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수상자 인터뷰]김홍신 소설가/홍상문화재단 이사장 "우리 DNA 속 자리잡은 웅혼함, 새로운 역사를 이끌 것“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수상자 인터뷰]김홍신 소설가/홍상문화재단 이사장 "우리 DNA 속 자리잡은 웅혼함, 새로운 역사를 이끌 것“
  • 인터뷰·정리/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0.11.1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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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밀리언셀러 『인간시장』, 총판매량 560만부 돌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만년필 놓지 않을 것”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ㆍ진보연 기자]난세영웅(亂世英雄). 어지러운 세상에 큰 공을 세우는 영웅을 뜻한다. 오랫동안 우리는 신의 아들이나 왕족처럼 고귀한 신분, 육체적 강인함, 전투에서의 대승, 제국 건설 등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를 영웅이라 칭했다. 어느 시대이든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은 강력한 지도자나 영웅을 염원하는 법이다. 하지만 영웅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김홍신문학관 2층에 설치된 원형무대, '인간시장' 전시장 전경
▲김홍신문학관 2층에 설치된 원형무대, '인간시장' 전시장 전경

1980년대 우리 사회는 시민들의 영웅으로 『인간시장』 주인공 장총찬을 선택했다. 장총찬은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 싸우며 위기에 처한 약자들을 돕는 현대판 ‘홍길동’ 같은 존재였다. 엄격한 군사정권 속에 억압된 우리의 자유, 표현 그리고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벗어나게 해주던 유일한 탈출구 역할을 했다. 당시 정치ㆍ경제ㆍ법조ㆍ언론 등 부조리하다면 그게 누구든 응징하던 인물이 바로 장총찬이고, 소설 『인간시장』이었던 것이다.

김홍신은 1980년대 장편소설 『인간시장』으로 국내 최초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 『인간시장』은 인신매매 본거지를 배경으로 사회 모순을 폭로하면서 문학을 통해 정치‧사회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적 울분을 드러내며 대중적 공감을 샀다. 

그는 이후 40여 년 동안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거대했던 우리 민족 발해의 역사를 지우려 하는데 분노해 집필한 『김홍신의 대발해』(10권)를 비롯해 소설, 시, 수필, 콩트, 동화 등 총 136권을 출간, 다작하며 문학계 지평을 넓혔다. 『김홍신의 대발해』는 자료조사 기간만 약 5년, 집필 기간은 약 3년에 달하는 시간을 쏟아부은 결과물이다. 집필 과정에서 ‘동이’의 한자 夷(이)는 ‘오랑캐’가 아닌 ‘동쪽의 넓고 평탄한 땅에 사는 어질고 기뻐하는 성품을 가진 민족’ 즉 ‘군자’로 풀이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황홀경에 빠져 집필에 탄력을 얻었다.

역사적 고증 아래 주변 민족ㆍ국가와 싸우는 발해인의 치밀한 군사ㆍ외교 전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까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이 작품은 발해인들의 웅혼한 기백을 되살리고, 고대의 혼을 섬세하고 절제된 문체로 살려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통일문화대상과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 1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을 수상하며 김홍신은 “인생과 문화예술은 화살이 꽂히는 자리에 과녁을 그리는 행위와 같으며, 과녁은 곧 지혜, 나눔, 베품, 배려, 어울림, 인연”이라고 말했다. 천하 만물 중 사람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없으며, 사람 사이의 인연은 더없이 귀하다는 것이다.

