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1828, 연경당’ 어디에도 없는 ‘공연의 품격’
[윤중강의 뮤지컬레터]‘1828, 연경당’ 어디에도 없는 ‘공연의 품격’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0.11.1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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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1929, 연경당’ 공연을 보면서, 60년전 공연을 상상하게 된다. 1960년 12월 14일과 15일, ‘아악연주회’가 예술원 주최로 열렸다. 궁중음악과 궁중무용에 초점을 맞춘 공연으로, 궁중무용의 가치를 크게 알린 출발이 되었다. 검무, 가인전목단 처용무 춘앵전 등 네 종목을 소개했다. 춘앵전의 독무는 황옥선으로, 1960년대의 춘앵전‘하면 모두 황옥선을 첫 손으로 꼽는다. 1964년 한일국교정상화와 관련한, 국립국악원의 도일(渡日)공연에서도 황옥선의 춘앵전은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의 음악과 무용을 전승한 곳이 이왕직 아악부 (이왕직아악대). 1923년 5월 14일, 창덕궁에서 기자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춘앵전의 독무는 누굴까? 신문기사에선 ‘특히 무용에 천재가 있는 이병우군(14)이 출연할 터인데’라고 기록했다. 이왕직 아악부 출신의 이병우(1908∼1971)는 조선악극단(오케레코드), 고려교향악단 등 국악 대중음악 클래식을 넘나들면서, 피리 클라리넷 오보에를 두루 잘 다룬 예인이다. 

해방이후 궁중무용을 포함한 한국무용가 중에서 주목할 인물로 김보남 (1912∼1964)이 있다. 1949년 2월 17일, 문교부에 예술위원회가 생겼다. 당시 각계의 권위자를 예술위원으로 위촉했다. 무용분과에서 전통무용에 해당되는 역할을 했다. 

김천흥 선생(1909 ~ 2007)을 가리켜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칭한다. 정재(呈才, 공중무용)에 기여한 바 크지만, 확실하게 짚어 둘 건 있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선생은 궁중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오히려 한성준과 최승희를 사숙(私淑)하면서, 민속무용에 정진했다. 한국전쟁 이후, 김천흥은 무용계에서 큰 역할을 했으나, 탈춤에 바탕을 둔 민속무용이었다. ‘처용랑’을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했으나, 김기수의 음악과 만난 창작성이 강했다. 1960년대의 김천흥은 ‘탈춤’의 대가였다. 후배이긴 했으나 김보남이 오히려 국립국악원과 연결고리가 있으며, 그가 타계한 이후 성경린의 권유로 해서 뒤늦게 국립국악원과 인연을 맺은 분이다. 

여기서 여러 인물을 등장시킨 것은, 누구를 높이고 누구를 낮추려는 게 아니다. 궁중무용에 대해서 이제 좀 더 다각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기에 그렇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1928, 연경당‘의 가치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함이다. 그간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 정재(呈才)를 위해 애를 썼으나, 우리가 많이 보는 궁중무용은 국한되어 있다. 처용무 가인전목단 춘앵전 포구락, 선유락 정도가 아닐까? 궁중정재의 다양함을 공연성(公演性)을 살려내서 무대에 올린 적이 없다. 2시간 20분이나 되는 공연을 지루하지 않게 보여준 적이 없다. 

‘1828, 연경당’ (11. 12 ~ 13, 국립국악원 예악당)은 매우 값진 공연이었다. 조선의 정재와 관련해서 중요한 인물인 효명 (1809 ~ 1830)에 초점을 맞췄다. 그가 창제했다고 전하는 19종의 궁중정재를 만날 수 있었다. 

예악당을 들어가서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무대가 깔끔하면서도 세련되었다. 미술감독(조수현)의 역할이 돋보였다. 색감이나 느낌에서 통일성은 있었으면서도, 정재 마다 다른 이미지를 충실히 드러내고 있다. ‘박접’과 ‘연화무’가 기억된다. 나비가 영상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나, 도형화된 상징성으로 접근하면서도 전통적 분위기가 느껴졌다. 연화무는 ‘蓮(연)’이라는 한자를 잘 활용하고 있다. 

