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 배상복 최현춤보존회장 “예술적 신념과 소신 담은 작품, ‘한국 춤’ 역사에 남기고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 배상복 최현춤보존회장 “예술적 신념과 소신 담은 작품, ‘한국 춤’ 역사에 남기고파”
  • 인터뷰ㆍ정리/진보연 기자
  • 승인 2020.11.0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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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석하 최현 선생 가르침 이어 ‘최현춤보존회’ 2007년 발족
다양한 삶의 에피소드 춤으로 담고파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하염없이 내리는/첫눈/이어지는 이승에/누군가 다녀갔듯이/비스듬히 고개 떨군/개잡초들과 다른/선비 하나 저만치/가던 길 멈추고/자꾸자꾸 되돌아보시는가”

스스로를 ‘아름다움을 훔치는 사람’, ‘사시장철 춤 보러 다니는 사람’이라 칭했던 시인이자 음악ㆍ무용평론가 故김영태가 2005년 일흔의 나이에 펴낸 시집 <누군가 다녀갔듯이>의 표제시다. 그는 이 시를 생전에 백아와 종자기처럼 지내다 먼저 떠난 벗 최현을 그리며 지었다.

‘멋의 예인’, ‘무용계의 선비’,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자’로 칭송되던 예인(藝人) 최현 선생은 조택원, 송범을 잇는 신무용의 대가로서 남성춤의 정체성을 지켜 낸 무용가로, 2002년 타계하기 전까지 무용극, 창극, 마당극, 뮤지컬, 무용소품 등 1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안무하였다. 그는 우리의 전통적 소재 속에서 섬세한 여성미와 품격, 동양적 남성세계를 재현하려 했으며, ‘동양문인화의 정신세계’라는 낭만적 춤세계관이 특징이다. 

▲배상복의 태평무(강산영류)(사진=연낙재)
▲배상복의 태평무(강산영류)(사진=연낙재)

배상복 회장은 우리 춤의 거장 故석하 최현 선생에게 철저하고 엄격한 도제식교육을 받으며 춤을 배웠다. 25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춤에 입문했지만, 치열한 노력과 재능으로 1989년 서울시립무용단에 입단, 프로무용수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시립무용단 시절 첫 단원평가에서 부수석 단원이 됐으며, 이후 수석단원을 거쳐 53명의 단원을 지도하고 훈련시키는 지도단원에 올라 무용수와 지도자로서 커리어를 탄탄히 쌓았다.

이후 그는 2010년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상임안무자로 위촉됐으며 지도자 겸 예술작품을 창출해내는 안무자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로컬리즘을 기치로 내걸고 지역적 콘텐츠를 발굴해 수준급 공연을 선보였다. 이로써 제주도민들에게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동시에 춤문화의 불모지인 제주에 춤에 대한 인식과 수준을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무용단의 결속을 이끌어내 안정궤도에 정착시키면서 단체 본연의 임무인 좋은 춤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지도자로서 역량도 인정받으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이에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월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무용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전승’과 ‘창조’라는 두 개 줄기를 예술적 화두로 삼고 예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첫째는 2007년 ‘최현춤보존회’를 발족해 낭만적이고도 풍류정신이 깃든 신무용 전통을 이어가는 스승 최현 선생의 춤을 올곧게 보존하고 계승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며, 둘째는 2010년 창단한 창작춤 단체 ‘BnS Chum Company’를 통해 시대정신을 담은 현대적 창작 작품을 선보여 창작무용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비전이다.