앙가주망(engagement). 소설가 김홍신은 지식인으로서 사회참여에도 열정을 쏟으며 책임을 다했다. 시민운동가, 15대ㆍ16대 국회의원,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문학계뿐만 아니라 사회발전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특히 재선 국회의원 당시 언론사 및 시민단체가 선정한 의정활동 1위에 8년 연속 선정된 사실은 그의 활약상을 짐작게 한다. 현재는 (재)홍상문화재단 이사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사)동의난달 이사장,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 평화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김홍신 소설가·홍상문화재단 이사장
▲김홍신 소설가·홍상문화재단 이사장

소설가 김홍신의 호는 ‘모루’다. ‘달궈진 쇠를 두드릴 때 쓰는 받침쇠’로 고(故)홍문택 신부가 “김홍신은 세상을 떠받치는 버팀목 같은 사람”이라며 작가에게 지어준 이름처럼, 대한민국 문화계와 사회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거목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전 세계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미증유의 위기를 겪고 있다. 팬데믹 시대, 우리는 장총찬처럼 세상을 구할 뉴 히어로의 등장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을 탄생시켰던 소설가 김홍신은 죽음, 고뇌, 실수와 우여곡절은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단계라고 말한다. 모든 삶이 순탄하다면 신화와 역사 그리고 성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 2017년 출간한 김홍신의 장편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의 표제어다. 일상을 뒤흔들 만큼 거센 바람도 사랑과 용서로 짜여진 그물에는 걸린다. 그리고 김홍신이 짠 ‘그물’은 수많은 정신적ㆍ현실적 굴곡으로 상처 받은 우리의 영혼을 보듬어준다. 새로운 역사의 한복판에서 찬 바람을 맞고 서있는 우리는 무엇을 알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역사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김홍신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올해 초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특별대상을 수상했는데, 벌써 한 해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시상식에서 “고난과 시련 없이 신화ㆍ역사ㆍ성공을 이룰 수 없다. 보석이 찬란한 것은 희귀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빛나는 DNA를 가졌고 모질게 갈고 다듬어서 진귀한 보물이 된 것이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인간 명품들이 이 자리에 계신다”라는 명 소감문을 밝히셔서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셨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복이 작은 편이다. ‘서울문화투데이 특별대상’ 수상 역시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라 처음 연락을 받고는 깜짝 놀랐다. 수상을 통해 인연이 닿기 전까지는 ‘서울문화투데이’를 우리 땅의 천둥지기 같은 문화 예술 매체 정도로만 생각했다. 천둥지기란 천둥소리가 나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뜻한다. 어렵고 힘든 농부들이 산골짜기처럼 물길이 닿지 않는 천둥지기에서 마른 논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고 허정한 행동으로 보일지 모르나, 천둥이 내려치는 순간 마른 땅에 뿌려진 씨앗은 싹을 틔운다. 연고도 없던 내가 특별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 천둥지기가 공정성까지 갖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상 소감을 전할 때에도 고민을 많이 했다. 대한민국에서 천둥지기를 일구며 서울문화투데이를 포함한 많은 문화예술인이 시련과 고난, 실패 그리고 좌절의 계단을 밟으며 겨우겨우 올라왔을 것이다. 이를 생각하며 전했던 수상 소감이었기에 많은 분이 공감해주셨던 것 같다.

▲김홍신문학관 내 자신의 작품이 전시된 서가 앞에 선 김홍신 작가.
▲김홍신문학관 내 자신의 작품이 전시된 서가 앞에 선 김홍신 작가.

바람이 드나들 듯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던 문학관도, 코로나19 여파를 피하지는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코로나 발생 전후 문학관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 안에서의 집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문학관에 대한 소개도 해달라.

논산시 내동에 위치한 ‘김홍신 문학관’은 366평 규모의 문학관과 120평 규모의 집필관 2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필관에는 작가의 집필실을 비롯해 레지던시 창작공간과 세미나실, 수장고를 갖췄다. 문학관은 작가 일대기의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특별전시실을 비롯해 아카이브 전시실, 문학 전망대, 관람객을 위한 열린 다목적실과 카페로 구성돼 있다. 문학관 설계부터 자재, 채광, 조명 등 모든 공간을 세심하게 신경 썼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문학관은 문을 한참 닫아뒀다. 코로나19 2단계 격상으로 인해 지난 6월 8일 개관 1주년도 챙기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떼려는데 그물이 쳐지고 가로막힌 상황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논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 육군 훈련소일 것이다. 하지만 논산의 품고 있는 상징성에는 훈련소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의 선비 정신도 있다. 우암 송시열, 명재 윤증, 사계 김장생 등 거함(巨艦) 같은 선비들이 공부를 한 곳이다. 돈암서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관촉사의 은진미륵은 국보로 승격됐다. 양반은 문무가 결합 되어야 하는데, 논산은 그게 딱 맞는 양반 도시다. 논산에 세워진 김홍신 문학관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양반 도시의 양반 정신을 계승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며, 백제 시대에 황산벌 전투의 용맹한 전사들의 정신사까지 연결을 하고자 한다. 설립 자체로 양반의 문무 정신을 존중한 것이다. 

