로, 다시 네 명으로 사람들의 숫자는 계속 줄어든다.

단순해 보이는 놀이 속에도 경쟁과 배척은 숨어 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누군가는 사라져야 한다. 사라지는 사람들의 옷은 흰 색에서 검정색으로 변한다. 흰색은 선(善)이고 검정색은 악(惡)이다. 이 색깔이 유혹을 견디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와 패자를 대비시키기도 한다. 흰 옷을 입은 세 사람 만이 무대에 남았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마지막 경쟁을 벌인다. 치열한 싸움 끝에 상처를 입은 둘이 함께 탈락한다. 이제 마지막 한 여인만이 불상처럼 댕그라니 남았다. 본성을 지켜내고 살아남은 그녀는 모두의 희망이기도 하다. 홀로 남은 그녀를 옹위하며 행진이 시작된다. 어두운 도시의 실루엣은 사라지고 바닥의 녹색은 벽까지로 연장된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10,16~18, CJ토월극장)는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보여준 남정호의 첫 안무작이다. 유희 속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본성과 문명사회의 본질을 찾아내고 이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 남정호의 의도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의도를 자연에 투영한다.

녹색바닥으로 나타나는 자연과 우중충한 도시 형상으로 표현되는 문명의 모습은 인간의 본성과 오염된 심성에 대입된다. 이는 흰 색과 검정색 의상의 단순한 대비로서 표현된다. 남정호는 이러한 상징을 통해 사람도 자연이고 자연과 인간의 문제가 동일한 것임을 암시한다.

황폐해지는 자연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연의 회복을 꿈꾸는 것은 타락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본성을 그리워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 병치(倂置)된 두 개의 개념이 숨겨진 듯 드러나고 나뉘었다가 하나가 되며 작품은 팽팽한 긴장과 편안한 이완의 시간을 함께 경험하게 한다. 아무런 설치물도 보이지 않는 이태섭의 무대는 단순하고, 흑백으로 구분되는 권자영의 의상은 편안하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윤하얀의 서정적인 음악도 2원화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요소로서 제 역할을 해준다.

안무가 남정호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네 번째 예술 감독이다. 초대 감독이었던 홍승엽은 신설 단체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민한 감독이었다. 그를 이은 안애순은 포스트모던이란 애매한 개념을 관객들에게 주입하려는 의도적 실험을 되풀이하면서 오히려 현대무용은 어렵다란 인식을 확산시켰다. 안성수는 무용=음악이란 명제에 충실하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국립현대무용단에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 감독이었다. 칼같이 정교한 안무를 통해 세련된 작품을 만드는데 열중했던 그에겐 3년이 너무 짧았다. 개성이 강한 세 명의 예술 감독을 거치면서 늘 아쉬웠던 것은 글로벌 현대무용이 아닌 한국의 현대무용에 대한 갈증이었다. 

창립 10년을 맞는 올해 남정호의 취임은 의미가 있다. 그녀는 한국의 백자를 사랑하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한국의 정서에 매혹된 무용가다. 예술은 힘이 아니라 대중에 대한 정서적 위로가 되어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정교한 안무를 계획하기보다 자연히 우러나는 몸의 민낯, 포장되지 않은 몸의 언어인 즉흥을 중시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물가의 여인’과 ‘빨래’ 등, 초기 작품에서 느꼈던 토속적 정서를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반갑다. “나의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관이 현대무용에 통섭되어 현시대를 반영하고 한국적 정서를 반영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었으면 한다.”(몸, 2020,6. 27쪽)는 그녀의 다짐에 우선 공감한다.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춤, 난해하지 않고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현대화된 K-DANCE의 본을 그가 만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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