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 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정책연구과 학예연구사 “큐레이터는 다른 분야 이해하고, 융화 시도해야”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 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정책연구과 학예연구사 “큐레이터는 다른 분야 이해하고, 융화 시도해야”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11.02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아방가르드 예술가 개별 연구, 30~40대 작가 학술적 조명 필요
작가 아카이빙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축돼야
1960~70년대 작가 작품에 개념적인 미디어 속성 있어, 한국 미디어아트 시작 1960~70년대로 앞당겨 져야
현장과 이론 괴리감 심해...현장 경험 중요, 직접 경험해야

[서울문화투데이 김지현 기자] 그로피우스가 설립해, 그의 정신이 깃든 ‘바우하우스(Bauhaus)’는 건축ㆍ공예ㆍ디자인 등을 가르치는 종합예술학교다. 그는 초대 교장이자 ‘바우하우스 운동’의 창시자로 학교에 건축가  외에 추상화가ㆍ패션디자이너ㆍ행위예술가ㆍ사진작가 등 각기 다른 예술 분야의 교수를 초빙해 '예술을 통한 교육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동안에 없던 예술교육방식을 만들었다. 건축을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 등 모든 조형 분야를 통합시켜, 특정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움을 추종했다. 이렇듯 예술을 총체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지난 1월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한 이은주 학예사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상업갤러리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미디어아트를 중심에 두는 전시를 기획해 전시장에 구현해 온 이은주 학예사. 이 학예사는 그로피우스의 관점을 본인의 기획의 중심테제로 추구하는 듯 하다. 그는 예술을 총체적ㆍ다원적인 관점에서 살펴왔다. 지난해 이 학예사가 아트디렉터로 기획한 ‘타임리얼리티'는 미디어아트 작품을 중심에 두고 한국의 역사적 내용을 무용‧연극‧퍼포먼스‧미디어작업 등 협업으로 풀어낸 전시다. 미디어를 기술 현상ㆍ놀이 등으로만 보는 기존 경향에서 벗어나, 미디어를 특정 내용이 있는 예술로 풀어내기를 시도했다. 미디어아트 고유의 매체 특징을 활용한다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 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이 학예사는 그동안 미술 분야의 전시기획과 비평 등을 통해 현장과 이론을 겸비해 왔다. 시대적 흐름을 감지하며 예술계의 다양한 작가들과 호흡하는 전시를 만들었다. 미디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대안 공간 ‘아트스페이스 와트’의 운영 및 전시기획 총괄 대표로 젊은 미디어 작가군의 예술세계를 정리해 논문ㆍ학술발표 등으로 조명해왔다. 지난해 발표한 박사 논문에서는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일어나는 미디어아트의 기술적인 현상이나 작가들의 기술을 기반한 개념작업, 작가의 메시지에 접목해 만들어낸 전시 등을 담았다. 논문을 통해 한국 미디어아트의 시작을 1980년대 이후와 90년대 초반이 아닌 6, 70년대로, 좀 더 앞당기자는 주장을 펼쳤다.

최근 그는 국립현대박물관 미술정책연구과로 자리를 옮겼다. 국가 기금을 받아 단발적인 형태로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장기적 연구를 위해서다. 자리를 옮겨온 지 3개월 차, 아직은 분위기 파악과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를 만나, 그동안 그가 주목해온 한국 미디어아트의 분야 연구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들어봤다. (참고로 인터뷰는 지난 10월 초순에 이뤄졌다.) 

▲지난 10월, 본지와의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은주 학예사
▲지난 10월, 본지와의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은주 학예사

올해 초 본지의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미술(전시기획)’을 받았는데, 시간이 꽤 흘렀다. 수상 당시의 소회를 듣고 싶다
<서울문화투데이>를 봐왔던 독자의 입장에서 기존에 이 상은 아티스트 위주의 상이라고 생각했었다. 작가가 아닌 기획자에게 ‘젊은예술가상’이 수여된 것에 의미가 있다. 전시에는 작가의 작품이 보이고, 기획자는 뒤에 있는 역할이었는데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돋보이게 해 예술가의 역할처럼 중요한 위치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감사하다. 보상받는 느낌ㆍ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대안공간을 통해 많은 전시와 성과를 내는 한편 연구도 활발히 했었다
대안공간이라는 현장에서 작가들과 부딪치며 생산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 작업들을 기반으로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로 다시 돌아갔을 때, 현장과 이론의 괴리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 담론 및 이론화 과정으로 미술사나 작가론이 형성되는데 현실은 다르더라.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때 현장 경험이 최대치인 상태여서, 이걸 연구에 직결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내가 기획했던 전시의 작가를 주제로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해외에서는 30~40대 작가들도 학술적인 조명이 이뤄지는데, 한국은 그 작가들을 젊은 작가들로 분류해 ‘작품의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맥락으로 본다. 그때그때 포인트를 잡는 이론이 필요한데 국내는 이 부분이 빈약하다. 시간이 지나면 젊은 작가도 한 번씩은 작품 세계를 조망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 작가가 원로 작가가 되면 더 풍성한 논의가 가능하다.