이런 지리적 요건에 더해, 남상원 회장의 아낌없는 후원으로 문학관 설립이 가능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표현이 있다. 쉽게 말해 무엇인가를 줄 때 내가 받으려고 생각하면 마음이 어지럽고, ‘내가 남을 위해 베풀었다’는 생각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나눔의 덕으로 얻은 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하고 있다. 물질의 시대에 정신의 향기, 문장으로 마음과 몸을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모든 이에게 쉼터 같은 장소를 내어 주고자 한다.

▲김홍신문학관 2층 특별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는 '김홍신의 대발해' 작품 관련 자료들
▲김홍신문학관 2층 특별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는 '김홍신의 대발해' 작품 관련 자료들

지난 2007년 발표한 『김홍신의 대발해』 집필의 바탕에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있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 자료 500여 종을 모아 재해석하는 등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 존재하지만 중국은 역사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왜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얼 알고,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라의 역사는 국민과 국가의 자존심이다. 누가 내 부모를 자기네 부모라고 우기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변형하여 주장하는 것은 도둑질이다. 이건 국가와 정부 기관에서 독하리만큼 저항을 해야 하는 사안이다. 가만히 있으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더욱 터무니없는 주장을 확산시킬 뿐이다.

내가 자료조사부터 집필까지 약 8년에 달하는 기간을 『김홍신의 대발해』에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발해 자체의 기록은 삼대 대흥무, 그러니까 문황제의 둘째 공주 정혜와 넷째 공주 정효의 무덤에서 나온 비석에 적힌 약 1,500자 정도의 기록 외에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우리 역사의 기록이 화이(華夷)ㆍ중화(中華) 사관에 따른 중국 문헌뿐이라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가. 

사료가 거의 전해지지 않는 발해사를 되살리기 위해 중국의 동북 3성과 시안(西安), 산둥반도, 러시아 연해주 일대 등 고구려와 발해 유적지를 답사해가며 자료들을 긁어모았다. 참고한 역사서만도 구당서, 신당서, 발해국지, 후한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발해고, 발해사 등 수백 권에 달한다. 

역사학자와 논쟁하기 위해선 역사적 근거와 물증을 가져야 한다. 증거를 바로 세워야만 역사를 되찾을 수 있고, 우리 선조들의 웅혼함과 강대함을 알려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당나라 제도를 토대로 400여 명에 이르는 인물들의 성씨와 이름을 지어내고, 화폐제도와 조세제도를 복원하고, 발해 문자를 만들어낸 것도 바로 빈약한 사료를 보완하기 위한 작은 시도다. 

『김홍신의 대발해』를 집필하면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황홀함까지 느끼셨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점 때문에 그러했는지.

학교에서 우리나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배워왔지만, 사실 오랫동안 가난했고 지하자원도 없는 땅에서 적은 인구로 버텨왔다. 심지어 강대국의 세력 다툼 가운데 남북이 갈라진 상태가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장했다. 이제는 인구 5천만 명,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 이상을 돌파하며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와 함께 ‘3050클럽’에 진입했다. 산업화·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 나라에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대발해』를 쓰면서 자료를 찾다 보니 이 장엄한 DNA와 웅혼한 꿈을 발견하게 됐다. 한반도와 만주의 민족들을 통칭하는 ‘동이’라는 명칭을 많은 이들이 ‘동쪽의 오랑캐족’으로 풀이한다. 한자 사전에서 ‘夷(이)’자를 ‘오랑캐 이’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풀이이며 원래 ‘夷(이)’는 ‘군자’를 뜻하는 글자이다.

