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장터는 유년시절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정영신의 장터이야기]장터는 유년시절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 정영신 기자
  • 승인 2020.11.1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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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의 장터이야기 (28)

장터에서는 잊고 있었던 사물들이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성냥이나 바늘과 실 등, 옛날 옛적에 쓰이던 것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장터한구석을 지키고 있다.

이불호청을 꿰매기도 하고, 구멍난 양말을 한땀한땀 꿰매기위해

아직도 실과 바늘을 사가는 여성들을 종종 만난다.

시골에서 바나나로 불리던 의름
시골에서 바나나로 불리던 의름

 

시골에서는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이면 집안대청소를 한다며

이불호청을 빨아 잠자리가 앉아놀던 빨래 줄에 햇빛과 놀게 한다.

가을 햇빛이 짱짱할 때는,

마음속 상처를 꺼내 햇빛에 말리다 보면 어느 사이 겨울이 뚜벅뚜벅 걸어온다는

고향옆집에 살던 새댁의 함박웃음이 뚜벅뚜벅 걸어온다.

짚으로 엮은 짚신
짚으로 엮은 짚신

 

한복치마저고리를 차려입고 동네 우물터에 물 길러오던 새댁은

몇 개월 시골살이를 하더니 밤도망을 가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동네어르신들은 남자거시기가 성하지 못해 밤도망을 갔다며 수근 댔지만 금새 잊혀져갔다.

다만 새댁신랑이 실성한 사람처럼 동구 밖에 세워진 깃대에 엉크러져 서있던 모습만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시골농가에서 기른 계란
시골농가에서 기른 계란

내가 꼬맹이었을때 장터에서 새 옷감을 구경하며 좋아하던 그네를 봤었다.

모두 들에 나가 밭을 매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네는 시골색시답지 않게 화장을 하고,

돌담 밑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듯 햇빛과 놀곤 했다.

그래서 까치발을 하고 그네를 훔쳐보다가 눈이 마주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박주가리
박주가리

동네 할매들이 당산나무 평상에 앉아 곰방대를 빨면서,

그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궁시렁 거릴 때,

할머니 입술에 귀를 바짝 같다 데면 얘들은 몰라도 된다며 먼 산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옛날 향수를 불러내는 알사탕
옛날 향수를 불러내는 알사탕

오래된 물건을 보면 옛날 추억에 젖어들게 된다.

짚신이나 박주가리, 알사탕, 으름과 좀약, 짚으로 엮은 계란 등,

장터에서 옛날물건을 만나면 유년시절로 들어가 한참 후에 나오게 된다.

 장터는 내 유년시절을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