석사 논문은 당시 한국에서 정리되지 않았던 ‘미디어아트사’나 ‘미디어아트’ 이론 등 뉴미디어 아트를 다뤘다. 지난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그 논문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석사 논문에서 가상현실에 관한 논문을 써, 뉴미디어아트와 최첨단 기술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면 박사 논문에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미디어아트의 기술적인 현상이나 작가들이 기술을 가지고 만든 개념과 메시지를 접목해 만들어낸 작품과 전시 등을 담았다. 2016년부터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원로작가 디지털 자료집구축사업에 참여하면서 1960~70년대 아방가르드 작가들을 연구했다. 김구림 선생님부터 시작했는데, 현재성이 있다 보니 옛날 문헌을 보기보다 내가 생산하는 것이 중요했다. 많은 자료를 보며 미디어아트 장르가 나오기 전이지만, 미디어아트의 형식적인 예술 작품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1960~70년대에 더 매력을 느꼈다. 미디어아트 작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연구지만, 일련의 연구에서 1960~70년대 실험주의 작가들은 현시대 미술과 연결된 지점을 확인했다. 박사 논문에서의 미디어아트의 범위는 내가 현장에서 전시하고 연구할 때 주로 만났던 1980년대 이후 작업이다. 컴퓨터가 나오고 PC가 개인화되는 시기 예술가들이 미디어 도구를 작업으로 사용하게 된 후의 것을 ‘미디어아트’라고 칭한다. 기술이 나오기 이전의 예술 형식, 즉 개념적인 미디어 속성이 1960~70년대 작가들의 작품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한국의 미디어아트를 1980년대 이후~90년대 초반이 아닌 1960~70년대로 좀 더 앞당겨 재역사ㆍ재정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한국 미디어아트 1960~70년으로 한정해 논문을 마무리했다. 1960년대 작가들이 퍼포먼스ㆍ영상 작업도 하고 설치 미술작업을 많이 했다. 논문을 준비하며 신문 자료를 많이 봤고, 김구림 선생님 등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어 인터뷰 자료를 많이 넣었다. 강국진 선생님을 연구하며 논문 3편을 썼는데 그동안 찾았던 자료나 작가 분의 동료와 지인의 인터뷰 등 자료가 많아 큰 도움이 됐다.

1960년~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 작가 김구림ㆍ박현기ㆍ김영진ㆍ강국진 등이 일부 조명되고는 있지만,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해당 작가군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저력 혹은 특징을 설명해 준다면
흥미를 갖고 연구한 부분은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이 동시대 미술 경향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1950년대 추상미술의 논의가 이뤄지던 시기가 한국 현대 미술의 시작이라고 본다. 평면추상 이외에 탈 평면ㆍ퍼포먼스ㆍ행위ㆍ해프닝ㆍ설치미술 등의 예술의 표현방식이 있었지만, 당시는 ‘퍼포먼스’라는 용어가 없었고 ‘해프닝’이라고 쓰였다. 현대는 퍼포먼스아트로 통합돼 복합적이고 다원화됐지만 이 현상은 현재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1960년대 후반부터 진행돼 왔다. 이런 부분이 한국 현대 미술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외에서 아시아 미술을 조명하며 실험미술을 흥미로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는 설치미술을 실험적인 예술로 보지만 프랑스 파리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여서 한국 작가의 작업이 특별하지 않았다. 당시 전 세계 작가들이 오브제 설치미술을 했기에 그렇다. 한국에서는 중요한 시도로 연구가 되는데, 한국‧아시아뿐만 아니라 해외와 만날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현기 선생님의 작업은 한국에서 가져온 돌이나 불교 등 아시아의 정서가 반영돼, 해외에서 기억된다. 한국 아방가르드 예술이 아시아에서도 주목돼온 이유에는 서구 이론의 답습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국의 정서가 반영된 자생적인 활동이 작가 개개인의 특징으로 발현된 것으로 작가 개별 연구가 필요하다.