우리나라의 최초 한자 옥편인 자전석요(字典釋謠)에 夷자는 ‘상할 이’, ‘멸할 이’, ‘평탄할 이’로 기록되어 있어 ‘오랑캐’라는 의미는 없으며, 중국 최초의 한자 자전인 강희자전(康熙字典, 청나라 강희제 지음)에는 ‘크다’, ‘넓다’, ‘평탄하다’, ‘온화하다’, ‘기쁘다’, ‘어질다’, ‘상하다’, ‘멸하다’, ‘오랑캐’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동이족이란 ‘동쪽의 넓고 평탄한 땅에 사는 어질고 기뻐하는 성품을 가진 민족’으로 해석됨이 옳다고 본다. 원래 夷자는 大(큰 대)자와 弓(활 궁) 자가 합해진 글자로서 큰 활을 메고 드넓은 중원 땅을 호령하던 민족이었음을 나타내는 글자다.

잘못 알려졌던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내용을 찾아냈을 때의 통쾌함,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울러 저 광활한 영토가 우리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황홀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대발해』를 집필한 후 정신적ㆍ육체적 부담이 컸기에 『대백제』를 시작하기 전 고민과 망설임도 많았을 것 같다. 그런데도 다시 한번 긴 여정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지?

나의 서재 책장 위에는 1,300년 전 발해 유물이 자리하고 있다. 『대발해』를 집필할 때 저 유물을 앞에 두고 쓸 만큼, 나를 자극시키는 것들이다. 

취재차 러시아에 갔다가, 극동연방대학 박물관에 전시된 발해 유물을 보게 됐다. 극동연방대학교는 과거 연해주를 지배했던 발해 관련 연구를 선도하고 있으며, 박물관에는 발해 유물이 많이 있다. 극동연방대학 한국학대학의 학장을 찾아가 “우리 조상의 것이니 저 중 몇 점만 한국으로 가져가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처음엔 당연히 거절당했다. 대학의 고유 재산이며, 반출을 위해서는 국가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연해주의 대통령 특사를 설득한 끝에 유물들을 가져올 기회를 얻게 됐다. 승낙이 얻은 후에도 실물을 손에 넣기까지 1년의 세월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조국으로 돌아온 조상의 흔적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역사 문제는 내 조상, 내 DNA, 내 피의 문제다.

▲김홍신 작가가 러시아 극동연방대학을 통해 전달받은 발해 유물

나는 공주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자란 충청도 사람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의 역사를 제대로 전하고 싶었기에, ‘대백제’라는 가제를 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결심을 했다. 700년 동안 존속했던 백제의 역사 전체를 다룰 순 없기에, 멸망사를 중심으로 풀어나갈 계획을 세웠다. 백제 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3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백제 역사유적은 중국의 도시계획 원칙, 건축 기술, 예술, 종교를 수용하여 백제화(百濟化)한 증거를 보여주며, 이러한 발전을 통해 이룩한 세련된 백제의 문화는 일본 및 동아시아로 전파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문화를 가진 나라라면 후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또한 유의미하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진 않다. 자료가 너무 부족한 탓이다. 아울러 『대발해』 집필 당시 겪었던 트라우마로 소설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겼다. 내 평생에 글을 쓰며 그렇게 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것은 처음이었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살아서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이를 다시 경험할까 봐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가기 전 조심스러워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펜을 다시 잡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까.

『인간시장』이 올해 기준 총판매량 560만 부를 돌파했다. 소설 『인간시장』이 출간된 지 39년이 지났지만, 장총찬이 응징하던 세상의 부조리와 악행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시대가 공감할 이야기라는 점에서 작품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지만, 한편으론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신(新) 인간시장에 대한 집필을 여러 번 밝히기도 하셨다. 