“춤추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거울처럼 투명해야 하며, 그 거울은 곧 춤추는 사람의 인격이고 자세다”라고 말했던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무용가의 삶을 살며, 나아가 지도자로서 제자들에게 춤의 본질과 원리, 예술가로서의 소양을 함께 전하고 있는 배상복 회장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한국 춤의 중심을 지키는 길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최현 춤 보존회 배상복 회장
▲최현 춤 보존회 배상복 회장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최우수상(무용)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상을 받은 소회가 궁금하다.
너무 뜻밖의 일이었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무용부문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휴대폰 너머로 전해 들으면서 몹시 놀라웠고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수상과는 거리가 먼 무용가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조직 속에서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제도에 맞춰나가는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 구도를 갖는 자체를 몹시 불편하게 생각해왔기에, 이번 수상은 나에게 더욱 값지고 귀하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감동이 밀려온다. 이런 영광의 상을 주신 서울문화투데이 대표님과 관계자 모든 분들에게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

올 초 등장한 코로나19로 인해 지금까지 많은 예술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수상 이후 어떤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는가?
코로나의 여파는 그 누구도 피해가지 못했고, 내 경우도 다르지 않다. ‘우리 춤 문화유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던 해외공연의 일정이 계속 미뤄지다가 결국 취소됐다. 
지난 7월 25일에는 역대 예술 감독들이 참여하는 제주도립무용단의 30주년 기념 공연 <명불허전>에서 단원들이 공연한 ‘용연의 밤’ 안무를 했고, 개인작품 ‘신명’도 선보였다. 이 공연 역시 3월 말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코로나 확산으로 기약 없이 연기 되다가, 다행히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되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요즘엔 대학에서 다양한 우리의 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1월 수상 당시 ‘무용가라는 이름에 걸맞는 삶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며 소신과 원칙을 담은 작품을 만들겠다‘라고 밝힌 바 있는데, 자신만의 소신과 원칙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예술을 하는 무용가의 삶이 유독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각계각층에서 인생을 멋지게 살아내는 훌륭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만,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사회적 시선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예술가는 그렇게 요구되는 덕목과 시선을 깊이 사유하고 성찰하며,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란 정의롭지 않은 모든 일에 거리를 두고 타인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주어진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 예술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춤은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매순간 진정성을 다해 임하고 연구하며 나만의 예술에 매진하고자 한다. 그 시간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25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춤에 입문했지만, 치열한 노력과 재능으로 무용수와 지도자로서 커리어를 탄탄히 쌓았다. 무용수로서 직접 춤사위를 선보이는 것과 지도자가 되어 제자들을 통해 안무를 구현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1989년부터 2005년까지 오랜 시간을 프로 무용수로서 국내외 무대를 오가며 경험을 쌓았다.  아울러 가르치는 기회도 주어져 지금껏 지도자와 무용수의 역할을 모두 소화하고 있다. 
무용수로서 춤사위를 구현할 때는 스승 혹은 안무자의 철학을 이해하고, 요구되는 테크닉과 감정을 받아들이려 했다. 거기에 나의 해석을 곁들여 혹독한 훈련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연습과정에서 잘못된 해석을 찾아내고 지적도 받으면서 춤에 대한 내면세계와 감정표현으로 침잠해 들어가려 노력했다.
춤을 가르치고 안무하는 지도자가 되어서는, 무용수로서 춤사위를 구현할 때보다 몇 배의 고민과 생각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요즘 춤을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춤추는 환경이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무엇보다 외적형식에 매료되어 춤을 쉽게 접하고 있는 듯 느끼게 된다. 춤의 깊은 뜻과 속성을 깨달으려 고민하는 것 보다는 쉽고 즐겁고 멋진 것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곤 한다.
그래도 그들에게 춤의 본질과 원리를 강조하며 지도자로서 양심과 의무, 책임을 다하려 한다. 더불어 예술가로서의 소양도 함께 전한다. 춤 실력의 향상과 발전을 위해 타 분야에 대한 관심과 인문학적 소양도 쌓으며 삶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다. 춤의 세계가 넓어지는 만큼, 제대로 된 춤사위가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예술 활동의 두 줄기 화두 가운데 ‘전승’은 최현 선생의 무용 세계를 이어 올곧게 보존하고 계승하는 작업이 중심이 되고 있다. 외적인 것보다 춤의 본질에 충실하라는 스승의 말씀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가?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자’, ‘멋의 예인’ 나의 스승 최현선생님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춤에 입문하면서 선생님을 향한 첫 발을 내디뎠고, 자연스레 내 몸에 체득된 모든 춤의 기저에는 선생님의 예술적 사상과 색채가 짙게 자리 잡고 있다. 무용가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철저하고 혹독한 도제식 춤 교육 덕분이다.
선생님을 뵙게 된 첫날의 그 감동을 평생 잊지 못 할 것이다. 2장단의 춤가락에 나는 넋이 나갔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선생님의 몇 가락의 춤은 가장 한국적인 한(恨)의 덩어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춤은 내 삶의 전부가 됐다. 

