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황운헌이 있었기에, ‘살짜기 옵서예’가 성공했다!
[윤중강의 뮤지컬레터]황운헌이 있었기에, ‘살짜기 옵서예’가 성공했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0.10.3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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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술 몇 잔에 제법 거나해져서 집에 돌아오면, 가끔 판소리와 거문고를 듣는다. 텔레비전에선 삼바의 리듬이 온 방안에 범람한다. 아침식사에는 프랑스풍의 크루아상(croissant), 점심에는 페이조아다(feijoada), 저녁은 구수한 된장찌개이다” 

황운헌은 브라질에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 “여러 형태의 이질문화가 혼재한 곳에서는 견인과 반발이라는 두 힘이 존재함으로써 새로운 통합이라는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의 절반을 디아스포라로서의 살았던 자신의 생애를 이렇게 규정한다.

견인(牽引)과 반발(反撥). 무언가에 홀린 듯이 끌려가다가도, 그것에서 애써 벗어나려는 심리! 견인은 순응(順應)이라면, 반발은 일탈(逸脫)이겠다. 황운헌의 삶이 이러할 진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다. 산조(散調)라는 한국의 전통음악이 딱 그렇다. 견인과 반발 또는 순응과 일탈이 팽팽한 기운으로 맞서면서 전개해가는 음악이 산조다. 

황운헌은 산조를 사랑했다. “잔 비우며 귀 기울이면 솔밭 사이 산조로 흩어지는 것 바람에 묻어오는 단소(短簫) 구슬픈데“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산조(散調)로 흩어지는 것”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브라질이라는 곳에서 다이스포라의 심정으로, 산조에 빠지게 된 것일까? 아니다. 이미 오래전 산조의 본질을 알았다. “신정(新正)을 장식한 두 민예전(民藝典)”이란 제목의 글에선, 민속예술단의 ‘정월놀이’와 예그린악단의 ‘흥부와 놀부’의 두 공연을 다룬다. (경향신문, 1961년 1월 5일) 

여기서 “신쾌동(申快童)씨의 현금(거문고)산조는 그 현묘(玄妙)한 맛이 마치 정신의 깊은 내부에서 음이 엄숙(嚴肅)한 유희(遊戱)를 하는 것 같았고”라고 평한다. 전통예술에서 가장 높은 경지로 생각하는 게 산조임은 짐작케 한다. 산조에 관한 많은 설명과 정의 중에서, 황운헌의 이런 시각에 가장 끌린다. 산조는 놀이(유희)지만, 정신적 놀이이며, 그 안에 ‘엄숙함’이 존재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도 그는 거문고를 곁에 둔 것 같은데, 그건 ‘신쾌동 거문고산조’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1966년, 예그린악단은 ‘살짜기 옵서예’로 재기공연을 대성공으로 이끈다. 예그린악단은 1962년에 창단되었으나, 이삼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된다. 이 악단을 다시 일으킨 들어난 주인공이 박용구라면, 그를 보필해서 실제적으로 기획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게 한 인물이 황운헌. 

1966년 10월 26일부터 닷새,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살짜기 옵서예’는 대히트를 했다. 김영수 대본, 백은선, 임영웅 연출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살짜기 옵서예의 ‘가사’는 누가 썼을까? 박용구와 황운헌.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는 ‘살짜기 옵서예’를 비롯해서, 곱씹어보면 매우 에로틱한 정서가 전해지는 ‘상투의 노래’등이 수작이다. 가사와 곡조의 합(合)이 일품으로, 최창권의 곡조와 가사는 매우 잘 어울린다. 박용구와 황운헌의 공동작품이지만, 시인으로 데뷔해서 보다 더 운율감이 있는 가사에 익숙한 황운헌의 역량을 짐작한다. 예그린은 그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친숙해졌다. KBS-TV를 통해 방영한 ‘옥녀’는 대한민국 최초의 방송뮤지컬로, 1966년 7월 20일에 첫 방송을 했으며, 몇 주에 걸쳐서 예그린의 작품이 방송을 통해서 소개되었다. ‘옥녀’는 박용구 원작, 황운헌 구성, 김희조 작곡, 임성남 안무. 

예그린은 물론이요, 예그린과 관련된 많은 사람이 종종 회자된다. 한국의 공연문화에 큰 역할을 한 분들이다. 그러나 유독 황운헌에 대한 언급은 적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거의 잊힌 인물이다. 시인으로 등단해서, 연극평론과 영화평론을 했다. 한국영화 ‘용가리’(1966)의 대본 작업도 참여를 했고, 프랑스영화 ‘남과 여’(1966)가 한국에서 처음 상영(1968)했을 때, 변역을 한 사람도 황운헌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가장 큰 행사라 할 5.16 대예술축전을 기획, 구성한 사람도 그였다. (1967. 5. 16 ~ 17. 장충체육관) 이건 정부행사와 무관할 수 없는 예그린악단의 ‘기획부장’을 맡은 그로선, 숙명적 공연 과제가 아닌가 싶다.  

황운헌은 그의 이름처럼 구름(雲)을 처마(軒)를 삼아서 산 사람과 같다. 디아스포라의 노마드 기질을 속에서, 한국의 산조를 깊숙이 느끼고, 한국의 뮤지컬을 비롯해서 공연예술을 위해 애를 쓴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다. 좀 더 파고들어야 하지만, 황운헌은 ‘대한민국 뮤지컬 기획자 1호’로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다. 1931년 11월 18에 태어나서, 2002년 5월 5일 상파울루에서 타계한 황운헌.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계가 이 사람에 대해서 더 깊이 애정하고 연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