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21살 멘델스존의 이탈리아 여행Ⅱ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21살 멘델스존의 이탈리아 여행Ⅱ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0.11.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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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사람들은 종교가 있지만 그것을 믿지 않고, 교황과 정부를 가졌지만 그것들을 조롱하고, 찬란한 역사를 가졌지만 거기에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로마에 머물 때는 교황 비오 8세가 죽었다. 교황의 죽음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장례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이 은근히 즐거워하는 모습은 나를 몹시 불쾌하게 했다. 교황의 시신 주변에 사제들이 둘러서서 끊임없이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밖에서는 관에 못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을 가까운 곳에서 본 게 난생 처음이었다. 카필라 성 밖에서 인간의 생로병사를 처음 목격한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젊은 그는 마음이 아팠다. “수많은 거지들이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마차가 도착하자마자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모습에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고통을 맛보았다.” 이탈리아는 지저분하고, 벼룩이 들끓고, 바가지 상혼이 극성이었다. 그는 소매치기 당하지 않으려고 늘 조심해야 했고, 이탈리아 말로 얘기해서 외국인이 아닌 체 했다. “역겨운 사기꾼들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속임수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장사꾼들이 접근하면 그 물건을 안 산다고 대답해야 했다.” 나폴리에서는 종교 행렬을 목격했다. 슬픔에 잠겨서 행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멘델스존은 다른 사람들의 삶이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달콤하고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나폴리에서 만난 순례자의 행렬은 <이탈리아> 교향곡의 경건한 2악장이 됐다.

로마에서 멘델스존은 베를리오즈를 만났다. 그는 로마대상을 받아서 1년 동안 로마에 유학 중이었다. 멘델스존보다 6살 위인 베를리오즈는 전해에 발표한 <환상>교향곡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아직은 무명이었다. 이에 비하면 멘델스존은 이미 유럽 전역에 천재 작곡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두 젊은 천재는 의기투합해서 타소의 무덤을 찾아갔고, 카라칼라 목욕장의 폐허를 함께 보았다. 두 사람은 기질이 무척 달랐다. 멘델스존은 베를리오즈의 지나친 허세와 감정분출이 거슬렸고, 베를리오즈는 멘델스존이 너무 얌전하다고 느꼈다. 베를리오즈는 작곡가 멘델스존을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그의 취향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끝까지 떨칠 수 없었다. 12년 뒤 그는 “멘델스존은 죽은 자들(=선배 작곡가들)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베를리오즈 자신의 급진적 음악관에 비해 멘델스존의 보수성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로마대상 수상작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첫 부분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고 실토했다. 멘델스존은 반색을 하며 대답했다. “난 당신이 그 곡을 좋아하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다행이군요. 솔직히 그 곡은 아주 형편없어요.” 베를리오즈는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베를리오즈는 신을 조롱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순간 멘델스존이 발을 헛디뎌 계단 아래로 굴렀다. 베를리오즈는 멘델스존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며 농담을 던졌다. “신성한 정의가 이뤄졌도다! 내가 신성모독을 하니까 자네가 굴러 떨어지지 않았나.” 

이탈리아 여행은 21살 멘델스존을 조금 더 성숙시켰다. 그는 평범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맨얼굴을 보고 실망했지만, 그만큼 실제의 인간을 이해하게 되었다. 카프리섬의 아름다운 바다에서 위안을 맛보았고, 무엇보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의 위대한 문화유산에서 예술적 자극을 받았다. “로마의 과거는 내게 역사 그 자체로 다가왔다. 로마 시대의 유적은 내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수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후세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매우 흡족했다.”

<이탈리아> 교향곡은 멘델스존이 이 여행에서 얻은 인간적 성숙의 기록이다. 3악장 콘 모토 모데라토(평온하게, 보통 빠르기)는 우아한 메뉴엣으로, 전통 교향곡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어지는 4악장 프레스토 (아주 빠르게)는 이탈리아 전통 무용인 살타렐로다. 열정적인 춤사위에 이어 강렬한 크레센도로 끝나는 이 피날레는 남쪽 나라 이탈리아의 태양에게 바치는 멘델스존의 오마쥬다. <이탈리아> 교향곡은 멘델스존이 어린 시절을 마감하고 어른 음악가로 출발하는 전환점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1847년, 38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결과 이 작품은 그의 생애 한복판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