▲신명(최현)-배상복(사진=연낙재)
▲신명(최현)-배상복(사진=연낙재)

선생님은 ‘하나를 알면 둘, 셋은 저절로 알게 될 것인데 그 하나를 가벼이 넘겨선 안 된다’라고 말씀하시며, 그 하나를 깨닫게 하시려고 혼신을 다하셨다. 그 하나가 해결되지 않으면, 절대 둘로 넘어가시질 않으신 분이셨다. 함께 배우던 젊은 사람들은 그 배움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연구실 밖으로 떠나갔다. 그러나 나는 이 가르침이 너무 좋았다. 하나씩 깨우쳐가는 과정, 춤에 빠져드는 순간들이 황홀했다.
2007년 발족된 ‘최현 춤 보존회’는 선생님께서 생전에 만드신 주옥같은 명작들이 변질되지 않고, 후대까지 잘 전승될 수 있도록 보존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매년 추모공연과 학교 강의, 강습회 등을 갖는다. 
선생님 가까이에서 늘 함께했던 나의 머릿속에는 가르쳐주신 춤의 동작, 전해주신 주옥같은 말씀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아직도 든든한 버팀목으로 곁에 계시는 것만 같다.
평소에 춤을 가르치고 춤을 만들 때도 선생님의 예술적 사상과 철학을 떠올린다. 선생님께서 가셨던 그 길을 가기 위해 고뇌하며 실천하려 애쓰고 있다.

또다른 줄기인 ‘창조’의 결실은 창작춤 단체 BnS Chum Company를 통해 맺고 있다. ‘전승’과 ‘창조’는 두 줄기로 나뉘지만, 무용가 배상복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 새롭게 창작하는 작품들에도 최현 선생의 예술 정신이 담겨있는지?
무용가라면 전통 과 창작 두 줄기 모두 간과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춤의 본질과 원리를 바탕에 두고 하는 작업이기에 그렇다.
앞서 언급된 ‘최현 춤 보존회’의 작업은 그 공연을 통해 선생님을 추억하고 선생님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또한 전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창작 춤 단체인 ‘BnS Chum Company’는 한국 춤만이 갖는 고고한 정신과 자존심을 바탕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에 초점을 맞춘다. 고전 창작에서 현대 춤 까지 모두 아우르며, 독창적 작품 세계를 펼치고자 만들어진 단체다.
두 단체의 작업을 주도하는 저로서는 매번 다름을 느끼면서 어느 부분 비슷한 맥락을 찾기도 한다. 다만 창작 작업의 경우 시대성을 담고 춤의 다양성을 꾀하며, 대중성과 예술성까지 담으려다 보니 춤의 언어가 다르고 테크닉과 몸놀림이 다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작품에 나타난 성향을 보면 드라마틱한 구조, 문학적 감수성,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무대 미학 등은 선생님의 예술세계와 그 지향점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국 저에게 생성되어 나오는 예술적 자산은 본디 내안의 것과 선생님의 예술세계가 축적되어 나오는 결합체가 아닐까 싶다.