써둔 시놉시스는 있다. 정치를 그만뒀던 시기에 바로 집필했다면 출간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내 주장만 옳은 것이 아니더라. 나만 선역,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난 나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악역이고,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부 옳고 전부 그른 사람은 없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니까 쓰기가 참 쉽지 않더라.

예전에 ‘이런 책이 안 팔리는 시대가 좋은 세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새롭게 내놓은 인간시장이 다시 한번 흥행한다면 제 말이 전부 헛말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생각이 복잡하고 많아지니 ‘내가 인간시장을 또 써야 하는가?’라는 원론적인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2003년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민주시민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8년째 운영하고 있는 민주시민 정치 아카데미는 선거‧정치에 관한 ‘전문 과정’과 외교, 국방(통일), 경제, 사회, 역사, 인문, 문화 등의 ‘교양 과정’으로 편성되어 교육이 이뤄진다. 유권자가 민주적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고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우리나라의 사회적 발전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서로 다른 지향들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빠른 시간에 성취했다는 장점도 있지만, 급하게 이뤄낸 만큼 생략되고 모른 채 지나친 부분들 또한 많다. 정치를 하고, 선거를 치르면서 민주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 올바른 민주사회 구성원, 공정하고 속이지 않는 정직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은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옳은 길로 가는 과정이다.

아카데미를 13기까지 진행하며 삼백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들은 국회의원, 시장, 군수, 의회 의장, 변호사 등 여러 자리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나이 많은 제자들이지만 그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을 감동케 해라’이다. 그대들은 일신의 행복이나 재미보다 우리 국민에게 무언가 보답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나누는 기쁨을 느끼라는 뜻이다. 

<인생사용설명서>에서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명품인 사람은 어떤 사람을 뜻하는가.

흔히 명품이라 하면, 유명하거나 직급이 있거나 명망가이거나 유식하거나 재산이 많은 것을 떠올리지 않나. 근데 그게 아니다. 사람이 명품이라는 건, 잘 사랑하고 용서하고 배려하고 베푸는 것을 말한다. 물론 저에게도 사랑, 용서, 배려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잘 안 되지만 어떻게든 해보려고 자꾸 스스로 되새긴다. 책장에도 써서 붙여놨듯,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 바람은 어디든 지날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 

글을 잘 쓰기 위해 필요한 습관이 있다면.

글 쓰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메모와 관찰이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모든 사물에는 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길가에 늘어선 코스모스 중 하나를 휴대폰으로 찍어 확대해보면, 코스모스 꽃술이 별처럼 빼곡히 들어선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코스모스(COSMOS)가 이름처럼 하나의 질서정연한 우주를 담고 있는 것이다. 꽃 안에 들어 있는 별의 모양은 저마다 다르다. 코스모스 한 송이를 통해, 꽃의 모양이 전부 다르듯 지구 안의 70억 인구는 각자 자신만의 우주를 품고 있다는 사실까지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코스모스 한 송이도 내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인 셈이다.

▲김홍신문학관 내 전시된 김홍신 작가의 작품들

1976년 등단 이후로 소설, 시, 수필, 콩트, 동화 등 총 136권의 작품을 출간하며 문학계 지평을 넓혔다. 아직 다뤄보지 못한 것 중 쓰고 싶은 주제가 있는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고대사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남북문제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다룬 작품은 초고까지 완성된 상태다. 

아주 늙으면 동화나 동시를 쓰고 싶다. 늙으면 애가 된다고 하지 않나. 나 역시 아이로 돌아갈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아이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세대의 뛰어난 감수성과 지적능력, 그리고 돌파력이나 모험심.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서 그들이 습득하는 모든 지식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애가 되어가는 것이다.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김홍신 소설가·홍상문화재단 이사장

어떤 작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만년필을 놓지 않고, 죽는 순간에도 만년필을 쥐고 잠들고 싶다. 덧붙여, 잘 살다 간 작가로 기억됐으면 한다. 부족하지만 겸손하게 살았다는 말을 함께 듣는다면 참 좋겠다. 시간에 순응하며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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