▲지난해, 이은주 학예사가 기획한 '타임리얼리티: 단절, 흔적, 망각' 展
▲지난해, 이은주 학예사가 기획한 '타임리얼리티: 단절, 흔적, 망각' 展

작가 자료집 구축 및 미술 아카이빙 사업에 참여 했다. 해외사례 등과 비교했을 때 앞으로 어떻게 방식으로 진행돼야 할까
아카이브의 중요성은 과거부터 있어온 이야기다. 해당 사업은 2015년에 시작됐다. 처음 사업 시작 때는 작가의 작업과 아카이브가 결합해 카탈로그레조네로 만드는 사업으로 진행됐다. 한 작가를 지정했을 때 국가적 차원에서 계속 지원하는 사업으로 예경에서 8개월 혹은 1년 단위로 진행했다. 지금은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작가의 해외 프로모션용 영상과 e-book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실제적인 아카이브 사업은 대중에게 공개해서 열람할 수 있는 자료여야 하는데 시스템 구축은 아직 미비하다.  한국에서 몇 년도에 어떤 전시가 있었는지 찾고 싶을 때, 검색해서 바로 찾을 수 있거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이 더욱 공고히 구축돼 공적으로 연구하거나 누구나 쉽게 열람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현재는 기관들보다 작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자료가 더 많다.

판화와 사진 매체를 다루는 (사)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에서 일을 했고, 대학원에서 판화사를 가르치는 강의도 했었다. 현대미술에서 ‘판화’의 의미는
‘판화’는 내가 연구해왔던 분야와는 동떨어져 보일 수는 있지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나의 시대성이나 시간성에 빠져 지식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지금껏 해온 매체적 관점에서 다시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하나를 바라보는 일을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판화’를 연구했다. 지금은 뉴미디어ㆍ모바일 등의 논의가 빈번하지만 내가 연구를 시작할 때에는 그렇지 못했다. ‘전통 기법과 관련된 판화를 그 시대성에 가서 보는 것보다, 최신 기술 선상에서 과거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판화는 오래된 기술이고 테크놀로지라고 생각하니 관점이 바뀌었다. 나뿐만 아니라 실제로 동시대 작가들이 판화과를 나와도 LED-Light-Art나 영상ㆍ설치 작업을 해왔다. 1990년대 중반 ‘내일의 판화展’이 있는데, 그 전시를 봤을 때 ‘디지털시대 판화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젊은 작가들은 전통기법 외에 본인이 잘 쓰는 컴퓨터 기법을 사용한다. 미디어아트가 동시대적이고 자연스럽게 시작한 것처럼, 판화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기법이라는 정의에 판화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것, 작가들이 실제로 하는 작업에 맞는 용어를 만들어 글을 쓰고 전시를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판화는 오리지널‧에디션이 많고 누구나 가질 수 있으니 저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 값싼 예술로 정의돼 왔다. 작가가 작업을 계속 하려면 작품이 팔려 순환돼야 하는데, 판화는 대중성‧보급성 부분에서는 시장 논리에 부합했지만 뒤로 갈수록 그런 부분에서 실패한 장르다. 그래서 판화도 설치 경향이 강해지고, 미디어나 기술을 쓰는 작가가 늘고 있다.

1세대 독립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을 롤 모델로 삼으며 활동해 온 것으로 안다. 그동안 기획해 온 전시는 어떤 가치관ㆍ방식ㆍ방향 등이 반영됐나
스스로 독립큐레이터라고 칭한 적은 없다. ‘독립’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독립 큐레이팅’은 기관에 안 속해있다는 개념보다 다양한 국가‧예산 등을 혼자 구축하는 것으로 굉장한 내공이 필요하고, 경험이 많아야 한다. 나는 독립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을 정도로 부담되고 아직 내공도 안 된다. 전시 기획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가와의 관계다. 예산을 받아 전시 컨셉을 잡을 때는 나 혼자 새로운 걸 기획하는 것이 아닌, 작가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제안하기 전에 내가 먼저 생각하고 구성해 예산을 받고, 작가를 컨텍하는 방식을 한 번도 어긴 적은 없다. 좋고 나쁨이나 그 규모를 따지지 않고 예산서를 만들고 예산을 받다 보니 다양한 곳의 영향을 받지만, ‘내가 먼저 제안해야 전시가 시작되는 것’, 이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그 방식만은 지켜왔다. 공모전과 같이 다 짜놓은 판에서 기획을 해본 적은 없다. 편한 일은 재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1세대 독립큐레이터를 선망했다. 학부 시절부터 큐레이터가 되려면 A부터 Z까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은주 학예사가 지난해 기획한 '타임리얼리티: 단절, 흔적, 망각' 展 전시장의 내부
▲이은주 학예사가 지난해 기획한 '타임리얼리티: 단절, 흔적, 망각' 展 전시장의 내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작년에 기획한 전시가 문화예술위원회 기금 제도 안에서 최고 금액을 받아 진행했는데, 기금을 받아 하는 전시가 더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장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금을 받는 구조가 맞지 않다고 여겨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마침 국현도 사람을 뽑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해온 일들을 장기적으로 해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지속성 있는 프로젝트를 추구해왔다. 그래야지만 작가들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이론가들도 새로운 연구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현은 한국에서 오래된 기관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할 있겠다는 생각에서 지원해 오게 됐다.