춤 중에서 딱 하나를 선택하라면, 영지(影地)를 꼽겠다. 정재 - 조명 - 무대 - 영상의 조화가 돋보였다. 신선(神仙)과 무동(舞童)을 넘나드는 건, 국립국악원 무용단 남성단원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무대 중앙의 사각형태(영지)에 비춰지는 조명의 분위기가, 그간 궁중관련 공연하면 늘 연결되는 ‘원색(原色)의 향연(饗宴)’에서 벗어나 있었다. 품격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공연을 격조있게 만드는데 ‘튀지 않는’ 조명디자인(이상봉)이 크게 한 몫을 했다는 건 꼭 기록해야 한다. 

19종의 춤 중에서 마지막 춤이기도 한 ‘무산향’을 출 때, 효명 (임진혁)은 무동(舞童)을 바라본다. 연출(안병구) 의도가 전달되었다. ‘1828, 연경당’의 커튼콜에선 각각 춘앵전의 이하경과 무산향의 김현우가 출연자의 마지막으로 등장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이들의 앞날도 기대하지만, 내 시각에서 본 최고의 정재인 (呈才人)은 이지연이다. 이지연과 같은 분이, 진정한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지킴이’다. 만수무 (萬壽舞)에서 천상의 복숭아인 선도(仙桃)를 손에 받쳐 들고 등장하는 이지연을 잊을 수가 없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낭원투도(閬園偸桃)’를 연상케한다. 신선이 사는 곳에서 복숭아를 훔쳐 나오는 동방삭의 모습을 그렸다. 이 분이 그런 건 재연하려 했던 건 아니었을텐데, 낭창낭창 걸어나오는 품새가 딱 그랬다. “김홍도가 바로 저런 모습을 그림 속에 담았구나!” 나는 그리 생각했다. 

국립국악원과 아무 연관이 없는 나다. 그럼에도 ‘1928, 연경당’은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2020년)으로 안성맞춤이란 생각했다. 그동안 국립국악원에서 많은 공연을 했지만, 그 공연 중에서 ‘국립국악원’과 맞는 공연이 과연 얼마만큼 되었던가? 

20년전, ‘왕조의 꿈, 태평서곡’은 국립국악원 개원 50주년 (2001년)을 기념해 첫 선을 보였다.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재연하고자 했으며,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바탕으로 했다. 해외에 나들이를 간 공연으로, 나름의 성과가 컸다. 하지만 이 공연은 ‘궁중무용’에 초점을 맞추기 보단 ‘의식’ 또는 ‘의례’에 초점을 맞췄다. 공연의 제목에 있는 것처럼, 이 공연은 ‘왕조’라는 이름처럼 왕조적이고 그건 다시 바꾸면 매우 국가적 행사처럼 보인다. 접근 방식 또한 실제 그랬다.

국립국악원의 공연이 앞으로 임금을 내세우는 왕 중심의 공연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측면에서도 ‘1928, 연경당’은 의미가 있다. `1828, 연경당’은 매우 예술적인 온기와 품격이 전달된다. 왕이 되지 못했던 효명이었고, 궁중무용에 남다른 관심을 둔 세자였다. ‘왕조의 꿈, 태평서곡’이 혜경궁 홍씨와 정조의 모자(母子)라면, 춘앵전이란 창작의 계기가 된 ‘1828, 연경당’에는 어머니 순원왕후와 아들 효명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훌륭한 공연이지만, 아쉬운 건 음악이다. 피트에서 연주했던 궁중음악까지는 괜찮았으나, 무대의 전환과정에서 기존음악을 튼 건, 내 입장에서 관객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옥의 티’이다. 이후 무대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앞의 것을 반복하면서 매우 평이하게 흘러갔다. “궁중음악 속에서 선택하는 것인데 방법이 있겠느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악기 편성의 묘(妙)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존재한다. 

음악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업그레이드 시킨다면, ‘1928, 연경당’은 국립국악원의 대표 브랜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다양한 공연문화를 접한 고급관객들에게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니크한 작품으로 홀로 고고하게 빛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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