▲배상복의 살풀이춤
▲배상복의 살풀이춤

지난 2010년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상임안무가로 활동할 당시부터 로컬리즘이라는 기치(旗幟)를 내걸고 지역 콘텐츠를 발굴해 수준급 공연을 선보여왔다. 이전보다는 많이 다양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문화는 수도권 편중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문화예술이 중앙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중앙에 편중된 문화현상을 타개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되고 제시되고 있지만, 나는 ‘행정의 뒷받침’, ‘예술 감독의 능력과 역량’, ‘단원의 적극적 참여와 기량’ 이 삼박자가 기본적으로 갖춰진 다음에 논의될 일이라고 본다. 이러한 전제하에 최우선 과제는, 예술 감독의 역할이다. 단체마다 추구하고 정립해 놓은 예술적 이념과 좌표, 방향성이 있지 않은가. 그 지점과 일치하는 예술 감독을 찾아야만 한다.
무용가들도 각자의 개성과 색깔이 다르고 예술적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단체는 선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다음으로 그 예술 감독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또 부여받은 예술 감독은 지역 콘텐츠를 발굴하고, 개발하여 지역의 대표 브랜드를 제작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만 하겠다. 그렇게 개발된 작품이 중앙에서 펼쳐지는 어떤 공연보다 질적인 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이 검증되면 자연스레 차별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행정은 만들어진 작품을 적극적인 방법을 동원, 여론 홍보와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알려야 한다. 
이렇듯이 한 지역의 문화를 책임지고 관장하는 단체에서 고유의 브랜드 작품을 생산해 내는 예술 감독의 능력이 십분 발휘된다면, 역으로 그 작품을 관람하기 위하여 각지의 춤 관객들이 지방을 찾는 새로운 문화현상, 새로운 패러다임이 일어나리라 기대해본다.

전통 춤을 계승해나가는 예술가로서 지키고 싶은 한국 춤의 정체성과,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지향점이 있다면?
한국 춤은 스스로 느끼고 터득해야 하는 ‘깨달음의 춤’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수많은 특성들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정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춤의 본질과 원리를 알기 위해선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몸짓으로 표현하는 무용가는 한국 춤의 오묘한 섭리를 스스로 인지해야만 한다. 
한국 춤의 독특함과 우수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우리의 미적 질감과 세련미를 덧입혀 선보인다면 세계 시장에서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춤을 추는 한국 무용가로서, 한국의 색채가 짙게 배인 작품을 보다 많은 세계인들에게 선보일 날을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다. 한국 춤의 세계화 작업에 기인하게 될 그날을 꿈꾸고 있다. 

▲배상복 회장이 지난 1월, 본지(서울문화투데이) 제11회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배상복 회장이 지난 1월, 본지(서울문화투데이) 제11회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앞으로 춤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동안 해왔던 나의 작품들을 들여다보니,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결말을 내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요즘 우리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힘들고 지친 삶 속에 ‘예술의 역할이 무엇일까’,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할까’를 더욱 고민을 하다 보니,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진다. 예술은 감동이라고 늘 생각한다. 힘들고 지친 삶에는 위로와 평화를, 마음에는 안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어떤 예술작품은 살아가는 기폭제가 되어준다. 
무대는 실제 삶의 모습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시대성을 담아내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고 환기시키는 힘을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앞으로도 기존 작업의 연속선으로 우리의 고전을 레페토리화 하는 동시에, 살아가면서 느끼고 경험하게 될 다양한 삶의 에피소드들을 춤으로 담아내고 싶다. 소재를 고도로 단순화하고 절제의 미, 여백의 미를 무대로 옮겨 가장 한국적인 미를 보이고 싶다. 아울러, 이런 나의 예술적 소신과 신념이 담긴 최고의 명작이 탄생해, 한국 춤 역사에 길이길이 남길 바란다. 예술가로서의 꿈이며, 그 날을 기대한다. 내가 예술가로서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