미술관 내에서 자신의 역할과 이루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아직 3개월 차라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다. 어떤 역할을 할지는 고민하고 있다. 미술정책연구과에 속해있는데, 직무계획서 상에는 연구‧전시‧출판으로, 전시를 둘러싸거나 연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현상을 통합적으로 선 순환되는 일을 돕는 업무다. 작년 내가 기획한 '타임리얼리티: 단절, 흔적, 망각'展과 같이 무용‧연극‧퍼포먼스‧미디어작업 등의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소통하는 형태의 전시가 많아졌다. 각각의 분야가 전시 안에서도 같이 연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막연하지만 미술정책연구과에서 이 부분을 꼭 이룰 수 있길 바란다.

▲이은주 학예사
▲이은주 학예사

지난해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에서 열린 '타임리얼리티' 展을 열었다
타임리얼리티展의 기획안은 2016년에 쓴 것이다. 전시를 통해 미디어 작가들과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며 기획했다. 전시참여 작가들은 10년 넘게 본 작가들도 있고, 작가 개인전을 내가 기획한 작가도 있었다. 앞으로 이 작가들이랑 어떤 이야기기를 할 수 있을까 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국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소재를 담았다. 현재 미디어가 기술 현상으로만 집중되고 놀이나 체험으로 집중되고 있는데, 미디어를 예술적 도구로 활용해 ‘한국의 역사’를 소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디어를 기술현상이나 재미로 보는 것이 아닌 순수미술(파인아트)을 할 수 있는 도구로 보이도록 하는 전시를 기획하고자 작가와 스터디도 했다. 연대기적 역사를 다루는 전시를 기획했지만, 작가도 고유의 메시지가 있다 보니 시대와 사건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디어 작품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기술만 보이는 게 아니라 작품 안에 스토리도 있고, 역사에 관한 내용도 반영시킨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앞으로 작가가 해외에 나가더라도 기획 그대로 전시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미디어 쪽은 다원ㆍ학제 간 연구나 융합연구는 많은데 협업은 겉핥기로 끝나거나 형식적인 만남인 경우가 많았다. 전시에서는 그간의 느꼈던 문제의식을 실질적으로 적용하고자 무용과 연극까지 결합하게 됐다. ‘미디어아트’를 연구하며 느꼈던 기술 현상으로만 비춰지는 부분, 형식적으로 만나는 협업 등 문제를 다시 뒤집어 실제로 구현한 것이다. 이 전시가 마지막 전시여도 괜찮다는 마인드로 고생도 많이 했고, 사전연구부터 전시까지 3년 이나 걸릴 정도로 준비 기간도 길었다.

큐레이터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학생들이 잘하는 스펙 쌓기 말고, 자기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자양분이 되었던 것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것들이다. 책으로도 다양한 지식을 얻지만 내가 직접 보고 만나서 들어보고, 작가들이나 미술관계자를 인터뷰할 수 없다면 많은 전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장에 직접 가서 전시를 보고 느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는 크다. 전시 동선을 배우고 싶다면 하루는 동선만 보고 다니고, 어떤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그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에 전부를 깨달을 수는 없었지만, 지식을 필요로 할 때 전시장에서 그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알게 되는 지식 안에서 실천적 경험을 바로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살려 전시를 보면 같은 전시도 다르게 보인다. 지금 기억해 보면 2000년대 초반에 좋은 전시가 많았다. 그 자체가 내 배움터 였다. 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전에는 최대한 많은 전시를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앞으로 전시를 준비하거나 지향하는 방향이 있나
각각의 다른 영역을 누군가에게 인식시키는 역할을 지향해 왔다. 한국‧아시아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시대를 반영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 왔다. 이것은 지난해 열린 타임리얼리티展의 마지막 섹션과도 연계된 부분이다. 전시의 특정 코멘트를 붙여야 해서 ‘아시아의 미래’라고 했지만 사실 한국‧아시아뿐 아니라 나 외에 다른 사람, 다른 곳,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것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이다. 어려운 문제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구체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