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명불허전, 채향순의 승무와 살풀이춤, 그리고 춤세계
[발행인 칼럼]명불허전, 채향순의 승무와 살풀이춤, 그리고 춤세계
  • 이은영 발행인
  • 승인 2020.11.09 0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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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재단 우락(友樂) 가무악 명인 초대, ‘채향순 계승의 맥’에서 드러내
이매방류 승무와 살풀이춤의 진면목 보여
제자들의 공연도 탄탄한 구성과 기량 출중
채향순 이매방류 승무의 한 장면(사진=문화유산채널 캡쳐)
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류 승무를 재현하는 채향순의 승무의 한 장면(사진=문화유산채널 캡쳐)

“명불허전, 채향순춤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1일 한국문화재재단의 코우스(KOUS)에서 열린 채향순 무용단의 ‘가무악 일체- 계승의 맥(脈)’ 무대의 사회를 맡은 유희성 서울예술단 이사장의 감상평처럼, 이날 공연은 한마디로, ‘채향순춤’의 진수를 보여준 ‘춤의 향연’이었다.

채향순의 춤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무대를 꾸민 채향순무용단의 공연도 흠잡을 데 없는 탄탄한 편성과 구성, 기량의 출중함을 볼 수 있었다. 채향순의 제자들의 원숙한 춤사위와 예술적 표현력은 최상급이었다. 그 스승의 그 제자라 할 만했다. 춤과 음악, 의상까지도 균일하게 품격이 넘쳤다.

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류 승무를 재현하는 채향순의 승무의 한 장면(사진=문화유산채널 캡쳐)

채향순이 첫 무대를 연 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류 승무는 부드럽지만 절도있는 춤사위가 잘 표현됐다. 하얀 고깔을 쓰고 분홍저고리에 남색치마와 흰색 장삼과 붉은 가사, 흰색의 한삼자락을 뿌렸다, 여몄다, 걸쳤다, 모아서 펼치는 춤사위는, 정중동의 에너지가 고루 작용했다. 언뜻언뜻 치마 아래로 드러나는 섬세하면서도 묵직한 디딤새 또한 기교가 빼어났다.

염불타령, 도드리타령, 늦은 허튼타령, 자즌 허튼타령, 굿거리, 구정놀이, 휘모리 장단으로 치달으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북장단은 가락가락이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마침내 북장단과 몰아일체의 경지에까지 다다른다.궁편과 각을 자유자재로 어르는 박진감 넘치는 노련한 법고장단은 객석의 추임새도 절로 솟게했다.

고 정병호 선생은 생전에 승무에 대해 다음과 글을 남겼다. “조지훈의 시(승무)에서 우리는 승무에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고뇌는 고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득히 안고 앞날을 기원하며 한의 비탈을 넘어서 장삼이 가지는 비상하는 기개로써 자유와 영원을 기원하는 춤임을 깨닫게 된다. 외형미로 볼때는 곡선미가 돋보이면서도 그에 곁들여 우아미(優雅美) 중에서도 애상미(哀傷美)에 속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정 선생의 표현처럼 채향순의 승무는 내면의 자유와 영원을 기원하며, 외형의 애상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무대였다.

무형문화재 제97호 이매방류 살풀이춤을 재현하고 있는 채향순의 무대.(사진=문화유산채널 캡쳐)
무형문화재 제97호 이매방류 살풀이춤을 재현하고 있는 채향순의 무대.(사진=문화유산채널 캡쳐)

채향순의 두 개의 독무 중 마지막 무대인 살풀이춤은 느린 살풀이 장단에 맞춰 어둠속에서부터 시작된다. 분홍저고리에 남색치마, 붉은색 쾌자와 앞자락에 사각의 금박문양이 박힌 분홍색 무동복에 가운데 붉은 솔이 달린 검정색 아얌을 쓴 모습은 다른 살풀이춤 의상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기방을 중심으로 전래된 것으로 색깔이 들어간 의상을 입는 것은, 섬세한 동작에 교태미를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채향순은 원혼을 위무하는 춤사위로 무대를 돌며 수건을 맺었다 풀었다, 뿌림을 반복한다. 섬세한 발놀림은 단단하며 날렵하다. 원혼의 한과 넋을 위로하는 춤사위는 그의 표정에서도 하나하나 드러난다. 소리꾼의 구슬픈 구음시나위가 얹혀지면서 점차 넋을 보내는 의식이 고조된다.

무형문화재 제97호 이매방류 살풀이춤을 재현하고 있는 채향순의 무대.(사진=문화유산채널 캡쳐)

채향순은 쾌자 고름을 살짝 쥐었다 놓는다. 순간의 찰나지만 섬세한 어깨의 들썩임은 은근한 교태미를 드러낸다. 업장의 흰 수건을 슬며시 뒤로 던져놓고 다시 뒤돌아 그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려 원혼을 하늘로 보내기 위한 제의는 마침내 염화미소로 떠오른다. 이어 굿거리와 자진모리 장단의 빠른 춤으로 원혼을 보내준 후 삶과 죽음을 동일시 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끝을 맺는다. 채향순의 살풀이춤은 정(精)·중(中)·동(動)의 형식과 내용에 멋과 잔잔한 흥이 더해진 무대였다.

이날 한 무용가는 채향순의 살풀이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너무나 춤이 아름다워서 자신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는 것이다.

전체 출연진이 함께하는 이날 무대의 마지막인 ‘신명의 춤 울림’에서 채향순의 장구춤은 모두를 심쿵하게 만든 화려한 반전이었다. 날렵한 맵씨로 장구를 매고 등장한 채향순의 신명나는 다스름과 휘모리 장단의 장구춤은 객석을 또 다시 들었다 놨다. 승무의 북장단에서도 이미 알아챘지만, 채향순의 기악 연주는 출중하다. 채향순은 6살 때부터 춤을 시작해 예술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가무악을 두루 섭렵한 예술인으로, 보기드문 가무악을 겸비한 명인이다.

신명나는 휘날레를 장식한 채향순의 장고춤.(사진=문화유산채널 캡쳐)

이번 공연에서 10명의 악사와 1명의 소리꾼이 포함된 음악은 꽹과리, 징, 장구, 북,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 피리, 대금으로 폭넓은 삼현육각과 시나위에 목탁, 바라를 넣어 춤에 따라 다양한 연주를 구현하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고 이매방 선생은 살아생전 춤의 기본으로 음양의 조화를 강조했다. “정중동의 음양의 조화가 됐을 때 진정한 멋이 표출되며, 무겁게 진득진득하게 춰야한다"라고 했다. 이번 채향순의 무대는 음양의 조화를 이룬 타고난 춤꾼의 정수를 보여준 무대였다. 원류를 계승하고 맥을 이어간다는 이번 공연의 대주제에 부족함이 없었다.

승무와 살풀이는 전통의 원류를 따르는 한편 신전통춤으로 그가 창작한 허튼춤과 푸너리춤 등에서 전통에 뿌리를 둔 다채로운 창작춤의 세계를 볼 수 있다. 뼛속까지 전통의 원류는 흩트리지 않겠다는 그의 확고한 춤에 대한 철학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채향순의 제자들로 이뤄진 채향순무용단의 무대인사를 겸한 신명의 무대.(사진=문화유산채널 캡쳐)
채향순의 제자들로 이뤄진 채향순무용단의 무대인사를 겸한 신명의 무대.(사진=문화유산채널 캡쳐)

온전히 심연에서 길어 올려진 춤이야말로 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번 채향순의 무대가 더욱 빛이 나는 지점이다.

오랫만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공연 한편이 마음을 충만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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